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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새해 복 많이 주는 사람 되십시오

좀 늦은 새해 인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매년 새해가 되면 휴대폰을 부여잡고 여기저기 인사 돌리기 바쁩니다. 약간은 강박적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여기저기 전파를 쏴대지요. 혹시 ‘새해복많이받으세요’라는 단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익숙합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그런 단어는 역시나 없습니다. 어느 해였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만, 20대 초반 그러니까 7~8년 된 것 같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은사님에게 문자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주는 사람이 되길.”

어라, 이게 뭐지. 지금 나한테 끼 부리나. ‘당신은 선생이고 난 학생인데’ 하는 생각도 잠시, 굉장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강박적으로 날리던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보다 책임감 있고, 굵직한 에너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써먹어봤습니다.

‘형, 새해엔 복 많이 주는 사람이 되세요. 정미니 드림.’

‘정미니 실성했니. 굉장히 시건방지구나.’

‘멋있지 않아요? 정미니 올림.’

‘이런 ㅆㄲㄸㅉㅃ놈의 정미니 지금 어디야?’

‘정미니 업따. 찾아보심롱.’

며칠 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30대 초반의 남자가 20대 초반의 남자를 심히 꾸짖는 연극을 볼 수 있었다는 후문입니다. 20대 초반의 정미니는 그다음 해부터 새해 인사를 이렇게 합니다.

‘형님, 새해에는 조금이나마 복을 드릴 수 있는 정민이가 되겠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갑자기 너무 키우고 싶은 강아지 한 마리를 사서 엄마 생일선물로 둔갑시켜 집에 들인 후 그 이름을 ‘복’이라고 지으면 그것도 복 드린 거임. 그래서 우리 집 개 이름이 ‘복’인 건 함정. 어쨌든 칙칙하던 집안 분위기를 우리 복이가 화목하게 만들었으니 그 또한 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데 엄마가 반대해서 못 키우는 독자 여러분께 제가 하나의 팁을 드렸으니 이것도 복입니다.

새해에는 조금 더 건강해지시고 나이스해지시기 바랍니다. 결단력 있는 한 해가 되시길 바라고, 끝은 창대한 2014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변에 떠나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고, 사기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꽃샘추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고, 전기세 아끼는 에어컨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벚꽃과 단풍이 좀 더 오래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고, 개천의 돌다리가 조금 더 높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새해에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벌써 새해에 복 하나를 받았습니다. 친구가 스키장에서 뇌진탕에 걸려 왔거든요. ‘나 스키 타다 넘어져서 뇌진탕 걸림. 기억이 잘 안 남.’ ‘헉, 어떡해. 진짜 다행이다.’ ‘뇌진탕 걸려서 글씨도 이상하게 보임. ‘다행이다’라고 보이네.’ ‘진짜 심각한 듯. 어디까지 기억 안 남?’ ‘부분적으로 기억이 안 남. 님 누구?’ ‘8하면 기억나는 거 없어?’ ‘8…8…? 아, 기억남. 8만원.’ ‘어디임? 스키 한번 더 타러 가자.’ ‘내가 누구 8만원 줘야 되나?’

응. 맞아 친구야. 내가 너한테 꾼 8만원을 니가 나한테 갚아야 되는 거야. 역시 넌 17년지기 복덩이. 찡긋. 여러분도 2014년에는 이렇게 착하지만 멍청한 친구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아요.

두서가 없습니다. 어쨌든 저는 계속 그 자리에서 묵묵히 해나가겠습니다. 죽령터널 1200m 정도 와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은 3400m 꿋꿋이 걸어가보겠습니다. 여러분도 그대들이 있는 자리에서 서로 복이 될 수 있게 맡은 바 최선을 다하시길 빌겠습니다. 우리 모두 정상에서 만납시다. 정상에는 아주 맛있는 공기가 있을 거니까요.

박정민은 영화 <전설의 주먹>으로 이름을 알린 신인 배우. 2011년 <파수꾼>으로 데뷔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으로, 영화 현장, 배우, 그리고 연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낼 작정이다.
  • 201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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