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유리공예 작가 김준용

마음을 흔드는 오묘한 색의 조화

글 : 이선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그의 작품을 봤을 때 오로라가 생각났다. 춤추듯 하늘을 수놓는 색감으로 사람들을 꿈과 상상의 세계로 데려가는 오로라. 조명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그의 유리 작품도 보라색, 녹색, 오렌지색 등 미묘한 색의 조화로 보는 이의 마음을 현혹했다. 저런 작품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사진제공 : 김준용
보석같이 빛나는 작품들

유리공예 작가 김준용. 그의 작업실 ‘준 글래스 스튜디오’를 찾았다. 용해로와 작업대, 공구 등이 꽉 들어차 있어 작업실은 마치 작은 공장처럼 보였다. 용해로의 문을 열자 펄펄 끓는 오렌지색 화염에서 열기가 훅 끼쳐 왔다. 용해로 내부 온도가 1500도에 이른다고 했다. 가마 속으로 파이프를 집어넣어 유리를 말아 꺼내더니 작업대에 올려 굴리고 물 묻은 두꺼운 신문지로 만지고 입으로 불어서 공기를 주입하면서 모양을 만들어나갔다. 가위로 자르기도 했다. 말랑말랑한 젤 같은 유리가 그의 손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가 유리공예의 길에 들어선 것도 유리의 이런 점이 좋아서였다.

“유리공예를 하고 싶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배울 곳이 없었어요. 그래서 맨체스터 공대 유리학과로 유학을 떠났죠. 1997년 9월,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였어요. 용해로의 문을 열자 지옥불이 열리는 듯했습니다. 화염이 튀어나올 듯 뜨거운 가마로 다가가 파이프를 집어넣고 유리를 말아야 했죠. 모두 멈칫했어요. 그런데 말랑한 유리가 돌돌 말리고 출렁출렁 움직이는 게 꼭 살아 있는 생명체 같았어요.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고, 감촉도 너무 좋았어요. 매일 작업해도 재미있을 것 같았죠. 한여름에는 정말 못할 짓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유리에 대해서는 하면 할수록 매력을 느낍니다.”

〈Flower Graal〉, 20x20x16cm, blown, coldworked, glass, 2014
오랜 기다림 끝에 유리공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1991년 국민대 공예미술학과에 진학하면서 내심 유리공예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국민대에서 도예, 금속공예와 함께 유리공예도 교육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금 시작하면 앞서갈 수 있겠다.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릴 적 유리 공장을 촬영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매혹되었던 기억도 났다. 하지만 대학 내내 들을 수 있는 유리공예 수업은 두 과목밖에 되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는 대신 도자기에 빠져 지냈다.

“4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겨울방학 때 유리공예를 가르치는 선생님과 호주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유명한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아 가마를 사용하는 블로잉(blowing) 작업을 지켜봤죠. 도자기도 좋아했지만, 도자기는 유약을 발라 가마에 넣으면 어떤 색깔이 나올지 정확하게 예측을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유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색을 조합할 수 있다는 점이 끌렸어요. 제 마음속에 다양한 색감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거죠.”

〈Flower of Light〉 27x27x17cm,blown, coldworked, glass, 2014
미국 유학 시절 그는 방학 때마다 필척 글래스 스쿨에서 수업을 들었다.

“최고의 유리공예 작가들이 가르치는 곳으로, 학생들이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면 작가들이 자신이 가르칠 학생을 직접 선발합니다. 테크닉과 작가로서의 자세 등 그곳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테크닉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했다. 두꺼운 유리를 뜨거울 때 물에 넣었다 빼 표면에 금이 생기게 하고, 유리에 은박을 붙여 유리가 아니라 금속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초기에는 이렇게 유리 같아 보이지 않는 유리 작품이 많았다. 2006년 뉴욕 공예 아트 페어(S.O.F.A)에 출품한 작품에는 도예 기법을 활용했다. 도자기를 만들 때 흙을 말아서 붙이듯 뜨거운 유리를 말아 붙여 모양을 만들었다.

“안쪽의 투명한 유리로 나 자신을 표현하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말아 붙인 형태로 나를 가두는 주변 환경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도자기의 성형 방식을 활용해 아무도 안 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고, 내용도 탄탄하다고 생각했기에 자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고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평소 우러러보던 이름난 작가들의 작품에 비해 제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걸 느꼈죠.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좋은 작품은 독창성과 작품성, 아름다움을 모두 갖춰야 하니까요.”


깎고 다듬어 손맛이 살아 있는

〈2-Selenium Light〉, 42x42x23cm, blown, coldworked, glass, 2014
2010년 그는 새로운 작품으로 캐나다 밴쿠버 박물관의 공예 전시회와 시카고 공예 아트 페어(S.O.F.A)에 참가했다. 잔 모양의 유리 두 개를 아래위로 붙여 그림자 같은 효과를 내고, 표면을 숟가락으로 뜬 것처럼 깎아냈다. 유리에 은박을 씌운 후 깎아내 은박 밑의 색유리가 보이는 작품도 있다. 이번에는 전시회의 대표 작품으로 소개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이때부터 그는 조각을 하듯 유리를 깎기 시작했다. 스튜디오에서 지켜본 그의 작업은 전체 작업 과정의 극히 일부일 뿐이었다. 입으로 불어 공기를 주입하고, 굴리고 만져서 만들어진 형태는 원석에 불과하다. 원석을 보석으로 만들기까지는 또다시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유리보다 강도가 강한 다이아몬드 그라인더로 깎고 다듬어 형태를 만들고, 사포로 연마해 광을 낸다고 한다. 깎는 과정만 10여 일씩 걸리기도 한다. 어떤 도구를 쓰느냐에 따라 표면의 느낌이 다 달라진다. 일부러 오돌토돌한 꽃잎 같은 질감을 내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그래서 유리 같지 않게 손맛이 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흠집도 햇빛에 비춰보면 다 드러납니다. 보석을 다듬듯 연마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지요.”

〈8-Ruby in a Flower〉, 17x17x26cm, 48x48x43cm, blown, coldworked, glass, 2014
작품의 형태는 꽃잎, 씨앗, 바다 생물 등 주로 자연에서 가져온다. 본격적으로 색을 탐구하면서 그의 작품은 검푸른 밤하늘, 뿌옇게 동터오는 아침, 저녁 하늘을 물들이는 석양 등 자연의 풍경 자체를 담아내게 되었다. 유리를 가지고 이토록 오묘한 색감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들으니 연금술 같았다. 유리에 금가루를 넣으면 핑크빛을 띤 보라색, 은가루를 넣으면 노란색이 난다. 산화철은 녹색, 코발트는 짙은 파란색, 망간은 올리브그린 색을 낸다. 이렇게 만든 색유리와 투명 유리를 섞어 그러데이션 효과를 주면 자연에서처럼 미묘한 색감 변화가 나타난다. 유리에 들어가는 금속에 따라 팽창률이 달라지기 때문에 색유리의 팽창률까지 계산해서 작업해야 한다. 중간중간 오목렌즈처럼 동그랗게 깎아내 주변 풍경이 담기도록 만든 작품도 있다. 그의 작품은 빛의 방향과 조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는데, 아침 햇살을 받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이 작품들로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홍콩, 영국, 인도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 주목받고 있다.

유리공예를 시작하면서 개척자가 되리라던 그의 꿈은 척박한 토양에서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국은 조형예술로서 유리공예가 발달했고, 유럽은 건축 유리, 일본은 소품 위주의 유리공예가 자리 잡은 반면, 우리나라의 유리공예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 청주대 공예디자인학과 교수로 후학을 가르치는 그는 그래서 고민이 더 많다.

“실용적인 작업에도 관심이 많아요.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모색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도 제 역할입니다. 졸업 후 공방을 운영하며 생활할 수 있게 기술과 마케팅 능력을 갖추게 해줘야죠.”

그가 만든 컵과 와인 잔은 도자기처럼 손맛이 살아 있어 독특한 매력이 느껴졌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유리공예의 매력이 우리나라에서도 꽃필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16년 03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