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이진숙이 만난 우리 시대 미술가] 화가 서용선

역사 혹은 현대의 삶에 깃든 ‘사람 이야기’를 그리다

서용선
195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회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제1회 중앙미술대전에서 특선으로 입상하여 화단에 등단했다. 20여 년 서울대학교 교수직을 역임했으며 , 2001년에는 독일 함부르크 국제미술아카데미 초대교수직을 맡았다. 2008년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위해 교수직을 그만두고 현재 경기도 양평에서 살며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30여 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09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화가 서용선은 아침에 자화상을 그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밤에 물감을 준비해놓았다가 일기를 쓰듯이 자화상을 그린다. 자화상 속의 작가는 무릎을 꿇고 수행하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매우 전투적인 그리기 자세이며 진지한 성찰과 집요함이 느껴진다.

“사람은 참 흥미로운 존재다. 그 속의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라고 말하는 서용선에게는 매일의 관찰이 되는 자기 자신뿐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 역사 속 사람들이 모두 중요한 그리기의 대상이다. 묵직한 필선과 강렬한 색감으로 그려진 역사화와 현대인의 삶을 다룬 그림은 서용선을 한국 화단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이 업적을 인정받아 그는 2009년 한국 미술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행사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었다.

그림 그리는 남자 1_acrylic on Korean paper, 96X62.5cm, 2010
지난 3월에도 학고재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개최될 무렵, 양평의 한적한 마을에 위치한 서용선의 작업실을 찾았다. 양평의 맑은 자연에 깃든 넓은 작업실에는 조금씩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작업실은 전시장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작업과 한참 진행 중인 작업들로 가득 차 있었다. 2008년 그는 남들은 부러워하는 서울대 교수직을 미련 없이 버렸다. 정년이 10여 년이나 남았지만 작품에 매진하고자 하는 일념에서였다. 그는 지금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작업실에는 한참 작업 중인 1905년의 가쓰라-테프트 밀약의 두 주역을 그리는 그림이 있다. 지난해 미국 여행길에 일본의 한반도 침입의 빌미를 제공한, 소위 가쓰라-테프트 밀약이 이루어졌다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집을 방문했다. 우리의 역사가 다른 강대국의 손에 좌지우지된 현장이었다. 당시의 상황을 역사가 아직 충분히 밝히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더 나아가 나는 역사에 대해 지속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다. 역사는 글로 기록된 것 이상이다. 정사(正史)의 정당성은 인정하지만, 사람의 일인 역사에서 주관적인 부분이 존재하며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게 마련이다. 왕조사, 권력의 역사가 전부는 아니다. 일상의 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역사는 어떻게 끌어안을 수 있을까가 나의 관심사다.” 바로 이 관심사가 서용선의 그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백성들의 생각_ acrylic on canvas, 194x517cm, 1991
그가 처음 몰두한 주제는 단종에 관한 역사화다. 1986년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이 많았던 그는 마음을 달래러 떠난 여행길에 우연히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에 가게 된다. 평온한 풍경에는 숙부인 세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하고 유배지에서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노산군 일기〉 연작이 시작되었다. 그는 정사에 입각한 이야기를 묘사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단종 폐위를 둘러싼 역사적 인물들 간의 심리적 갈등과 더불어 관찰자의 심리적 긴장을 다양한 방법으로 오버랩시킨다. 이 연작 중 하나인 〈백성들의 생각〉은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주관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정권찬탈자에 대한 백성들의 도덕적인 판단, 침묵하는 울분이 강렬한 색감으로 표현되어 있다. 세조를 비롯한 모든 정권찬탈자들에게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그림이다. 역사를 심리적으로 현재화하고 있는데, 이 점이 관변역사화를 제외하고 역사화의 전통이 전무한 한국 미술에서 서용선의 역사화가 갖는 중요한 의미다.

계유년01_ acrylic on canvas, 193.5x130cm, 1992

미술보다 문학에서 영향을 더 많이 받았죠

서용선은 작업을 시작한 초창기에 미술보다 문학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문학은 결국 모두 사람 이야기 아닌가. 초기에는 추상적인 미니멀한 작업도 해보았다. 그러나 사람 사이의 관계, 이야기의 중요성은 버릴 수 없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와 ‘이야기의 중요성’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다. 역사에 대한 관심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을 향한 것이다. “인간 사이의 관계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주변 사람들의 입장, 태도, 말하는 습관, 표정 등이 매우 흥미롭다. 어떤 때 택시를 타면 운전기사들이 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 녹음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람들이란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우리다.

14가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_ acrylic on canvas, 143.5x230.5cm, 2010
이런 인간에 대한 관심은 그의 남달랐던 청소년기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서울대 출신의 서울대 교수직을 역임한 작가라기에는 예상하지 못할 청년기를 보냈다. 중2 말에 집이 파산했고, 정릉으로 이사오면서 일곱 식구가 한방에서 생활했다. 산동네에서 살아남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난은 아이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악행을 일삼는 불량청소년으로 만들었다. 이 친구들과 함께 보낸 그의 청춘은 뜨겁고 아팠다. 공부는 뒷전이었고 외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연거푸 대학에 낙방하고 말았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뒤늦게 미술을 시작한 그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한다. 곱게 자란 모범생이 우글대는 서울대에 입학하고 나서 오히려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혹독하게 사람을 겪었지만, 그래서 그는 사람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하철 속의 사람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간판과 거리풍경들을 그린 그림에는 서용선이 관찰한 우리 시대의 표정이 담겨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 생생한 과정이 좋다.”

학고재갤러리 전시에서는 최근 뉴욕과 베를린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들을 발표했다. 거기서도 그의 관심사는 지하철역이나 거리에서 만난 다양한 종류의 인간 군상이었다.

부란덴부르그 문_ acrylic on linen, 400X500cm, 2006
사람에 대한 진지한 애정은 그의 다른 프로젝트인 〈철암 그리기〉에서도 발휘된다. 2000년부터 10년 넘게 진행된 이 행사는 폐탄광촌에서 문화지구로 탈바꿈한 독일의 루르 탄전을 모델로 삼아 폐탄광촌인 태백시 철암지역을 보존하고 예술지구로 만들려는 프로젝트다. 이를 위해 서용선은 동료 화가들과 더불어 지금도 두 달에 한 번 정도 태백에 가고 1년에 두어 번 전시 기획을 한다. 이와 관련해서 꿈에 접근했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결과는 매우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문화에 눈 떠가는 느린 과정이다”라고 대답한다. 더디지만 진척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어서 독특한 풍광을 가진 폐광촌 철암지역의 일부가 보존되게 되었다.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번 가을에는 새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 낯선 예술가들이 드나들면서 하던 일을 이제 폐탄광촌 지역 주민들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새로운 작품을 위한 캔버스들이 작업실에 도착하느라 어수선했다. 앞으로 더하고 싶은 작업을 물으니, 분단문제, 한국전쟁 등 역사적인 문제를 좀더 다루고 싶다고 한다. 올해 해외에는 독일 베를린과 일본의 오사카에서 개인전이 잡혀 있으며 국내에서는 지리산을 주제로 전시회를 준비 중이다. 지리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주 테마이긴 한데, 영호남을 아우르는 동시에 영남과 호남을 나누는 지리산에 담겨 있는 이야기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역사를 만들어낸 자연인 지리산이 그의 화폭에서 어떻게 탄생할지 궁금하다. 그는 말한다. “앞으로 할 것이 많다. 그릴 것은 너무 많다. 다만 시간이 모자랄 뿐이다.”

사진 : 김선아
  • 2011년 05월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