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에 첫 사랑 시집 《상화 시편》 낸 시인 고은

아내는 나의 헌법이자 유토피아

경기도 안성에 있는 고은 시인 댁에 간 적이 있다. 지난겨울 폭설이 쏟아지던 날이었다. 그때 고은 시인보다 아내 이상화 교수(중앙대 영어영문학과)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는 객이 행여 길을 지나칠까 혹한에도 얇은 스웨터 바람으로 문밖에 나와 남편의 손님을 기다렸고, 도자 찻잔에 차를 내왔으며, 거실에 걸린 시인과 딸 차령씨의 그림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주었다. 딱 한 번 봤을 뿐인데 이상화 교수는 인상 깊었다. 고은 시인의 시간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딱 필요한 역할만 해주는 아내는 현명하고 따스한 사람이었다. 시인이 무엇을 원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훤히 꿰뚫고 있는 듯했다.

고은 시인이 그런 아내에 대한 사랑 시집을 냈다. 시집 제목은 아내의 이름을 붙인 《상화 시편》. 부제는 ‘행성의 사랑’으로, “아내의 둘레를 돌 때마다/ 나는 빛난다”(시 〈공전〉 중에서)는 시구에서 착안했다. 이 시집에 쏟아지는 관심이 뜨겁다. 시인이 문단 활동 53년 만에, 160여 권의 책을 낸 끝에 처음으로 낸 사랑 시집이니 그럴 수밖에. 고은 시인이 누구인가. 한국 현대시의 화신 같은 인물 아닌가. 6·25를 목격하며 허무주의를 노래했고, 승려가 된 10년간은 선시를 썼으며, 환속 후 전태일의 죽음을 보고는 현실 참여의 시를 썼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에는 이 모두를 아우르는, 넓이와 깊이가 방대한 시를 쓰고 있다.

고은 시인의 문학인생 최초의 사랑 시는 어떨까. 사랑 시 역시 진폭이 크다. “네가 화낼 때 / 몇 달 만에 화낼 때 손가락으로 식탁을 똑똑 두드릴 때 / 이 세상 전체 캄캄하다”(〈네가 화낼 때〉), “삼십년의 가시버시인 우리 / 아직도 부끄럽습니다 / 두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오래된 부끄러움〉) 등 피식 웃음이 나는 내용에서부터 전 우주로 확대되는 숭고한 사랑에 이르기까지. 《상화 시편》과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를 동시에 낸 시인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창비 출판사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상화 시편》은 경이롭습니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람이 사랑의 유한성을 노래했는데, 선생님은 불멸의 사랑을 이야기하더군요. “단 한 번도 식어버린 적 없는 / 단 한 번도 지겨운 적 없는 / 하루하루 깊어지는 해저의 사랑”(〈모국어로 살면서〉)이라고요.

아마 내 아내도 그럴 거예요. 내가 이렇게 된 것은 아내로부터 반사돼서일 거예요. 사랑을 이원적으로 영혼적이다, 혹은 육신적이다 식으로 정의하는 것은 일상에서는 무효 같아요. 또 유한하다, 혹은 무한하다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때에는 지독하게 유한적이기를, 이 세상뿐이기를 바라요. 그래서 있을지도 모르는 이전의 세상이나 다음 세상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또 어떤 때는 이것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연장돼가는지 궁금해지면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그 무엇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무엇이다,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아내에 대해 “신령스럽다” “아내는 내 헌법이다” “아내는 나의 어머니다” “나는 상화라는 자궁 속의 태아다”라고 썼습니다.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장욱 시인은 그런 선생님에 대해 ‘누이 콤플렉스’라는 표현을 쓴 적도 있고요.

이를테면 자궁이라는 것, 그것은 근원적이면서 궁극적인 것과 맞닿아 있어요. 시학의 종합성을 다 갖춘 곳이 자궁이거든요. 나에게 아내는 아내뿐 아니라 나를 이 세상에서 낳고, 길러준 기억으로서의 어머니이기도 하고, 그 이전의 어머니까지 이어지는 존재이고, 이모나 고모나 누이까지의 혈친을 아우르는, 이름 지을 수 없는 그런 대상이에요. 아내를 바라보고 있으면 막 스며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하나의 전체 말고 그 전체가 파생되어가고, 다른 것으로 변형되어가고, 다른 어떤 생명의 율동 같은 것이 오는 느낌을 받아요.

그런 신비스러운 대상이 아내 말고 또 있었나요?

없었지요. 있었다면 ‘아, 이게 매우 흔한 경험이구나’ 싶었을 거예요.

아내의 둘레를 돌 때마다
나는 빛난다
아내의 둘레를 돌 때마다
나의 한쪽이 빛난다

아내의 빛으로
나의 다른 한쪽이 캄캄하다

나는 아내의 위성이다 내 운명이다
운명이란 뭔가
운명이란
우주의 제도 아닌가

나는 아리안이 아니다
나는 내 아내의 형식이다

- <공전>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실 건가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아니요. 나 같은 사람이 아내를 만난 것 자체가…. 아내를 지금보다 더 편하게, 자유롭게, 더 축복으로 싸이게 만들면 그때는 난 이 세상을 하직하겠어요. 그때가 되면 넘보지 않겠어요. 흔히 현재가 충족되면 그 충족감을 미래로 연장하고 싶어 하는데, 난 그 이야기는 내 입으로 할 수가 없네요. 나는 지금 아내를 만나서 사는 것 자체가 아슬아슬해요.

일종의 경외감인가요?

내가 만나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은 내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난 이런 행복이 지속되는 것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감당하는 것 같아요. (아내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어요. 그런데 어떻게 다음 생을 말하겠어요?

선생님의 그런 숭고한 사랑을 받고 있는 아내도 행복감이 크지 않을까요?

그건 내가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거의 일치되지요. 그건 확신하지요.

아내 이상화 말고, 인간 이상화는 어떤 사람인가요?

불의를 못 견디는 존재이고요, 타자를 모독해 본 적이 없는 여자예요. 욕이나 비난을 해본 적이 없는 여자예요. 그러니까 나도 자연스럽게 집 안에서는 천박한 언어를 쓰지 않게 되지요. 누구를 욕하고 싶으면 남산에 올라가 실컷 혼자서 욕할 수 있지만, 우리 집에서는 누구를 저주해본 적도 없고, 혐오해본 적도 없어요.

아내와 소통이 잘되시나요?

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힘있는 목소리로) 그럼.

이상적이십니다.

난 사랑을요, 아주 긴 것만이 사랑이라고 봐요. 어제와 오늘을 가지고 감히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측정할 수 없는 도달 불능점을 넘어가는 것, 저 미래의 어떤 고공까지 가는 것, 일생으로도 부족한 것, 그게 사랑이에요. 그래서 내 시에 “사랑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말을 썼지요.

아내의 사랑 없이는 두 가지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쓰셨어요. 하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것”이라며, “15년 전에 지수화풍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하셨고, 또 하나는 “시집 《조국의 별》 이후 많은 문학적 결실이 불가능했을 것”이라면서 “아내는 영감의 화신”이라고요. 첫 번째 내용은 무슨 의미인가요?

지금 나는 아내가 주는 밥, 아내가 나에게 미치는 생활의 리듬 이런 것에 의해 생명이 연장되는 것을 경험해요. 실제로 느껴요. 그전에 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았거든요. 언제 집에 돌아갈지도 모르고, 밥도 제대로 안 먹었는데, 아내에 의해 율동이 생겼죠.

아내가 건강관리를 잘해주시나 봅니다.

아니요. 우리는 관리를 안 해요. 관리는 또 둘 다 싫어해요. 운명적으로 아내를 만남으로써 내 생명이 연장됐다고 말하는 것이 리얼리티가 있겠네요.

아내가 아닌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유혹을 느끼시나요?

아, 예쁘죠. 그건 노을이나 낙조를 보면 그 아름다움에 사람들이 미치고, 신체가 부자유한 사람을 보면 연민이 생기는 것 같은 차원이에요. 그런 게 없으면 안 되죠.

평범한 부부처럼 질투도 하나요?

허허, 무슨 질투. 그런 건 용광로 안에 들어와 다 녹아버려서 없어요.

두 분은 필부필부(匹夫匹婦)와는 다른 삶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아내는 영문학에서 유토피아 문학을 전공했습니다. 나를 만나서 사실은 중단한 상태지요. 나 때문에. 아니면 좋은 논문을 많이 쓰고, 좋은 소설을 많이 읽었을 거예요. 나는 이 세상을 한 번도 유토피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유토피아라는 것 자체가 없는 것을 찾는 행위니까. 그런데 난 있어요. 아내가 내 유토피아예요.

《상화 시편》과 동시에 펴낸 시집 《내 변방은 어디 갔나》로 넘어가겠습니다. 근작 시임에도 나이 든 시인의 시 같지 않아요. 어떤 시는 철부지 소년 같고, 어떤 시는 억겁의 세월을 살아온 도인의 시 같습니다. 팔십에 가까운 나이가 실감 나시나요?

(해맑게 웃으며) 흐흐, 난 철이 없어. 너(기자를 가리키며)하고 차이를 안 느껴. 쟤(창밖의 나무를 가리키며) 신록하고도 차이를 안 느껴. 난 바보예요. 멍텅구리예요. 뇌의 어떤 부분에 결핍이 있나 봐.

“더 이상 발견하지 말 것 / 다시 말할 것 / 더 이상 발견하지 말 것 (중략) 에디슨아 / 에디슨아”라는 시 〈포고〉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인류가 ‘발견’을 어느 날 그만뒀으면 좋겠어요. 인류의 진화가 이 정도에서 마쳤으면 좋겠어요. 나는 자전거까지만이 인간이 지구에서 사는 도리로서 마지막 발견이 됐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자동차부터는 지구를 죽여가면서 상처를 입히는 거니까. 속도도 마찬가지예요. 점점 광속으로 변해가는 세상이지만 자전거 정도의 삶의 속도가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나 자신이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다니면서 이런 말을 함부로 하기도 참 그렇긴 해요.

문학적 생산성이 대단합니다. 그간 쓰신 저서가 160여 권이고, 이것을 쌓아놓으면 선생님 키보다 크지요? 천성이 성실하신가요?

난 게으른 건 못 견뎌요. 늘 부지런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습니다. 물론 귀찮을 때도 많지요. 어디 가서 술 먹고 싶을 때도 많고요. 그럴 때에는 이렇게 내 스스로 엉덩이를 두드리면서 “아가, 은아, 앉아야지? 그렇지?” 하고 엄마가 아기를 달래듯이 나를 달랩니다.

자중자애하시나요?

아니요. 난 자기를 사랑한다든지, 자기를 귀하게 여긴다든지 그러지를 못해요. 오히려 나를 파괴해요. 파괴하지 않으면 타자와 만날 수 없지요. 아내를 만날 때에는 나로서 만나지 않고, 나 없이 만나지요. 그래서 내가 아마 아내가 돼버릴 거예요. 그래야지요. 기왕에 이 세상에 사는데.

《상화 시편》 표지 그림은 선생님 작품이고, 작년에 펴낸 산문집 《나는 격류였다》의 표지 그림은 딸 차령씨 작품이지요? 선생님 댁에 갔을 때 선생님 그림과 차령씨 그림이 잘 구분되지 않더군요.

그런가요? 내 그림은 조잡하고, 딸 그림은 상상력이 대단해요. 딸은 미술사학을 했어요. 이론가죠. 그림 그리는 걸 배우지 않았어요. 아빠 생일이나 엄마 생일 때 그림이나 시를 선물로 주면서 그리기 시작했죠.

화가가 되고 싶었던 선생님의 DNA를 물려받았나 봅니다.

내 DNA보다 엄마 DNA를 더 많이 물려받은 것 같아요. 난 없어요. 순 건달이야. 허허.

격류 얘기로 돌아가지요, 그야말로 격류 같은 삶을 사셨어요. 전쟁 통에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 자살 시도도 몇 번씩 하고, 10년간 스님으로 살다가 환속해서는 사회혁명가로 살면서 내란음모죄, 계엄법 위반 등의 죄명으로 수감 생활도 했고요. 그 삶을 살아낼 때에는 힘들었겠지만 이 격류 같은 삶을 시로 녹여내니 결과적으로 보면 큰 시인이 되기 위한 운명론적인 귀로가 아니었나 싶습니다만.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나한테 분에 넘치는 격찬을 많이 해줍니다. 그게 참 좋다가도 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이런 소문에 춤춰서는 안되겠다, 이게 참 무서운 거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25세에 처녀시를 발표할 때의 미숙하기 짝이 없는 그 축복에서 시를 시작해야겠다고 맹세하고 그러죠.

“나는 시를 쓰는 게 아니다. 시가 내게로 온다”고 하셨습니다. 창작의 고통이 없으신가요?

없어요. 그게 다른 동료들에게 참 죄송해요. 누구는 백지를 보면 “고통스럽다, 암흑이다”고 하는데, 난 안 그래요. 난 백지를 보면 그 위에 올라가 막 뛰어놀고 ‘섬마섬마’ 하는 아기처럼 춤추고 싶어요. 난 창작의 고통이 없어요. 그런 점에서 난 창작하지 않는 것 같아. 아르헨티나의 보르헤스는 “시를 삼킨다”고 했는데, 나는 “시를 숨쉰다”고 해요.

워낙 다독하시잖아요. 요즘은 무슨 책을 읽으시나요?

나는 밤에 지독하게 행복해요(함박웃음을 웃으며). 밤에 책을 볼 때처럼 황홀할 때가 없어요. 오늘 아침에는 레비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를 읽다 왔어요. 난 이 책 읽다가 저 책 읽다가 막 그래요. 한국 소설은 애란이 것(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 읽고 있어요. 시인 될 사람이 소설가가 됐더라고. 은희경 소설도 좋아해요. 은희경은 아주 튼튼한 구조를 가지고 있죠.

〈그래도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부정과 긍정이 한몸으로 뒤엉켜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주더군요. 이 세상을 “모독당한 산야, 배신당한 도시”로 표현하면서도 “그래도 꿈꾸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며 희망을 갈구해요.

그 시가 제 메시지인데요. 세상은 지금 엄청나게 소비하고 있어요. 물질도, 내면도 다 소진해버리잖아요. 무엇이든 막 쓰잖아요. 심지어 내면의 가능성이나 꿈도 다 소비해요. 지금 한국은 도취해 있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에서 몇 등 몇 등 하면서 말이에요. 자기를 과장하면 안 돼요. 남자들 유쾌하게 술 먹잖아요, 폭탄주(웃음). 캬, 나도 좋아하지요. 이걸 1년에 한 번만, 아니 1년에 세 번씩만 해야 해요. 그런데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죠(웃음).

사진 : 김동욱
  • 201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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