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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사물을 치료하는 해결사들의 수리병원’

베테랑 해결사들이 망가진 물건들을 고쳐주는 종합병원을 아시나요?

글 : 시정민 TOPCLASS 기자  / 사진 : 김선아 

“의자 다리 한쪽이 부러져 흔들리는데 고칠 수 있나요?”
‘수리병원’의 가구 해결사에게 화장대 의자를 건네자 의자를 살펴보던 가구 해결사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30분만 기다리시면 새것처럼 고쳐드릴게요.”

사진제공 : 문화로놀이짱
매달 셋째 주 토요일이면 서울 공덕역 경의선 폐선부지 앞 광장은 망치질 소리, 칼 가는 소리,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로 요란해진다. ‘일상의 사물을 치료하는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이 문을 열기 때문이다. 다리가 부러진 밥상, 삐걱거리는 의자, 잘 안 썰리는 과도, 녹슨 자전거, 소리가 안 나오는 이어폰, 초침 빠진 시계, 끈이 끊어진 가방, 살이 부러진 우산 등 이제 제 역할을 못 하게 된 일상의 사물을 치료해주기 위해 해결사들이 나선다. 공구가 없어서, 혹은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 방치되거나 버려질 위기에 처한 물건들은 해결사를 만나 새 생명을 얻는다. 연장 하나로 우산에서 신발・구두를 고치는 만능해결사 아저씨, 40여 년간 시계 수리를 해온 시계 아저씨, 이어폰에 관심이 많아 수리까지 하게 된 이어폰 청년 등이 이 병원의 해결사들이다.

‘수리병원’은 2010년 마포구청 앞 광장에서 열린 ‘가구수리병원’에서 출발했다. 가구수리병원은 사회적 기업인 ‘문화로놀이짱’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망가진 가구를 수리해주는 캠페인이었다. 그런데 주민들이 호응이 높아 2012년부터는 가구뿐 아니라 자전거・이어폰・가방・컴퓨터・우산 등 다양한 물건을 수리해주는 수리병원으로 범위가 커졌다.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물건들을 의인화해 병원이라는 콘셉트를 만들었죠. 분야를 세분화해서 종합병원의 형태를 취했고요. 종합의학과는 파손된 물건을 수리하는 곳, 재활의학과는 리폼이나 리디자인으로 물건의 가치를 높이는 곳, 약국은 부속물을 판매하는 곳, 비만클리닉은 필요 없는 물건을 정리해서 새로운 주인을 찾게 하는 곳, 응급실은 급하신 분을 위해 응급처치를 해드리는 곳으로 세분화했지요. 오래된 물건을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은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해온 물건들을 ‘치료’해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수리병원은 구두・시계・칼・우산 등을 기막히게 고치는 분들을 섭외해 해결사를 맡긴다. 서울 망원시장의 생선가게 아주머니들 사이에서 ‘칼갈이 달인’으로 통하는 최병순 할아버지는 신이 났다.

“예전엔 물건을 하나 사면 오랫동안 고쳐가며 쓰는 것이 당연했는데, 요새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곳에 오면서 다시 신이 났어요. 사람들이 집에서 쓰던 칼을 정성스럽게 신문지로 싸가지고 와서 갈아달라고 하지요. 나이 든 사람, 젊은 사람 할 것 없이 제 손이 필요하다 하니 흥이 납니다. 오래 써서 이가 나가거나 무뎌진 채 팽개쳐져 있던 칼이나 가위를 가져오는데, 다시 시원하게 썰리면 마음도 시원하지 않을까요?”

이어폰 해결사 김동훈씨는 시중에 나온 이어폰은 거의 다 써봤다 싶을 정도로 이어폰을 좋아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어폰의 구조에까지 관심이 생겼고, 수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저리 계속 시도해보면서 수리를 하고 있지요. 요즘에는 관심이 커져서 다른 물건들도 수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예요. 못쓰는 물건에 생명을 되찾아주는 활동이 보람 있고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집니다.”


컴퓨터 수리 담당 해결사의 원래 직업은 디자이너다.

“컴퓨터 수리를 업으로 삼고 있지도 않고, 따로 배운 적도 없지요. 컴퓨터로 디자인 작업을 하는데, 컴퓨터로 이것저것 해보면서 서버관리나 해체작업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컴퓨터 수리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터득한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어서 수리병원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해결사들은 수리병원 담당자들이 직접 찾아내 섭외하기도 하고, 주민들이 직접 해결사로 나서기도 한다. 김지연씨도 수리병원에서 시계를 고쳤다고 한다.

“스무 살 때 일본에서 산 시계가 있는데, 가죽 끈이 너무 낡았어요. 비슷한 가죽을 구하기 힘들어 버리지도 못하고 가지고 있다가 해결사 아저씨께 보여드렸더니, 직접 종로까지 가서 가죽을 끊어다가 정성스레 고쳐주셨습니다. 시계에 얽힌 이야기를 주고받다보니 아저씨도 애착을 가지고 그 시계에 어울리는 가죽을 일부러 찾아주셨지요. 소중한 물건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니 정말 의사처럼 느껴졌어요.”


수리병원은 처음에는 어르신들이 많이 찾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젊은 층의 참여가 늘고 있다고 한다.

“어르신들이 수선할 물건들을 꽁꽁 싸매 리어카에 싣고 끌고 오시는 것도 재미있고, 통기타 같은 악기를 고치고 조율하느라 연주를 하는 모습이 정겹고 따뜻해서 보기 좋습니다.”

수리병원은 사람들이 일상적인 물건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고, ‘고쳐 쓰는’ 문화가 자리 잡는 데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수리병원의 영역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런 물건도 수리해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받아 새로운 해결사를 찾아 나서기도 하고, 직접 해결사로 참여하겠다는 사람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수리병원은 보통 실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겨울에는 쉰다. 그러나 응급실은 계속 운영한다. 페이스북(www.facebook.com/repairhospital)을 통해 문의를 받고, 해결사도 찾는다.

수리병원의 경험들이 하나 둘 축적되고 전파되면서 동네마다 수리병원이나 수리공방이 생겨나면 어떨까. 도시 생활문화의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면서 수리병원은 오늘도 함께할 해결사들을 기다린다.
  •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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