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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마이너리그

1.
소개팅녀 : 정민씨한테는 뭔가 뚝심이 느껴져요.
정민 : 네?
소개팅녀 : 뭐랄까. 주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인달까요?
정민 : …
소개팅녀 : 킹왕짱이에요.
정민 : …
소개팅녀 : 우왕굳?
정민 : 나 맘에 안 들죠.

2.
동네바보형 : 야 정민아.
정민 : 네 동네바보형.
동네바보형 : 내가 어디 가서 네 팬이라고 하면 있잖아.
정민 : ?
동네바보형 : 나까지 마이너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정민 : 너 팬클럽 강퇴.

뭐 옛날부터 그랬다. 남들이 핑클 좋아하면 난 써클 좋아하고, 남들이 시디플레이어 들고 다닐 때 난 엠디플레이어 들고 다니고 그랬다. 남들이 다 좋아하는 야구 선수보단 벤치의 선수를 더 좋아했고, 그 선수의 이름이 박힌 유니폼도 사고 그랬다. 그런데 그 선수 방출 당해서 유니폼 중고나라에 내놓고, 그 와중에 안 팔리고, 뭐 그랬다. 남들이 다 읽는 책은 읽지 않았고, 남들이 다 보는 영화도 보지 않았다. 대신 아무도 안 보는 영화를 골라 봤고, 그런 영화는 주로 야했다. 정말 야한 것도 있었다. 얼마나 야했냐면. 이건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한다.

꽤 많은 사람이 나더러 마이너하다고 말한다. 넌 야동도 마이너하고 막 그런 거 볼 거 같다고, 막 약간 이상한 거 막 때리고 맞ㄱ… 아니 이건 아니고. 좌우지간 나더러 마이너리그에서 잘하고 있는 모습이 멋지다고도 말한다. 그리고 너는 메이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심지어 혹자는 내게 나의 성향 때문에 메이저는 절대 될 수 없을 거라고도 말한다. 그 말인즉슨, ‘남들이 좋아하는 걸 너는 좋아할 수 없을 거야’의 의미라기보단 ‘넌 메이저리거가 될 순 없을 거야’의 의미일 테다. 무시무시한 말이다.

“주류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게 아니고 못하는 겁니다.”

이 말을 듣는 상대방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내게 허점을 보이다니, 공격에 들어갈 차례다.

“그렇다면 당신은 메이저인가요?”

섣불리 대답을 하지 못한다. 어차피 메이저는 소수다. 우리 대부분은 다수고, 마이너다. 핑클 좋아하면 주류고 써클 좋아하면 비주류가 아니라는 얘기다. 거의 모두가 마이너리거다. 원래 그렇다. 프로야구도 잘하는 선수 몇 명만 1군 무대를 밟는 거다. 자 그렇다면,

“당신의 꿈은 최고의 마이너리거인가요?”

개소리다. 마이너리거의 꿈은 걸출한 메이저리거지 최고의 마이너리거가 아니다. 수만 번의 배트질로 1군을 평정한 2군의 전설 장종훈은 아직도 많은 2군 선수들의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프로팀의 지명을 간신히 받아낸 2군 선수 아무개에게 감독이 와서 하는 말이

“넌 정말 훌륭한 2군 선수구나. 계속 2군에 남아서 나와 함께 2군 리그를 제패하자!”라면, 그 아무개는 ‘대박! 날 이렇게나 알아주다니! 2군에서 짱먹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안 될 놈. 안 되는 놈은 안 됨’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거다. 그리고 그 팀에선 더 이상 장종훈은 볼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마이너리거는 ‘minor’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인 ‘별로 중요하지 않은’으로 해석돼선 안 된다. 비단 야구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속한 모든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사회의 다수인 마이너들이 허약하면 그 사회도 그만큼 허약해진다. 1군과 2군의 교집합이 넓을 때 그 팀은 강팀이 되는 거다. 1군의 부상 선수 대신 올라온 2군 선수의 실력이 좋으면 좋을수록 그 팀은 강해진다. 그리고 그 2군 선수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1군에 붙어 있기 위해 최선을 다할 테고, 에라 모르겠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주전 선수까지 돼보고 싶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타이틀도 얻고 싶을 것이고, 그러다가 메이저리그도 가보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도 관심 없던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팀과 그 기회를 잡는 선수, 그렇게 팀과 선수는 각자의 목표를 달성하려 애쓴다. 그게 좋은 팀이고 좋은 사회다.

근데 왜 갑자기 열폭해서 마이너 이야기를 하냐고? 소개팅에서 차이고 왜 우리한테 화풀이냐고? 죄송하다. 열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들이 중요하지 않아서 마이너가 아니라는 걸 말이다. 난 알고 있다. 당신들의 꿈은 ‘일 XX 잘해서 맨날 야근하고도 자부심 쩌는 대리’일 리 없다. 나는 알고 있다. 당신은 ‘가끔씩 직원들 야근 시켜놓고 가족과 즐거운 시간 보내는 일 XX 잘하는 부장’ 정도는 거뜬히 될 수 있을 것이고, 또 알고 있다. ‘어느 날 길 가는 노인의 짐을 들어드렸는데 알고보니 회장님. 고속승진 고고’ 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알.고.있.다.

당신은.
정말.
중요한.
사람이다.


박정민은 영화 <동주> <순정> <오피스>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6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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