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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앨범 <아카데미즘> 발매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 해금 연주자 조혜령 씨

“우리 음악, 제대로 알리는 게 먼저죠”

최근 독주앨범 <아카데미즘>을 내고, 해금·피리·대금 연주자로 구성된 국악그룹 ‘리딩톤’ 공연과 음반 작업, 서울을 모티프로 한 두 번째 독주 앨범을 준비 중인 해금 연주자 조혜령(29) 씨. 또 6년차에 접어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 생활과 서울대 박사 과정, 한국방송예술진흥원의 국악미디어학부 강의까지 소화하며 지내는 그의 이름은 아직 낯설다. 하지만 젊은 국악인으로 그가 가진 패기는 쉴 새 없이 그를 세상으로 밀어내는 중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그를 표현하기에 좋다 싶었다. 국악 지식이 깊지 않다는 기자의 인사말에 그는 묵직한 해금 케이스를 번쩍 들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명주실이 두 가닥으로 연결되어 있어요. 활과 악기가 분리된 현악기와 달리 해금은 활이 명주실 안에 연결되어 있으니 한몸이죠. 원래 중국 유목민이 쓰던 악기인 얼후가 해금의 전신이고요, 그것이 우리 식으로 변형되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어요.”

해금의 음색은 거칠다고 그는 설명한다. 요즘 쉽게 들을 수 있는 가녀리고 여성적인 해금 소리는 제 모습을 인위적으로 드러낸 것이며, 접시가 깨지는 소리, 바닥을 긁는 소리야말로 해금의 매력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저는 전통에서 출발한 창작을 원하고, 또 대중에게 우리 고유의 멋이 충분히 녹아내린 음악을 보여주고 싶어요. 퓨전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모호한 음악 대신, 정확하고 제대로 된 우리 음악을 알려주는 일에 젊은 국악인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있어요.”

그는 퓨전 국악이 대중에게 국악을 이전보다 친숙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단순히 알리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알리려면 정확히, 또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열정적인 국악인으로 만든 것일까. 그는 “모든 것은 우연”이라고 하더니 이야기를 계속한다.

“친한 친구가 국악중학교에 입학했어요. 호기심에 부모님께 국악기를 배워보겠다고 졸랐고요. 거문고나 가야금은 체격 조건이 안 맞았고, 아버지께서 비교적 작은 악기인 해금을 추천해주셨어요. 전공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는 해금 연주자로 이른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중학교 2학년 때 레슨을 받기 시작해, 국립국악고등학교, 서울대 음대와 대학원에서 해금을 전공했다. 현재는 박사과정 중이다. 또 남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공부에 박차를 가한 그는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적도 거둬들였다. 정읍 전국학생국악경연대회 기악부 최우수상(2000), 전주대사습놀이 기악부 장려상(2001), 제17회 동아국악콩쿠르 해금부문 금상(2001), 제23회 전국국악경연대회 관악부 동상(2003) 등이다. 또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는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 바로 취직하는 행운도 누렸다.

“사람들의 취향은 서양음악에 익숙해졌고, 그만큼 국악이 자리 잡을 곳은 줄었어요. 뜻있는 국악인들에 의해 계승된 우리 음악을 다시 일으킬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에요.”

그는 국악인으로 살면서 누군가가 “국악은 재미없다”고 할 때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심지어 “국악이 싫다”는 사람도 있는데, 역사를 함께한 우리 문화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만큼은 꼭 막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국악의 세계화, 충분한 경쟁력 있다

그는 지난해 <해금의 향기 2> <아카데미즘> 등 총 3장의 음반을 냈다. 첫 음반인 <해금의 향기 2>는 그가 연주자로 섭외된 것이어서 연주비용을 받고 낸 음반이다. 하지만 국립국악원 단원인 피리 연주자 이승헌 씨, 대금 연주자 류근화 씨와 만든 국악그룹 ‘리딩톤’의 데뷔앨범인 와 첫 독주앨범인 <아카데미즘>은 모두 자비를 들여 만들었다.

“왜 쓸데없는 일에 힘들게 번 돈을 쓰냐고 하는 친구도 있어요. 앨범 작업을 하려면 작곡가에게 곡도 청탁해야 하고, 상당한 비용이 드니까요. 그렇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서 국악 음반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없고요. 그래도 음악가는 음악으로 승부해야죠.”

그는 1년에 100회 정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으로 무대에 선다. 또 독주 무대나 방송 출연 등을 포함해 한 달에 10번 이상 관객을 만난다. 봉산탈춤 무형문화재 전수생으로 악사 역할도 배우고 있다. 5년 후 승급 과정이 통과되면 이수생, 그 이후는 문화재가 되는 과정이다. 그는 이 정도 활동에는 성이 차지 않는 모양이다. 올해 두 번째 독주앨범과 ‘리딩톤’의 두 번째 공연과 앨범도 준비 중이다.

“이병훈 PD가 만든 드라마 <동이>는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장학원을 배경으로 했어요. 그때 제가 한효주 씨의 해금 지도를 맡았어요. 레슨비도 물론 받았죠. 드라마에서 단 몇 초라도 해금을 연주하는 배우의 모습이 아름답게 그려진다면, 그것 또한 국악 발전에 이바지했다고 생각했어요. 같은 맥락에서 제 돈이 계속 들어가더라도 음반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죠.”

특히 음반 발매 후 그를 찾는 곳이 많아졌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장이다. 당시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 정상들 앞에서 몇몇 국악기와 피아노가 어우러진 공연을 선보였다. 처음 국악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루한 시간이 되면 어쩌나 우려했지만, 모두 예상외로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오페라와 오케스트라가 국경을 넘나들며 사랑받듯, 국악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며 웃는다.

“국악이 지금보다 더 많이 사랑받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펄펄 솟아나곤 해요. 제가 원하는 방향은 제대로 된 국악을 알리는 일인데, 그렇다고 음악을 편식할 생각은 없어요.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연주하더라도 진짜 해금의 모습을 들려주면 되니까요.”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왼쪽 손에 눈길이 갔다. 손가락마다 안쪽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해금을 연주하는 사람은 누구나 손바닥이 이렇다”며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손바닥을 펼쳐 보여준다. 굳은살은 손톱깎이나 손톱 정리개로 자주 제거해야 하는데, 일상생활에서 불편할 때가 종종 있다며 웃는다.

“주무르고 당기고 꺾으며 해금의 거친 소리를 표현하죠. 광대가 줄을 탈 때 이런 기분이 아닐까 싶어요. 정해진 음자리 없이 스스로 음의 위치를 찾는 것이 해금 연주의 원리인데, 저도 스스로 자리를 찾을 때까지 거칠게 움직여봐야죠. 우리 세대를 넘어 그 다음 세대까지 국악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면야, 못할 것도 없을 테니까요.”

그가 연주자로서 가진 또 다른 목표는 자신만의 빛을 갖고, 자신이 만드는 예술이 신뢰받는 일이라고 한다. 소박하지만 잘 구워진 도자기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다 말한다. 비록 스키 한 번 못 타보고 청춘을 신나게 보내지 못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워낙 많기에 괜찮다는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사진 : 김선아
사진제공 : 조혜령
  • 2011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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