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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잊기 어려운 사랑이라니…

당신의 인생을 바꿀 영화 ⑨ 〈첨밀밀(甛蜜蜜)〉

대중가요 태동기를 휘저었던 윤심덕의 ‘사의 찬미’(1926)부터,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뷰티풀’까지 한국 대중가요 2만 6250곡을 분석한 어느 연구 결과, 노랫말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사랑’이었다. 가사에 ‘사랑’을 포함하는 노래가 65% 이상이었다는 얘기다.

양적 분석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영화 또한 아마도 비슷한 비율을 차지할 것으로 여겨진다. 로맨스 영화의 대명사이자 겨울만 되면 세계 어느 곳에선가는 반드시 흘러나오는 OST ‘Snow frolic’의 〈러브 스토리〉(Love Story, 감독 아서 힐러, 1970)에서 촌티가 물씬 흐르는 흑발의 알리 맥그로가 금발의 미남이자 갑부 집 아들인 하버드 대학생 라이언 오닐에게 말한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 are sorry).”

청첩장에 자주 인용되는, 미국 배우 캐런 선드(Karen Sunde)의 “사랑은 천국을 살짝 엿보는 것(To love is to receive a glimpse of heaven)”이라는 시적 표현도 있고, “인생의 최고 행복은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The greatest happiness of life is the conviction that we are loved)”이라는 말도 모두 사랑과 관계가 있다. “사랑은 지성에 대한 상상력의 승리(Love is the triumph of imagination over intelligence, 미국 문예비평가 헨리 루이스 멩켄)”라는 이지적 표현도 빠질 수 없다.

한 해에 전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극영화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략 1만여 편이라 할 때 사랑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작품만 6000여 편이라는 얘기인데, 지난 30년 동안 제작된 사랑 영화 18만여 편 가운데 필자는 최고의 사랑 영화로 바로 이번 작품 〈첨밀밀〉(甛蜜蜜, Comrades : Almost A Love Story, 감독 첸커신, 1996)을 꼽는다.

만 18세부터 28세까지 세계 문학사의 고전작품들을 섭렵하며 보낸 영문학 석사 출신으로서 감히 말하지만, 홍콩 영화 〈첨밀밀〉은 사랑의 한 전범(典範)을 만들어낸 스탕달의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1830)이나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1848)에 버금하는 ‘잊기 어려운’ 사랑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이다.

물론 근현대 소설의 최정점인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1877)에 견주기엔 심히 역부족이긴 하나, 주인공 ‘소군’ 역을 소화한 리밍(黎明)의 잔영은 쥘리앵 소렐(적과 흑)과 히스클리프(폭풍의 언덕)에 전혀 꿀리지 않고, 소군을 사랑한 ‘이요’ 역을 더 이상 멋지게 표현하기 힘들게 화면에 담은 장만위(張曼玉)의 모습은 드 레날 부인(적과 흑)과 캐서린(폭풍의 언덕)보다 훨씬 강렬한 인상을 관객들에게 남겨 놓았다.

홍콩이라는 사회를 직·간접으로 드러내고(어떤 사랑이 둘이 속한 집단을 떠나 가능하던가), 연인들의 가장 사적인 공간인 침대 위 묘사에 불필요한 자의식이 없다는(잠자리를 갖지 않는 남녀의 교류를 우리가 흔쾌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던가) 측면에서 영화 〈첨밀밀〉은 또 다른 걸작 소설인 D. H. 로런스의 《무지개》(The Rainbow, 1926)에 필적한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한마디로 말해 〈첨밀밀〉은 일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영화인 것이다.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에서


영화의 배경은 1986년 홍콩이다. 당시의 홍콩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에의 반환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 불안감이 만연하던 시기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홍콩은 1984년 중국과 영국의 연합성명에 따라 1997년 7월 1일 자로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편입될 예정이었다.

지금이야 중국의 ‘1국 2체제’ 정책에 의해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지방행정구역으로서 이전과 다름없이 자본주의사회·경제 제도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지만 1986년 당시에는 그 모든 게 불투명한 상태였다.

하지만 본격적인 개혁·개방 정책을 펴기 전인 중국 본토에 비하면, 여전히 홍콩은 ‘기회의 땅’이었다. 이 점을 알고서 영화를 봐야 각 장면의 맥락과 그 재미를 충분히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영화에서도 잘 묘사되었듯, 공식 언어로 중국어와 영어를 모두 사용하고 있는 현재의 홍콩 주민들은 중국에서 흔히 ‘보통어’라고 일컫는 베이징어(北京語)를 배우는 추세가 강하지만 당시에는 광둥어(廣東語)가 주된 언어였다.

다시 말해, 돈을 벌기 위해 홍콩으로 온 중국 본토 남녀의 체제 적응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첨밀밀〉은 중국 대륙, 홍콩, 뉴욕을 떠도는 이들의 인생 역로를 통해 중국의 개혁·개방과 홍콩의 본토 반환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986년 상하이 토박이 소군은 성공의 꿈을 안고 홍콩에 도착한다. 어리숙한 소군은 같은 대륙 출신으로서 사리에 밝은 이요를 만난다. 소군은 고향 무석에 약혼자가 있어 홍콩에서 보란 듯 성공해 그녀와 결혼하기를 꿈꾼다.

이요는 자본주의 사회인 홍콩에서 돈을 많이 벌어 집을 장만하는 것이 소원이다. 대만 최고의 가수 덩리쥔(鄧麗君)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꿈을 위해 제 발로 찾아왔지만 낯설기만 한 홍콩에서 서로에 의지하다가 사랑에 빠진다.

이요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지만 결국 실패해 빚만 잔뜩 진다. 그녀는 마사지사로 전락하여 자신을 아끼던 폭력배 보스와 연인 관계가 된다.

그렇게 헤어진 뒤 1990년, 소군은 대륙의 여자 친구를 홍콩으로 데려와 결혼식을 올리고, 식장을 찾은 이요와 3년 만에 재회하게 된다. 소군과 이요는 각자 배우자를 두고도 서로를 향한 사랑을 확인하지만, 이요는 범죄 용의자가 되어 국외로 밀항하는 조폭 애인을 따라 떠나고 “이요를 사랑한다”고 아내에게 고백한 소군은 홀로 남겨진다.

시간이 흘러 미국으로 떠난 소군은 뉴욕의 중국 음식점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돈을 모은다. 어느 날 가수 덩리쥔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전자대리점 TV를 회한에 젖어 바라보던 소군은 바로 곁에서 같은 TV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이요와 운명처럼 조우하게 된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짠한 페이소스


커다란 줄거리 자체도 영리하게 만들어 놓았지만, 영화는 디테일한 장면 묘사에서 특장(特長)을 발한다. 조연이나 엑스트라급 배우들의 캐릭터가 아주 생생하고, 그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코끝을 짠하게 만드는 페이소스가 있다.

갓 시골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소군은 햄버거 하나 주문하기도 벅차다. 영어는 당연히 안 되고, 고향에서 쓰던 중국어도 홍콩에선 통하지 않아서다. 더듬거리며 햄버거를 주문하는 소군에게 이요는 영어 학원을 소개해준다. 왜? 학원에서 소개비를 받아 챙길 수 있으니까.

영화에서 맥도널드는 중국 대륙인들이 품은 ‘홍콩 드림’을 상징한다. 맥도널드 매장은 소군과 이요가 처음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가 낯선 소군은 이곳에서 이해타산이 빠른 이요를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동지애 비슷한 우정을 느끼게 된다. 이에 반해 이요는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오로지 돈만 믿는다. 그런데 독일 마르크화 환율까지 홍콩달러와 비교, 투자해가며 모은 그 돈이 어느 한순간 모두 사라져버린 거다.

역시 성공을 위해 홍콩에 온 소군은 이제는 이요에게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돈을 모은다. 이요에게 자신이 당하는 줄 빤히 알면서도 계속 당해준다. 돈보다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중요해서다.

목숨보다 소중한 돈을 모두 날린 자신을 한껏 위무해주는 소군에게 이요는 “사실은 나도 대륙 본토 출신”이라 고백하며 처음으로 마음을 연다. 이어 계속 당하면서도 곁에 머무는 까닭을 묻자 소군이 말한다. “당해주지 않으면 네가 날 찾지 않을 거 같아서….”

소군은 홍콩에서 자전거로 생닭을 나르며 돈을 번다. 그가 한 달에 받는 급료는 당시 본토의 공산당 간부 월급을 능가하는 액수였다. 본토인들에게 홍콩이 성공과 기회의 땅이 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이제 서로에게 마음을 연 둘은 고단한 노동의 나날 중에도 잠시 짬이 날 때마다 청춘다운 데이트를 즐긴다. 초콜릿을 잘라 먹으며 이요와 소군이 나누는 대화다.

이요 : 여긴 홍콩이야. 목숨 걸고 한다면 뭐든 할 수 있어.
소군 :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요 : 소군, 우린 좋은 친구지?
소군 : Sure!
이요 : 나와 고생도 함께하고 나를 즐겁게도 해주고. 사실 넌 홍콩에서 제일 친한 친구야.
소군 : Thank you!
이요 : 어쭈, 영어도 두 마디나 하고.
소군 : Of course!


“한 여인을 웃게 만들 수 있다면, 그녀가 어떤 것이건 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If you can make a woman laugh, you can make her do anything)”는 말을 메릴린 먼로가 한 적이 있는데, 이 말과 꼭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예쁜’ 데이트 장면의 대척점에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용납하지 않는 현실 때문에 헤어져야 하는 ‘암담한’ 둘의 모습이 있다. 소군의 결혼식장에서 수년 만에 재회한 둘은 유부남-유부녀 사이의 ‘불륜’이라는 벽에 봉착한다. 처연함이 서린 커다란 눈의 이요는 말한다. “소군 동지! 이제 우리 어쩌지?”

둘은 가끔 중국에서 사용하던 호칭으로 서로를 ‘동지’라고 부른다. 이 용어는 사회주의 중국에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극중에서 ‘동지’는 대륙 출신인 이요와 소군의 친밀한 관계를 반영하는 말이면서, 홍콩 땅 안에서 겉도는 대륙인들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말이다. 〈첨밀밀〉의 영어 번역 제목이 ‘Comrades(동지들)’인 이유이기도 하다.


20년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


이 영화에서 맥도널드와 짝을 이루는 상징물이 미키마우스다.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에게 ‘아메리칸드림’을 상징하는 소재다. 주식에 실패해 큰 빚을 진 이요는 상대적으로 급료가 센 마사지 걸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이때 그녀는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티셔츠, 미키마우스 브로치가 달린 셔츠를 입고 등장한다.

마사지 숍에서 만난 조직폭력단 보스는 그녀가 쥐를 무서워한다는 말을 듣고 등에 미키마우스 문신을 하고 나타나 친밀감을 표시하기도 한다. 그 덕분인지, 둘은 결국 미국 뉴욕에 정착(?)한다.

〈첨밀밀〉은 과잉이나 작위적 설정이 없는 섬세하면서도 사실적인 홍콩 드라마로 평가된다. 30대 젊은 시절에 처음 이 영화를 본 후, 50대 중반이 되어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뇌리에 각인되는 내용이 조금 달라짐을 절감한다. 전에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장만위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면, 이제는 착하고 속 깊고 성숙한 리밍이 자꾸 눈에 밟힌다.

프랑크푸르트학파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이 명저 《사랑의 기술》(1956)에서 말했다.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는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소유(Having)’가 아닌 ‘존재(Being)’임을 지적한 말인데, 〈첨밀밀〉을 다시 보며 1980~1990년대 홍콩, 미국 뉴욕, 중국 본토를 떠돈 소군이야말로 그 뜨거운 사랑의 열병을 앓으면서도 참으로 차분하게 프롬의 이 말을 체현한 남자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 못했던 내 젊은 날에 대한 회한보다는 내 아들이 그런 사랑을 했으면 하는 소망을 앞세워 보련다. 소군 만세!
  • 2018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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