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안두진

나만의 언어 만들어 그립니다

낯선 체험이었다. 어두운 방에서 작품에 빙 둘러싸이는 것은. 작가 안두진의 작품 〈지평선〉은 12m가 넘는 길이의 그림이 도넛 모양으로 서로 연결되어 관람객을 감싼다. “보통은 사람 뒤에 풍경이 있는데 뒤에도 앞에도 그림이 있는 상황입니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풍경화는 한눈에 조망할 수도 없습니다. 관람객이 그림으로 둘러싸여 빠져나갈 수 없이 갇히는 독특한 체험을 의도한 것입니다.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 장치를 사용해 관람객을 좀 불편하고 불안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안두진
1975년생. 경기도 수원 출생, 홍익대학교 및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 2005년부터 5회의 개인전. 소카아트센터(베이징), 교토아트센터(교토), 토털미술관(서울), 과학기술박물관(밀라노), 할렘스튜디오 펠로십(뉴욕), 실비아 왈드 앤 포김 갤러리(뉴욕), 국립현대미술관(과천), 대안공간 루프(서울), 캔버스인터내서널 아트(암스테르담), 갤러리에이티(싱가포르), 아트하우스(런던), 서울시립미술관, 소마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마로니에미술관 등에서 벌어지는 주요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5년 중앙미술대전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청담동 송은아트스페이스에서 다섯 번째 개인전을 가진 작가 안두진을 만났다. 전시가 시작되는 입구에 걸려 있는 작품 〈섬광〉은 45도 각도로 천장에 비스듬히 걸려 있어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을 유도한다. 꿈틀거리는 검은 구름 사이로 번개가 치는 하늘을 진짜 하늘처럼 올려다보도록 고안되어 있어 일반적인 그림과는 다른 감상법을 유도한다. 작품의 설치뿐 아니라 그림의 여러 가지 디테일도 그러하다. 통상적인 반원형이 아닌, 승천하려고 꿈틀거리는 용의 몸뚱이처럼 긴 무지개 역시 낯설다.

내가 전해 들은 말은 그가 언제나 드로잉북을 끼고 다니며 그때그때 세상의 모든 사물을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는데 여념이 없다는 것, 그의 작가 노트가 웬만한 논문보다 두껍다는 것 등이었다. 모범생 같은 작가는 차분하고 논리적인 언어로 작품을 일일이 설명해나간다. 많은 생각과 연구 끝에 나온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대학 재학 시절, 그는 자유롭고 흥미로운 작업을 원했다. 그러나 어떤 것을 해도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던 상황이었다.

“나만의 언어를 새로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회화의 최소 단위인 점・선・면보다 더 최소 단위를 만들어서 근원으로 돌아가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이것이 안두진 작품 세계의 축을 이루는 ‘이마쿼크(Imaquark)’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이마쿼크’는 ‘이미지(Image)’의 ‘이마(Ima)’와 물질의 최소 단위인 ‘쿼크(Quark)’가 합성된 용어로, 이미지를 이루는 형식적・물질적 측면과 함께 개념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최소 단위를 의미한다. 2002년에 이름을 얻은 이 개념은 10년 동안 그의 작품 속에서 발전해왔다.

충돌의 언어 The fault lines, 전시 전경, 2011
여러 가지 요소를 자유롭게 사용해서 안두진만의 새로운 화폭을 구성하는 방식은 〈먹구름이 몰려오는 어느 날〉(2011) 연작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그림도 빙 둘러싸는 그림 <지평선>처럼 하늘은 격정적인 붓질이 풍부한 회화적인 느낌으로, 땅은 중세 북유럽풍 그림처럼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꿈틀거리는 붓질로 묘사된 먹구름과 그 사이로 비치는 형광색 햇살, 몰려드는 해일, 세세하게 묘사된 숲과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형광색 불길 등 모든 요소가 서로 상반되고 이질적이다.

지평선 Horizon, 81.6×1252.5cm, Acrylic on paper, 2011
그의 그림이 낯설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색채의 사용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그림 도처에 전통 회화에서는 결코 추천되지 않는 형광색을 과감하게 사용했다. 이마쿼크라는 관념을 색채에 적용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의 학자적 진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색채상의 이마쿼크를 실험하기 위해 그는 모든 물감을 사다가 병치혼합을 해보았다. 형광색은 화면을 촌스럽게 만들었으며 전통적인 공간을 어그러뜨려 깊이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돌출하는 것 같은 느낌을 만들었다. 안두진은 세련됨보다 어눌함을 선택했다. 완결된 것보다는 가능성을 향해 무궁무진하게 열려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마쿼크라는 개념은 다른 한편 무한한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것은 존재했던 개념이 아니라 작가의 발전과 더불어 무한 증식할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결코 회화에 국한되지 않으며 모든 미술사적 요소를 아우르는 개념이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어느 날 A day the dark black clouds gather, 198×292cm, oil on canvas, 2011

이마쿼크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안두진의 신선한 세상에 미술계는 중앙미술대전 작가 선정, 200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젊은 모색전>과 여러 해외 미술관에서의 전시로 화답했다. 2006년 브레인 팩토리에서 있었던 개인전 〈Saint Brain Temple〉과 2008년 대안공간 사루비아 다방에서 있었던 〈마콤에서 벌어진 은밀한 파티〉는 설치 미술가로서의 그의 면목을 보여준다. 〈Saint Brain Temple〉은 브레인 팩토리라는 대안 공간의 천장에 옛 교회 건물들처럼 천장벽화를 그렸으며, 〈마콤에서 벌어진 은밀한 파티〉에서는 권력자의 무덤을 모티프로 작업했다. 모두 ‘숭고’라는 위대한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는 개념을 재해석하는 작업들이었다. 회화는 이러한 설치요소에 반드시 필요했던 미술적 수단이었다.

천정화-열락 The height painting-Rapture, 340×510cm, cmacrylic on canvas
“내가 생각하는 것이 그대로 전달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전달 과정에서 생기는 낯섦조차도 내게는 중요합니다. 소통이 잘된다는 것이 무조건 이해가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낯선 것에 부딪혀서 새로운 세계를 느끼고 상상하게 되었을 때가 소통이 잘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안두진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다. 상식을 반복하기 위해서라면 전시장은 매우 부적절한 공간이다. 전시장은 새로움을 위한 공간이고 새로움은 늘 일상에서 소모되고 지친 우리의 감수성을 일깨워준다. 그럼으로써 작가의 창조가 관람객의 창조로 연결되며 그러기 위해서 안두진은 모든 가능성을 다시 한번 열어놓는다.

마콤에서 벌어진 은밀한 파티 Covert Party at Makom, Insatallation Shot Mixed Media, 2008
마지막으로 〈거기〉라는 제목의 숲 그림. 정확한 지명 대신 불분명한 명칭을 부여한 결과, 모호하지만 더 많은 상상의 가능성이 생겨났다. “‘거기’는 최종 목적이 아닌, 바로 그 직전의 단계에 멈추는 순간들을 의미합니다. 분석이 아니라 직관이죠. 직관으로 본질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가 있을 것 같아요. 그 언어를 찾고 있습니다.”

만족할 때까지 그는 찾을 것이고, 그의 말대로 현대미술은 이런 모색의 과정 자체를 작품이라고 부른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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