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우석헌자연사박물관’ 김정우 한국희 부부

후대 교육을 위해 목숨 걸고 수집해왔죠

수집하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손에 넣어야 잠이 온다는 컬렉터들. 온갖 희생, 때로는 모험을 무릅써가며 모은 물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사립박물관을 연 후에는 다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다. 관람객의 입장료 수입으로는 운영비를 대기가 벅차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공립 박물관은 공짜인데, 이곳은 왜 입장료가 이렇게 비싸냐?”며 항의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 ‘사서 고생’이 따로 없다. 수집벽에 빠져 가정은 돌보지 않아 “아내한테 이혼당하게 생겼다”고 한탄하는 수집가도 꽤 있다.

그런데 이 남자, 행운아다. 자신의 꿈을 아내가 더욱 크고 단단하게 실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에 자리 잡은 우석헌자연사박물관. 설립자인 김정우(63) 씨가 기초를 쌓은 터전에 아내인 한국희(50) 씨가 관장을 맡아 성공적인 박물관 운영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밖에서는 자연사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규모로 보이는 이곳은 안으로 들어서자 전시품이나 전시 시스템이 알차고 신선해 놀란다. ‘생명의 역사’ ‘1억년의 지배자’ ‘생명의 요람’ ‘포유류의 승리’ ‘광물의 세계’ ‘순환하는 암석’ 등의 섹션으로 나뉜 상설전시실. 첫 번째 섹션인 ‘생명의 역사’는 46억 년 전 태어난 지구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화석을 통해 알아보는 코너. ‘1억년의 지배자’에서는 중생대 지구의 정복자였던 공룡의 존재를 화석, 공룡 알, 공룡 발자국, 초식공룡이 풀과 함께 삼켰던 돌인 위석(胃石), 실물 크기로 복원된 육식공룡 모노로프사우루스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물속같이 꾸며놓은 ‘생명의 요람’은 바다 속 생물의 역사를 화석을 통해 재현해놓았다. ‘광물의 세계’에는 길고 긴 시간을 통해 형성된 각양각색의 광물이 전시되어 있다. 보석가게처럼 유리박스에 들어 있는 자수정, 마노 등 다양한 색감의 광물이 빛을 받아 빛난다. 2m 높이의 거대한 자수정 원석도 보랏빛을 빛내고 있다.


전시실에 들어온 아이들은 공룡의 흔적 앞에서, 어머니는 반짝이는 광물 앞에서 시선을 떼지 못할 것 같다. 야외 테라스를 거쳐 2층으로 올라가면 갖가지 종류의 공룡 모형이 놓여 있는 ‘쥐라기공원’,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 박물관에만 있는 특별한 장소를 만날 수 있다. 이른바 열린 수장고. 통유리 안쪽은 전시되지 못한 갖가지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수장고인데, 학예사들이 유물을 분류하고 연구하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게 해놓았다.

“수집품을 무조건 많이 보여주기보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여줄까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하나를 보더라도 깊은 인상을 받을 수 있게끔 유물 하나하나를 돋보이게 전시해,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게 했지요. 암모나이트의 나선구조를 따라 나선형으로 동선을 만들면서 스토리텔링이 되도록 했습니다. 전시품이 2000여 점이라면, 수장품은 12만~13만 점 돼요. 교체 전시를 한다 해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으니 아예 수장고를 공개한 거지요. 수장고를 공개하는 박물관은 거의 없어요. 자신의 밑천을 다 내보이는 것이니까요.”


한국희 관장은 박물관의 기능을 수장품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것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학예사들의 연구 기능을 활성화해 수집과 연구, 교육, 전시가 모두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박물관이 수장하고 있는 화석, 광물, 암석을 하나하나 분류해 세계생물다양성협약기구에 보고하고 있고, 박물관 가까이에 있는 왕숙천의 생태계를 정기적으로 조사해 표본과 영상, 보고서로 남기면서 지역사회의 환경문제에도 역할을 하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이 학예사와 함께 팔당호 일대를 생태조사하고, 채집과 표본제작 등을 하면서 생물환경을 탐구하는 ‘에코 스카우트’ 등 교육활동도 활발하다. 우석헌자연사박물관은 2010년 4월 개관한 남양주역사박물관의 위탁운영도 맡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인정받아 새로 만들어진 공립박물관 운영까지 맡은 것이다.


26종의 공룡 알 등 지구의 역사를 증거하는 유물 가득

세계 각국을 다니며 자연사 유물을 수집하고, 박물관을 세운 사람은 김정우 씨인데, 요즘 박물관의 얼굴은 아내인 한국희 씨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갖가지 모험을 마다하지 않는 고고학자로 등장하는 해리슨 포드처럼 턱수염에 모자를 눌러 쓴 김정우 씨와 머리를 단정히 뒤로 넘겨 빗은 한국희 관장.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면서도 김정우 씨는 “박물관 일이라면 이 사람한테 물어보라”며 뒤로 물러섰다. 한국희 씨는 어떻게 남편보다 더 박물관에 애정과 열정을 갖게 되었을까. 김정우 씨는 “원래 이 사람은 돈을, 나는 돌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수집은 돈을 돌로 바꾸는 일이었다. 영화 연출을 전공한 후 무역업, 귀금속 사업을 했던 김정우 씨는 “정확히 무게를 달아 파는 보석상 일은 내 성미와 맞지 않았다”고 말한다. 귀금속은 광물 중 가장 빛나는 한 부분을 얻기 위해 여지없이 다른 부분을 파괴하는 일. 그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돌덩어리 자체에 매료되었다. 처음에는 색깔도 모양도 빛도 다양한 광물의 세계에 매혹돼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귀금속은 한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라면, 지구의 역사를 담고 있는 광물과 화석을 모으는 일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다.

“세계적으로 광물이나 화석을 판매하는 시장에 가보면 독일인·일본인들이 좋은 물건을 다 가져가더라고요. 청소년들에게 보여주며 교육하려는 거지요. 그게 그 나라의 국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걸 보며 자존심, 책임감이 발동했지요. 강한 나라를 만들려면 우리도 저런 교육적 자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지구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들을 수집하느라 보석 사업을 하면서 모은 돈은 물론,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서울 상도동의 빌딩, 땅까지 처분했다.

“남편이 항상 차고 있던 시계가 안 보이는 거예요. 결혼예물로 장만한 롤렉스 시계였는데. 집에서 물으면 ‘사무실에 두고 왔다’고 하고, 사무실에서 물으면 ‘집에 두고 왔다’고 하는 거예요. 어느 날 찾아온 남편 친구가 ‘저게 롤렉스 시계와 바꾼 거냐?’고 발설하는 바람에 시계를 팔아 수집했다는 걸 알았죠. 그때는 정말 화가 났어요. 결혼 증표까지 팔아 치울 정도면 ‘나는 안 바꾸느냐?’고 따졌죠.”

그러다 서서히 남편한테 동화돼갔다 한다.

“산지까지 찾아가 꼭 갖고 싶은 물건을 보고도 돈 때문에 발길을 돌려서 온 날은 남편이 잠을 이루지 못해요. 밤새 뒤척이는 것을 보면서 ‘남편이 저렇게 원하는데…’라고 저도 마음 정리가 된 것 같아요.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DNA에 공익(公益)적인 일을 하라는 게 각인되어 있는 사람 같아요. 술 마시고 노름하는 것도 아니고, 뜻있는 일을 하겠다는 것인데. 먹고 살고, 아이들 공부시킬 것만 빼놓고는 물려받은 유산까지 모두 이 일에 투자했지요.”

2003년 박물관을 설립한 후 관장을 맡은 한국희 씨는 ‘이왕 하는 일,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박물관학 석사학위까지 박았다. 한국희 씨가 관장을 맡아 박물관 운영과 발전에 골몰하고 있다면, 설립자인 김정우 씨는 수집을 계속하면서 사업으로 번 돈으로 박물관 운영을 돕는 등 측면에서 지원하고 있다. 브라질을 18번 방문하는 등 남미와 아프리카·중국·인도·일본 등 세계 각지를 다니며 유물을 수집해온 김정우 씨. 그는 “수집가는 좋은 물건을 단번에 알아내는 직감과 심미안이 중요한데, 고맙게도 그걸 제가 타고난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하도 많이 보다 보니 요즘은 광물을 사진으로만 봐도 단단한 정도를 알아맞힐 정도라고 한다. 우석헌자연사박물관에는 공룡 알이 26종 있는데, 이렇게 다양하게 갖춘 곳은 세계 박물관 전체를 봐서도 찾기 어렵다고 자랑한다. 인도네시아 오지에서 수십 톤에 달하는 나무화석을 발견하고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다.

관람객에게 유리창을 통해 개방하는 수장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차로 달리다 모터보트로 갈아타고 40분 정도 갔을 때예요. 원주민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고, 용변까지 해결하는 강에 거대한 나무화석 7~8개가 서 있는 거예요. ‘저거 가져가고 싶다’고 했더니, 실을 수 있는 배가 없다며 배부터 만들어달라고 하더군요. 원주민 8명이 보름 동안 화석에 금속 체인을 감아 끌어올린 후 배에 실었는데, 정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어요. 강도에게 돈을 뺏기고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은 도처에 깔려 있었고요.”

갖은 어려움을 겪는 것은 한국희 관장도 마찬가지였다. 한 해 관람객이 12만 명에 이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박물관 운영의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지만, 운영비를 충당하기란 항상 빠듯한 실정이다. 월급 줄 돈이 없어 직원들 눈치를 봐야 하거나 전기세가 두세 달씩 밀려 독촉을 받는 등 순간순간 어려움이 닥칠 때는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다. 그가 벤치마킹하고 싶은 박물관은 미국의 시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박물관에서 만든 문화상품을 전 세계에 판매하는 등 그곳의 운영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서라고 한다. 가시밭길로 들어선 부부에게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인지 물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유물을 찾아내 값을 흥정할 때죠.”(김정우)

“유물을 보고 감동받은 관람객의 얼굴을 볼 때입니다. 관람객 중에는 ‘이런 박물관을 세운 사람들을 직접 보고 싶다’며 저희를 찾아오는 분도 계시고, ‘한 번에 다 보기 어렵다’며 계속 찾아오는 학생도 있죠.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가 하는 일이 헛되지 않다는 확신과 보람을 갖게 됩니다.”(한국희)

부창부수(夫唱婦隨)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5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