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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정민의 ‘언희(言喜)’

처음처럼

영화 현장엔 사람이 굉장히 많습니다. 선장인 감독님을 필두로 연출, 촬영, 조명, 사운드, 제작, 미술, 소품, 분장, 의상, 배우 등 적어도 70~80명이 분주하게 뛰어다니죠.

첫 장편영화 현장은 약 3년 전, 〈파수꾼〉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예산이 극히 적은 독립 영화였기 때문에 상업영화만큼 인원이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편영화만 찍어오던 제겐 모든 것이 꽤 충격적인 사이즈였습니다. 카메라도 크고 조명도 크고 사운드 장비도 크고, 작은 건 그저 이제훈의 머리 정도? 여하튼 저는 매니저도 없이 엄마 차를 끌고 현장을 다녔습니다. 개런티로 받은 돈은 기름값으로 다 날려버리고, 라고 하기엔 기름값은 아빠 카드, 개런티는 용돈이었죠. 철없다고 욕하지 마요. 아직도 없으니까.

뭐든 첫 경험은 정말 짜릿합니다. 긴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되어 현장을 누비고 작품을 이끌고, 동료 배우, 스태프들과 함께 웃으면서 일하는 그 현장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장에 늦은 적, 아니 웬만하면 그 누구보다 먼저 가 있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즐거웠는지. 추운 데서 벌벌 떨며 동료들을 맞는 게 마냥 좋았습니다. 쟨 뭔데 맨날 저렇게 빨리 와, 하는 표정을 보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 우리 정민이.” “못 일어날까봐 안 자고 나왔어요. 뿌우.”

“그럼 피곤해서 연기를 못하잖아. 우리 정민이.” “연기는 원래 못하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죠. 뿌우.” 식의 대화가 자주 오갔고, 역시 모르겠습니다. 그게 열정이고 애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으로 아이폰을 사서 자랑하던 머리 작은 이제훈과 뒷머리가 생명인 머리 작은 서준영, 못생긴 데다 머리도 큰 배제기와 그들을 바라보던 윤성현 감독님의 인내의 눈빛이 그저 즐거웠습니다. 그게 나의 시작이었고, 처음이었고, 모르겠습니다. 마치 첫사랑 혹은 고향 같은 순수함이랄까요.


“드루와, 드루와. 이 개xx들 드루와!” 혹은 “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은 것뿐이다”로 유명한 황정민 배우가 현재 제가 소속된 회사의 대장님입니다. 아직도 한결같이 대장님은 배우로서 해야 할 모든 준비를 완벽히 갖춰서 현장에 나가신다고 직접은 아니고 건너 들었습니다. 우리 대장님인데. 좌우간 현장의 꽃은 배우라고 하지만 그 꽃은 스태프가 없으면 피울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민 형님도 늘 탄알일발장전을 하고 현장에 나가는 것이겠죠. 그들의 노력에 반하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솔직히 고백할게요. 얼마 전까지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모든 게 당연해져버려 예전 같은 모습이 줄고, 그런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조금 실망하고 자책도 했습니다. 저한텐 열정이고 애정이었던 그 행동들이 다소 줄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요즘 우리 대장님 칭찬을 많이 듣습니다. 내가 아는 배우 중 가장 사나이다, 1등이다, 확그냥막그냥여기저기확그냥막그냥 짱이다. 대장님 칭찬은 대장님한테 할 것이지 왜 나한테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장님처럼 되기 위해서라도 다시 재기발랄하고 멍청한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첫 작품에서 내가 보였던 열정, 그리고 그 열정으로 나온 결과물, 사필귀정이랄까요. 하다하다 사자성어까지 쓰게 되는 이 마당에 어쨌든 초지일관하여 일취월장할라요. 맹모삼천이라고 엄마 우리 충무로로 이사가자 힝.

뭐든지 나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지만 이 글을 받아 올리시는 박소영 기자님이 없으면 잡지에 실을 수 없습니다. 중간중간 지칠 때마다 보는 소녀시대 사이타마슈퍼아레나 콘서트 직캠 동영상이 없으면 시일 내에 마감할 수도 없었을 테니, 이 글은 소녀시대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소녀시대 하여 마감임박 할라요. 오매불망 소녀시대 우연지사 마주치세. 그렇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

가을입니다. 하늘은 높고 식욕억제기능이 마비되는 이 날씨에 바싹 긴장하시고 각자의 방식으로 헤쳐나가시길 바랍니다. 참고로 백지장도 맞들면 나아요. 내가 해봤어. 우리 동네 사는 백수랑 백지장 맞들어봤어. 그러니 조금 더 베풀고 교감하는 가을이 되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동료들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예전의 내 모습을 찾고 있습니다. 내 방식대로 예전에 가졌던 그 열정, 그리고 그 방법. 다시 한 번 유념하고 걸어가려고 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방법으로 이 쌀쌀한 외로움과 우울함을 털어버리시길 기원합니다. 시나트라의 ‘My Way’처럼요.
박정민은 영화 <전설의 주먹>으로 이름을 알린 신인 배우. 2011년 <파수꾼>으로 데뷔했다.
‘언희(言喜)’는 말로 기쁘게 한다는 뜻의 필명으로, 앞으로 영화 현장, 배우, 그리고 연기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낼 작정이다.
  • 2013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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