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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뮤지컬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 무대에 올리는 공연 예술가 그룹 ‘거울과 등잔’

아이들에게 돈 없어도 괜찮은 예술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싶었죠

글 : 한정림 객원기자  / 사진 : 김선아 

극작가, 음악가, 연출가, 배우 등 공연 예술인 20여 명이 모인 ‘거울과 등잔’은 작년 한 해 동안에만 연극 두 편, 청소년 뮤지컬 두 편, 콘서트 등 일곱 개의 무대를 선보였다. 이 중 가장 공들이는 것은 중고생과 함께 만드는 청소년 뮤지컬. 학교 폭력, 왕따, 게임 중독 등 아이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은 오리지널 작품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을 새해 첫 무대로 올리는 ‘거울과 등잔’의 연습실을 찾았다.
왼쪽부터 극작가이자 연출가 조한신, 아나운서이자 배우 유내경, 작곡가이자 배우 임유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극작가이자 연출가 조한신 씨에게는 자주 어울리는 대학로 친구들이 있었다. 10년 전 어느 날, 누군가의 “우리 함께 뭔가 해보자”라는 한마디로 ’거울과 등잔’은 시작됐다.

작곡가이자 배우인 임유진 씨가 제작과 음악을, 아나운서와 배우로 활동 중인 유내경 씨가 기획을 맡았다. 피아니스트 송광식, 콘서트 연출가 문현탁, 조명 디자이너 박순규, 안무가 박은미, 배우 박상현 등이 뜻을 함께했다. 2007년 정식으로 극단 등록을 마쳤지만 무대에 작품을 올리는 건 쉽지 않았다.

각자도생의 나날을 보내던 중, 한국교사연극협회와 인연이 닿았다. 요즘 아이들은 연극엔 관심 없고 뮤지컬을 좋아하니 지도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조한신 대표와 몇 명의 배우들이 경기도 광주의 한 고등학교를 찾았다. 주로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연극이나 뮤지컬로 재구성해서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학생들로부터 큰 공감을 얻지 못했다.

“교사연극협회의 어떤 선생님이 청소년 문제를 다룬 작품을 하나 써주면 좋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쓰게 된 게 청소년 뮤지컬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이에요.”(조한신)

교사연극협회와 약속한 시간인 2년만 하고 폐기 처분 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었다. 뮤지컬 앨범을 제작하고, 학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반주도 넣었다. 상업 공연이 아니면 누구든지 무대에 올릴 수 있도록 저작권 등록도 하지 않았다.

“공연 예술로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잖아요. 돈 대신 우리의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거죠. 나눔의 기쁨이 꽤 큽니다.”(조한신)


“선생님은 걔보다 약하잖아요”

‘거울과 등잔’ 청소년 극단 프로젝트 3기 학생 30여 명이 뿜어내는 열기로 연습실이 달아올랐다. 작곡가 임유진 씨와 배우 유내경 씨의 지도에 집중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배우 그 자체였다.
“매일 매일 매일 지옥 같은 세상이야. 무서움에 떨며 사는 하루하루. 하늘을 쳐다봐도 보이는 건 먹구름뿐. 나를 도와줄 사람 어디 없을까?”

- 청소년 뮤지컬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 중에서 극작과 연출을 겸하고 있는 조한신 대표는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을 쓰면서 학생과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쓴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을 선생님과 학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했다.

“와! 이거 딱 우리 이야기잖아요!”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종국, 왕따를 당하는 지수, 음악을 하고 싶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힌 민준, 성적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미라, 게임 중독으로 폐인이 되어가는 윤호.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우리가 학생이었을 때도 왕따는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처럼 학교 폭력이 심하진 않았어요. 아이들이 문제를 끌어안고 어른들에게 보여주지 않는 건 가해 학생보다 어른이 약해 보이기 때문이에요. 엄마, 아빠가,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에요.”(조한신)

거울과 등잔이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으로 청소년 극단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는 너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어른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권위를 내세우지 않아요. 청소년 극단에 들어오면 지킬 건 딱 두 가지예요. 말할 때 ‘…’으로 끝내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끝까지 할 것과 연습실에 물건 놓고 가지 말기. 연습하다 보면 아이들이 흥분해서 벗어놓은 옷 등을 놓고 갈 때가 많아요.”(조한신)


돈 없어도 괜찮아

휴식 시간에도 연습은 이어진다.
“우리가 자랄 때는 다들 어려웠잖아요. 문화 예술 체험이 어디 있어요. 그래도 나름 문화 예술 경험을 할 수 있는 공동체가 있었어요. 제 경우엔 교회가 그런 곳이었어요. 교회에서 연극도 해보고 악기도 배웠어요. 요즘엔 뭘 하든 돈이 들잖아요. 아이들에게 돈 없어도 괜찮은 예술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싶었죠.”(조한신)

거울과 등잔의 청소년 프로젝트는 겨울과 여름, 1년에 두 번 진행된다. 한 번의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3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참가자는 선착순으로 받는다. 오디션은 보지 않는다. 참가비도 없고 강습비도 받지 않는다. 공연 제작비는 멤버들의 쌈짓돈과 로터리클럽의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오디션은 한 아이의 가능성을 어른의 시각으로 재단해버리는 거잖아요. 아이들에게 재능 차이는 큰 의미가 없어요. 재능이 넘치는 아이는 다듬어주고 재능이 부족한 아이는 잠재된 무언가를 끌어내주는 게 우리 역할이죠. 공연 날, 무대에 올라가면 모두 어엿한 배우가 됩니다.”(조한신)

두 달의 연습 기간 동안 거울과 등잔의 멤버들이 각자 자기 전문 분야를 가르친다. 모집부터 본 공연까지 걸리는 시간은 석 달. 본인이 원하면 계속해서 참가할 수 있다.

“작년 초에 첫 공연을 올렸어요. 처음이라 지원한 학생이 열 명 정도밖에 안 돼서 어른 배우도 무대에 섰어요. 이번이 세 번째인데 마감도 되기 전에 30명 정원이 차버렸어요. 기존에 참여했던 학생도 열 명 가까이 돼요.”(유내경)

“아이들의 재능을 재단하지 않는다”는 연출가 조한신 씨가 연기 지도를 하고 있다. 이날 과제는 자기소개 하기.
연습실을 꽉 채운 30여 명의 아이들은 진지했다. 쉬는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보거나 큰 소리로 떠들지 않았다.

“거울과 등잔이라는 이름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서로의 모습을 비춰주고 등잔처럼 사회에 빛을 비추자는 뜻으로 지었는데, 아이들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온 아이들은 프로 배우들과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니까 집중해서 열심히 하고 처음 온 아이들은 그 아이들을 보고 따라 하게 되는 거죠.”(유내경)

거울과 등잔의 청소년 뮤지컬은 물론이고 모든 공연은 청소년과 장애인에겐 무료다. 대신 어른 관객은 자율적으로 입장료를 낸다. 일부 공연은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 통역도 제공한다.

시각장애인 단체 관람이 있었던 날의 일이다. 공연이 끝난 후에 아이들 몇 명이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잠깐 동안 암전이 되었을 때 앞이 안 보여 너무 답답했는데 저분들은 평생 그런 거잖아요.”

후원 기관에서 간식을 보냈을 때는 이런 이야기도 했다.

“이분들처럼 아이들이 하는 일에 지원해줄 수 있는 어른이 돼야겠어요.”

연기를 한다는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본다는 것이다.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가해자가 되어 카타르시스를 느껴보기도 하고 반대로 가해 학생이 피해자가 되어볼 수도 있는 것이다. 연기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아이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어른들이 생각을 바꾸면 복잡하게 꼬인 아이들의 많은 문제들이 풀릴 거라는 것, 아이들이 공연을 한 번 하고 나면 이해력과 공감지수가 높아진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게 바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한다는 겁니다.”(조한신)

‘거울과 등잔’ 청소년 극단 프로젝트

청소년 뮤지컬 〈귀를 기울여주세요 Listen...!〉
2016년 2월 23일~27일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
관람 문의: mirrorandlamp@gmail.com / blog.naver.com/mirror_lamp
  •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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