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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대기만성, 그대는 ‘노력의 천재’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듯이,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때를 기다려.
충실히, 성실히, 절실히. 길게.”


서른일곱 살의 박원상(선배님)이 스무 살의 박정민에게 해주신 말씀입니다. 술 마시고 하신 말씀이라 본인은 기억 못 하시겠지만, 당시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배우 지망생 박정민은 아직도 그 몇 글자를 마음에 품고 지내고 있죠. 이외에도 몇 말씀이 더 있는데 “너 잘해라. 내가 지켜보겠어.” 혹은 “즐겁게 해라. 즐겁게 해야 한다.” 혹은 “나 버리고 먼저 가. 난 더 마실게.” 그래서 홍대에 고이 버려드리고 먼저 도망쳤어요. 도망치다 택시에서 토할 뻔했어요.


좌우지간, ‘긴 호흡’을 갖고 가라는 그 말씀이 문득 가슴을 치는 요즘입니다.

당시에는 연기 전공자도 아니었고 그저 연기를 하고 싶은 한 학생이었습니다. 극단 막내로서 청소는 기본이요, 무대 세팅, 분장실 정리에 객석 정리까지 극장에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지만 오후 8시가 되면 무대에 내 자리는 없었습니다. 관객들은 모두 무대를 보고 있고, 나 또한 무대를 보고 있습니다. 매번 새로운 공연을 보여주는 선배들의 연기에 경외심을 표하면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을 거라는 나약함도 같이 자라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티 내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고 그저 뭐라도 되겠지 식으로 열심히 살았던 것도 같습니다. 어느 날 박원상 선배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고, 그 말씀이 담긴 소주 한 잔은 아직도 박정민의 가슴을 알딸딸하게 합니다.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지내지. 여보세요 왜 말 안 하니. 여보세요? 어, 난데, 나, 나 임마. 나 정민이. 그래. 야, 너 목 마를 때 물 생각하지? 어 성실하게 마셔. 끊을게.” 박원상한테 뺨 맞고 구 여친한테 주사 부리기는 미스. 젠장.


누구나 다 그렇듯, 특히 20대에는 더 그렇겠지만 참 조급해지기 마련입니다. “나 안 조급해. 나는 약간 천천히 가는 스타일인 듯”이라고 말하기 일쑤지만 사실 마음은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나랑 소싯적에 길바닥에서 소주 좀 마셨던 친구가 이제는 어엿하게 몇 십 만원짜리 양주 먹는데 어찌 조급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엄마 차 끌던 친구가 지금은 벤츠 타는데 어찌 그것이 부럽지 않겠습니까. 부러워 죽겠죠. 그래서 애써 마음을 다스립니다.

“나는 천천히 가는 스타일이야. 천천히 가면 주위도 둘러볼 수 있고, 나무가 아닌 숲도 볼 수 있고. 자세히 보면 나무도 볼 수 있는데. 저 나무 어디서 많이 본 나문데. 저거 내가 2년 전에 본 나문데? 어? 여기 그때 거긴데. 2년 동안 나 뭐한 거지? 여보세요 나야. 거기 잘 지내지? 이 나무 기억나? 2년 전에… 어 그래 양주 먹고 있다고. 끊을게” 하며 또 조급해지는 철없는 20대가 돼버립니다. 그렇게 조급함과 다스림을 반복하는 20대 후반의 박정민은 다시금 박원상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자연스럽게 다가올 그때를 기다리며 성실하게 충실하게 성실하게 하자. 뭐 이러다 또 조급해지기 마련일 테지만 꾸준히 해보려고 합니다.


요즘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유행입니다. 시즌 1부터 즐겨보던 프로그램인데 그 프로에 나오는 지원자들의 절실함에 동질감을 느끼고, 그들의 방식인 랩으로 직설적으로 토해내는 그 시린 가슴들에 공감합니다. 평소 힙합을 즐겨듣는 나로서는 즐기지 않을 수 없는 프로그램입니다. 힙합 1세대를 이루던 래퍼에서부터 언더 힙합 신의 명실상부 1위 래퍼까지 지원자로 나와 온갖 모양의 인생을 활자로 뱉어내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솔직함이 그들의 Swag이고, 글자와 목소리가 그들의 무기입니다. 사실 연기하는 사람들의 Swag 혹은 간지 그리고 무기, 이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때문에 하는 고민들도, 맞부딪히는 현실도 비슷합니다. 우리 손을 잡고 박원상 선배의 말을 새깁시다. 전도하는 건 아닙니다. 어쨌든 숨어 있는 무림의 고수들이여, 더 날카롭고 세밀하게 칼을 갑시다.


매일 해 뜨면 다시 또 내 자신과 전투 준비하느라 나 바뻐.
세상에 만만한 거 하나 없지. 노력 없이 날로 먹는다는 거 억지.
성공의 절대 전제 노력이 첫째. 대기만성 우리는 노력의 천재.


내 친구 형 매드클라운의 ‘노력의 천재’라는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노력의 천재라니 참 표현 좋습니다. 모두 길게, 성실히, 충실히, 절실히 노력해봅시다. 조급한 건 당연한 거니 자책치 마시고 모두 내일 아침엔 조금 더 전투적으로 일어나죠.

박정민은 영화 <신촌좀비만화> <들개> <전설의 주먹> <파수꾼>, 연극 〈G코드의 탈출〉 <키사라기 미키짱>,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 <사춘기 메들리>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 2014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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