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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영선의 2인극 〈G코드의 탈출〉

한예종 연극원 출신들이 함께 만든

글 : 박소영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상업 연극의 대두와 그로 인한 순수 연극의 도태는 연극계의 오래된 화두 중 하나였다. 최근 연극계는 무대 안팎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이런 판도를 바꾸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출신들이 모여 무대에 올리는 故 윤영선 극작가의 2인극 〈G코드의 탈출〉 역시 이런 흐름 위에 있다. 〈G코드의 탈출〉은 ‘텍스트에 충실한 연극을 만들어보자’는 이들의 합의에서 출발했다.
왼쪽부터 박정민·이치민·김보나
〈G코드의 탈출〉은 전 한예종 연극원 교수이자 극작가인 故 윤영선 선생의 2인극이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희망을 찾으려는 남자와 그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가 다시 만나 대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 남자는 〈파수꾼〉 〈전설의 주먹〉 등의 영화와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박정민이, 여자는 〈라이어〉와 〈극적인 하룻밤〉 등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김보나가 맡았다. 연출을 맡은 이치민씨는 전작 〈백수들〉 〈외판원이 가지고 간 것은 조그만 이야기 하나였다〉를 연출한 관록이 있다. 세 사람 모두 한예종 출신이다. 이씨가 제작 의도에 대해 입을 뗐다. “텍스트의 의미를 최대한 살린 연극을 올리고 싶었어요. 부차적인 것들은 모두 배제한, 척 하지 않는 진짜 연극이요.”

줄거리는 이렇다. 초췌한 모습의 30대 남자가 1년 전 사랑했던 여자를 찾아간다. 그는 허름한 여관방에 앉아 그녀를 기다린다. 삶이 좌절의 연속이었던 남자에게는 이제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남은 거라곤 이 여자뿐. 다시 만난 그들은 1년 전의 추억을 되짚어가지만,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곳을 향해 간다. 과연 여자는 남자의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남자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이며, 여자는 가장 외로운 인물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축은 ‘절망’이다. 당연히 배우들의 몰입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동안 영화와 연극에서 다방면으로 활약해온 박정민씨 역시 “이렇게 어두운 역할은 처음”이라고 털어놓았다. “머리가 복잡해요. 남자는 늘 절망 속에 있는 사람이고, 감정의 선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인물이라 공감하기가 힘들었어요. 대사도 굉장히 길어요. 한번 입을 열면 A4용지 한 장 분량의 대사가 쏟아져나와요(웃음). 글로 보면 주옥같은 표현이지만 언어는 휘발성이 있잖아요. 인물의 감정을 관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게 힘들죠.”


박씨가 남자 주인공의 감정선을 이해하는 데 집중해야 했다면, 김보나씨는 여주인공의 언행을 분석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여자는 그만큼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다. “사랑스럽지만 도저히 사랑할 수 없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인물이에요. 같이 있을 때는 애교가 넘치지만, 여자의 말에서는 항상 다른 남자의 모습이 비치죠. 여자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도 고민해야 했어요.”

김씨의 말처럼 〈G코드의 탈출〉은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개방적인’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다. 행간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맞물려 있어야 할 대사가 분리돼 있고, 분리돼야 할 이야기들이 이어져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관객이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부분은 고쳤어요. 작품의 배경이 1998년이라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부분도 약간 수정했습니다.” (이치민)

각자의 영역에서 바쁘게 필모그래피를 만들어가던 이들은 어떻게 한 자리에 모이게 됐을까. 여기에는 박정민씨의 영향이 컸다. 박씨는 지난해 두 편의 영화를 촬영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회의와 고립감이 밀려왔다. “내 얘기, 진짜 얘기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컸어요. 그래서 치민이에게 밑도 끝도 없이 연극을 하자고 얘기했죠. 작품은 이미 정해놓은 상태였어요. 학교 수업에서 〈G코드의 탈출〉 장면 발표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마음속 깊이 남아있었거든요. 당시에는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감정에 호소하기 바쁜 연기를 했는데, 볼 때마다 다른 감동이 있더라고요.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게 조금씩 달랐어요. 언젠가 한번은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연출과 남자 주인공이 정해지자 여자 주인공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김보나씨는 두 사람이 함께 아는 사람 중 가장 연기력이 뛰어난 여배우였다. 제안을 들은 김씨 역시 기꺼이 합류했다. 문제는 공연을 만드는 데 필요한 비용과 인력이었다. “소속 극단이 없는 사람들이 공연을 올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창작극이 아니면 지원받을 수 없고, 공모에 내려고 해도 사업자가 있어야 했어요. 당장 연극은 하고 싶어 죽겠는데 거쳐야 할 중간 과정이 너무 많았죠. 이리저리 방법을 찾다가 결국 ‘우리 돈으로 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다행히 정민이 소속사 대표님께서 도와주시고 연습실도 내주셔서, 제작비는 없지만 좋은 환경에서 연습하고 있어요. 인원이 많지 않아 밥값도 많이 안 들고요.” (이치민)

이들이 공연을 하겠다고 하자 한예종 선후배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재능기부로 포스터와 팸플릿을 제작해주는 것은 물론, 조명과 음향 등 스태프 일도 맡아줬다. “마음의 빚을 많이 졌어요. 도움을 받은 만큼 훌륭한 공연을 만들어야겠죠.” (김보나)

이번 공연을 준비하며 이들은 ‘극단 경’을 창단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관객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진짜 공연’을 올리겠다는 포부다. 인터뷰를 마치며 공연을 관람할 예비 관객들에게 인사를 부탁했다. “‘절망’이나 ‘의심’같은 다소 무거운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지만, 메시지를 강요하는 교조적인 작품은 아니에요. 저희 공연이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시 보고, 삶에 대한 태도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치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좌절과 상처,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회의 같은 감정을 다루기 때문에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이 이끌어가는 공연이지만 빈틈없고 쉴 틈 없는 극이니 많이 오셔서 즐겨주세요.” (김보나)

“절망 속에서 외려 희망을 발견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실 수 있도록, 저희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박정민)

연극 〈G코드의 탈출〉 공연정보
기간 2월 18일~2월 23일
장소 혜화동 1번지
시간 평일 오후 8시/주말 오후 3시, 7시
문의 https://www.facebook.com/stagemirror
  • 201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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