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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詩와 詩人을 찾아서 (46) 김혜영 〈별자리〉

아버지는 법과 질서, 추방당한 왕, 결국 해석되지 않는 미로

아버지의 이름은 A였다고 기억해요

아빠 팔베개를 베고
애국가를 불렀지요

한여름 밤에 평상에 나란히 누워
아빠와 세어보던 별들은
크리스탈 모빌처럼 흩어졌다 모여들었죠

별자리에 아빠와 내 이름이 있다는
엉뚱한 소문을 들었어요

아버지의 이름이 X라는 비평을 읽었어요

아버지는 얼룩, 보이지 않는 시선
때로는 외로운 담배냄새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 다락방에 앉은 바둑판
엄마의 잠옷 밑으로 손을 넣는 사자
아버지는 속이 다 비치는 어항의 그림자

아버지의 이름이 X라면 내 이름도 X예요
무한하게 확장되는 숫자. 우주에 가득한 별처럼
X의 긴 행렬을 상상하다 입술을 닫아요

아빠, 퍼즐조각이 이어진 미로에서
출구를 찾지 마세요 헝클어진 길이
아빠의 집이었고 신발이었잖아요



〈별자리〉에서 시의 여성 화자는 아빠와의 행복했던 한때를 추억한다. 두 사람은 한여름 밤 평상에 나란히 누워 별들을 바라본다. “한여름 밤에 평상에 나란히 누워 / 아빠와 세어보던 별들은 / 크리스탈 모빌처럼 흩어졌다 모여들었죠.” 이때 ‘아빠’는 ‘아버지’와는 다른 존재다. ‘아빠’는 자연적인 질서 안에서 ‘나’의 양육자이자 보호자다. 어느 날 ‘아빠’는 ‘아버지’의 얼굴로 나타난다. 아버지는 대문자 X로 변신한 것이다. ‘X’는 무언가 금지를 명령하는 사람, 즉 법과 권력, 그리고 상징적 질서의 발화자다. 아버지의 이름은 상징적 법의 운반자를 지시하는 하나의 기표다. ‘아빠’가 ‘X’로 전위(轉位)됨으로써 ‘나’와의 행복한 시절은 끝난다. 자연적인 질서 안에 존재하는 ‘아빠’는 딸을 안지만 거기에서 밀려나와 사회적 질서에 포섭되며 법의 형상과 동일시되는 ‘아버지’는 딸을 안지 못한다. 아버지는 모든 남자에게 다 자란 제 딸을 안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데, 그 모든 남자에는 자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권한 아래에 있는 딸의 세계에서 스스로 자신을 추방한다. 아이는 아버지라는 현존의 침입을 금지와 거절로 체험한다. 이때 아버지가 아이에게 금지하는 것에 관해 라캉은 “우선 충동의 만족을 금지한다”(조엘 도르, 《라캉 세미나·에크리 독해 1》)고 적는다. 아이는 아버지의 금지함으로 말미암아 욕구의 좌절을 겪는다. 더 많은 욕구의 좌절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관계에서 틈이 생기고 이 틈은 갈수록 벌어진다.

〈별자리〉의 여성 화자에게 아버지는 어떻게 비치는가. 아버지는 권한을 가진 자로서 아이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금지의 계율들로 아이의 내면에 전면적으로 침입한다. 아이의 내면에서 자아와 동일시되던 아빠는 사라지고 그 대신에 금지자이고, 거절자이며, 박탈자인 X라는 기표가 나타난다. “아버지는 얼룩, 보이지 않는 시선 / 때로는 외로운 담배냄새 /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 다락방에 앉은 바둑판 / 엄마의 잠옷 밑으로 손을 넣는 사자 / 아버지는 속이 다 비치는 어항의 그림자”. 아버지는 아이에게 명예로운 존재가 아니다. 아버지는 존재의 누추함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감시의 눈길이다. 담배냄새, 낚싯줄, 바둑판 따위는 아버지의 기호(嗜好)와 사생활을 보여주는 기표들이다. 아버지는 추방되어 그 보잘것없는 사생활 속에 유폐된 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엄마의 잠옷 밑으로 손을 넣는 사자”, 즉 아이에게 욕망의 소외를 겪게 함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어머니를 단념시키는 존재다.

‘아빠’는 부성의 권력을 거머쥔 X의 존재가 됨으로써 딸의 세계에서 제 권력으로 자신을 배척하고 추방한다. 아빠는 제 딸을 더 이상 안지 못해 불행하고, 딸은 가장 중요한 것을 박탈당함으로써 불행해진다. 이 불행을 시인은 “목사 아빠가 저녁 식사를 금지하네 / 하얗게 질려가는 아이들”(〈프로이트를 읽는 오전〉)이라는 은유적 풍경으로 보여준다. 아버지 쪽에서는 대상의 결여이고 딸 쪽에서는 대상의 박탈이라는 의미에서 불행은 이중적이다. 시인은 그 불행을 X라는 기표에 가둔다. “아버지의 이름이 X라면 내 이름도 X예요.” X라는 기표는 아이의 삶에 작용하는 법이자 권력의 기표이면서, 미로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불쌍한 존재다. “아빠, 퍼즐조각이 이어진 미로에서 / 출구를 찾지마세요 헝클어진 길이 / 아빠의 집이었고 신발이었잖아요.” 이제 아이는 제 ‘아빠’에게 중요한 정보의 전달자로 나선다. 미로가 곧 아빠의 집이고, 헝클어진 길이 곧 아빠의 신발이라는 정보를 전달한다. 정보 담지의 서열에서 딸이 아버지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올라섬으로써 관계의 역전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아버지가 많이 늙어버렸거나 아니면 이미 죽은 것일까?) 아버지는 딸에게 금지의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딸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김혜영에게 시는 사물과 세계를 기호학으로 해석하는 놀이다. 그 놀이는 당신이란 상상 속의 기호와 당신이란 기호를 그리워하는 또 하나의 기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기호 이야기〉) 그 사이에서 무수한 기호들이 춤춘다. 기호들은 대상을 은폐의 층위에서 비은폐의 층위로 불러내지만, 한편으로 실재를 가리는 차단막이고 미로다. 이것은 무의식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버지는 대문자 A였다가 다시 X로 변신한다. 그에 따라 주체도 변한다. 즉 아버지의 이름이 X라면 내 이름도 X가 되는 것. X는 미지수, 잠재적인 그 무엇, 해석을 기다리는 무의식의 은유다. 세계는 대문자 A에서 대문자 X까지 퍼즐조각이 흩어진 미로다.(〈별자리〉) 해석되지 않는 세계, 기호로 표기될 수 없는 사물들은 지옥이다. 김혜영의 자아들은 그 지옥을 벗어나려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아버지-당신을 부른다. 그러나 아버지-당신은 기호의 뒤편에 숨어 있고,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아버지의 이름(혹은 현존)은 함부로 말해지거나 보아서는 안 될 상징적인 금기이고 금지된 것으로 욕망의 좌절을 불러온다. 김혜영의 자아들은 대문자 X의 세계에서 그 비밀의 막을 열기 위해 “지퍼”를 연다. 그러면 주체와 대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기호의 미로들이 왈칵 쏟아진다.


김혜영(1966~ )은 경상남도 고성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는다. 그는 영문학 강의실에서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 이어지는 정신분석 이론을 배우고, 촘스키의 통사론과 기호학 책들을 읽으며 그 바탕 위에서 제 상상력의 성채를 세운다. 그의 시가 가진 낯선 매력은 이런 지적 배경에서 연유한다. 1997년 《현대시》에 시를 투고해 당선하면서 문단에 등단했다. 그의 새 시집인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은 아버지라는 법의 체계, 혹은 권력 아래서 가냘프게 숨을 쉬는 여성 화자의 무의식에 억압된 채 떠도는 환영과 환상을 그려냄으로써 그의 상상세계가 정신분석 담론의 영향 아래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명랑한 어조의 시들 이면에는 “당신이란 상상 속의 기호를 혼자 사랑”하고 “혼자 찬밥을 먹는 / 중세의 겨울 저녁을 견딜 수 없”(〈기호 이야기〉)어 하는 자의 우울증과 외로움이 스며 있다. 당신은 “산산이 깨어지는 기억. 신비스런 괴물”(〈은밀한 관계〉)이다. 어느 날 깨어보니 당신은 ‘나’의 피를 빨고, ‘나’도 당신의 피를 빨고 있다. 서로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나’와 당신은 은밀한 관계로 얽혀 있다. 2010년에 〈J의 연구실〉이라는 시로 애지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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