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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 받은 의사 출신 영화감독 양경모

“치유라는 관점에서 의사와 영화인은 닮은 점이 많아요”

지난해 가을,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가 주최하는 ‘2011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양경모씨. 의대 출신인 그는 영화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의사 대신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의 삶을 선택했다. 치유라는 관점에서 보면 의사나 영화인은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번 공모전에서 그가 최우수상을 받은 작품 <산의 기도>는 칸첸중가 봉에 도전하는 산사람들의 이야기다. 유명세를 얻은 여성 산악인과 그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한 남성 산악대장이 주인공. 두 사람은 한때 연인이었지만 친구로 남아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남성 산악대장을 후원하는 회사가 무리한 등정을 압박하면서 등반 중 사고를 당한다. 여성 산악인은 그를 구조하기 위해 등반길에 오른다. 생과 사를 오가면서도 거듭 산에 오르는 그들을 통해 도전과 우정, 경쟁과 갈등, 분노와 좌절을 그린 이 작품은 심사위원들로부터 “구성이 탄탄하고 생생한 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을 얻었다.


“사실 저는 등산을 즐기지 않아요(웃음). 아버지가 젊은 시절 산악스키까지 하셨을 정도로 산을 좋아하셔서 산과 관련된 여러 가지 모험담을 많이 들으며 자란 게 도움이 되었죠. 이 작품은 2004년 칸첸중가에서 사고를 당한 대구 계명대 산악부의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고, 자신도 죽을지 모르는데 대장을 쫓아서 묵묵히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모습을 보며 ‘아, 저 사람들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를 위한 구상은 어느 정도 했는데 마음속에 품고만 있다가 지난해 대구단편영화제에 다녀오면서 결심했어요. 더 늦기 전에 하자고. 실은 제가 직접 영화로 만들고 싶었는데 워낙 스케일이 커서 입봉감독에게 그런 기회가 오지는 않을 것 같아 결국 시나리오로 선보이게 됐지요. 누군가 꼭 영화로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면서요.”

양경모 감독은 산악인들을 “마음속에 등불을 간직하고 그것이 꺼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만으로 달려온 길, 그런 점에서 산악인들과 그는 많이 닮았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끝내 산을 놓지 못하는 산악인들의 모습이 그의 가슴에 절절하게 와 닿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 만들고 싶어

영화 <하얀 돼지>
고려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영화인이 되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다. 영화를 무척 좋아했던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 영화는 일상이었다. 의대 재학 시절에도 틈만 나면 영화를 보았다. 영화가 좋았지만 그저 향유할 뿐, 찍는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던 그에게 영화감독의 꿈을 안겨준 것은 아르바이트로 마련한 6mm 캠코더였다.

“혼자서 이것저것 찍어보기 시작했어요. 보는 것만큼이나 재미가 있어서 푹 빠져들었죠. 결국 졸업을 앞두고는 심각하게 진로를 고민했어요. 평소 영화는 재능 있는 사람들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제가 해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는데, 영화과를 다니고 있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연극영화 전공자 중에서도 너만큼 영화 좋아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고. 그 말에 용기를 얻었죠. 물론 의사의 길을 포기하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의사로서 사는 게 행복할까?’ ‘20~3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일까?’ 마음속으로 그런 질문을 수없이 던진 끝에 결론을 내렸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을 따라가기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요.”

결심이 서자 그는 연극영화과 입학을 목표로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졸업을 6개월쯤 남긴 시점에서 의사고시와 수능시험을 동시에 준비했다. 수능시험 다음날 의사고시를 보고, 그 다음날 대학 입학 논술시험을 보며 강행군을 했지만 두 시험 모두 합격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영화 지식과 경험이 이미 상당한 수준이었던 그에게 강의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휴학계를 낸 뒤 공중보건의로 입대했다. 부모님께는 그제야 알렸다. 모든 일이 결정되고 난 뒤, 일종의 ‘통보’를 받은 부모님은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하게 반대한 것도 아니었다. 늘 그렇듯이 아들의 선택을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부모님이 지금도 그는 고맙다.

영화 <사신의 도착>
“군생활을 하면서 주말에는 영화학교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었어요. 많은 영화인들과도 교류하게 되었죠. 그런데 막상 영화 현장에 나와 보니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연극영화과로 돌아가지 않고 삼수 끝에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에 입학했어요. 공중보건의로 일하며 알뜰하게 모은 돈으로 영화를 만들었어요. 방학 때면 선배들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죠. 영화판이 얼마나 춥고 배고픈 곳인지 절감한 시간이었죠. 지금도 별로 달라진 건 없지만요(웃음).”

그동안 그는 7~8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삶과 죽음의 문제를 주로 다루는 그의 작품은 각종 국제·단편영화제에 단골로 초대된다. 2009년 작인〈시베리안 캥거루〉(2009)는 포르투갈과 영국, 루마니아의 국제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지금도 끊임없이 시나리오를 쓰고 단편영화를 만드는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영화 <디지털 무비>
“남들과는 다른 길로 왔지만 ‘의대에 가지 않고 곧바로 영화를 공부했더라면’ ‘의사로 살면 어땠을까’ 같은 후회는 조금도 하지 않아요. 병원에서 경험한, 생사의 경계를 오가는 과정에서 겪는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생명의 소중함이 영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고 있거든요. 제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그는 히트작을 한두 편 내고 반짝 뜨는 감독보다는 영화에 대한 열정을 오래도록 간직하며 평생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영화와 함께 하는 삶이 그저 행복하기만 이 영화감독의 새해 소망은, 자신이 깊은 애정으로 써내려간 시나리오 <산의 기도>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진 : 김선아
  • 201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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