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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에게 제3의 지위를 허하라!

글 : 김민희 기자  / 사진 : 서경리 기자

“세상이는 번식장에서 가장 먼저 꺼낸 아이예요. 애초에는 나이가 많은 줄 알았어요. 앞니도 빠지고, 아래 송곳니도 다 부러져 있고, 털도 듬성듬성하고 지저분했거든요. 중성화수술을 하면서 보니 만 한 살도 안 된 어린 모견이었어요. 태어나면서 부터 철장에 갇혀 살다 보니, 철장을 하도 물어뜯어서 이빨이 다 갈린 거죠.”

세상에, 저렇게 사뿐사뿐 활달한 세상이가 불법 번식장의 모견 출신이었다니. 스튜디오를 들어오자마자 구석구석을 활보하고, 이 품에 안겼다 저 품에 안겼다 사랑받을 줄 알면서, 피곤하다 싶으면 누군가의 겨드랑이에 머리를 콕 박는 걸로 의사표현을 하는 세상이.

세상이를 품에 폭 안고 등장한 설채현 수의사는 의기양양했다. 등장과 동시에 세상이에게 꽂히는 하트 뿅뿅 시선을 보고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전날에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이하 세나개)〉 촬영장에서 사랑을 듬뿍 받았다고 했다.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그 관심도를 반영해 지상파와 공중파 할 것 없이 반려동물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유튜브 채널엔 구독자 수십 만을 거느린 스타 반려견들이 하나둘 탄생하고 있다. 1월 중순 기준으로 몇 개만 꼽아보자면 ‘모카밀크’(122만), ‘속삭이는 몽자’(75.7만), ‘시바견 곰이탱이여우’(63만), ‘천재견 사월이’(37.7만) 등이 있다.

그만큼 동물권에 대한 인식도 급변하고 있다. 우선 애완동물 대신 ‘반려동물’로 부르는 것부터 그렇다. 개는 ‘장난감’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의미를 담은 표현이다. 이 인식 변화의 한가운데 설채현 수의사가 있다. 건국대 수의학과를 나와 미국 미네소타대학에서 동물행동학으로 연수를 받은 후 미국 KPA(Karen Pryor Academy)에서 트레이너 자격증까지 취득한 그는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반려동물에 대해 잘못 알려진 오류들을 하나둘 바로잡아주고 있다. 서열이론의 오류, 개가 꼬리를 흔드는 이유, 택배 기사를 싫어하는 이유 등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에 기반한 객관적 사실을 알려준다.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인간의 관점에서 자의적으로 섣불리 동물의 행동을 판단해왔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그에게 가장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개라는 존재가 신비스러웠다. 살면서 반려견으로 인해 삶이 통째로 달라졌다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누군가는 삶의 의미를 찾고, 누군가는 자존감을 회복했으며, 또 누군가는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알게 됐다고 했다. 도대체 개라는 동물은 어떤 존재이기에 인간의 삶에 이토록 깊숙이 들어와 한 존재의 근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일까.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 먼저 진행하기로 했다. 세상이가 추위를 많이 타서 오들오들 떨 때마다 온열기구에 데운 담요로 감싸서 추위를 녹여주곤 했다. 설채현 원장은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는 원래 갑상선 기능이 약해서 추위를 많이 탄다”고 했다. 또 평소에는 귀가 쫑긋해 있다가 긴장하면 오히려 옆이나 뒤로 처진다고 했다. 편안한 상태의 귀 쫑긋 세상이는 영화 〈스타워즈〉의 요다나 〈그렘린〉의 기즈모를 꼭 닮았다.



세상이는 언제부터 저렇게 활발해졌습니까.

“처음에는 불안증이 심했어요. 사람이 다가가면 무조건 도망가고 손을 대면 피했죠. 입양 후 3개월 정도 지나 마음을 열기 시작했고, 6개월쯤 되니 반려견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년 넘게 항우울제를 복용하다가 3개월 전부터 끊었어요.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죠. 무엇보다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원장님 같은 전문가도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하군요.

“그럼요. 〈세나개〉에서 몇 분 만의 특급 솔루션으로 반려견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편집의 힘도 있어요. 방송 후에도 보호자가 의지와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좋아질 수 있거든요. 헬스트레이닝과 비슷해요. 헬스트레이너한테 딱 한 번 PT를 받는다고 갑자기 내가 원하는 몸이 되지는 않잖아요.”


인연을 맺은 반려견들이 많지요.
소개 좀 해주세요.


“첫 반려견은 슈나우저 슈나였어요. 하도 부모님에게 졸랐더니 성적이 잘 나오면 키우게 해주겠다고 하셔서 만나게 된 아이예요. 고등학교 때인 2002년에 입양했다가 슈나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인 2017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어요. 두 번째는 지금의 아내가 여자친구이던 시절에 데려온 비숑 버블이고요.”


첫 반려견 슈나를 떠나보낼 때 어땠나요.

“태어나서 가장 많이 울었어요. 슈나가 떠날 줄도 알고 있었고, 바로 전날 수액까지 직접 맞히고 와서 마음의 준비가 된 줄 알았거든요.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았어요. 슈나가 세상을 떴다는 연락을 받고 안양으로 내려가는 길에 너무 울어서 운전하다가 위험한 순간도 몇 번 있을 정도로. 미안한 순간이 너무 많이 떠올랐어요.”


뭐가 미안하던가요.

“그땐 모르는 게 너무 많았거든요. ‘그러려면 강아지 키우지 마세요’ 하는 그 보호자가 바로 저였어요. 반려동물이 내 인생의 3순위 안에 들 수 있으면 키우라고 하는데, 저의 경우 슈나는 3순위 밖이었어요. 학교 공부, 취미생활, 미래 걱정 등 할 게 너무 많아서 순위에서 저만치 밀려 있었거든요. 슈나에겐 미안하지만 ‘너에게 못 해준 거 다른 아이한테 해줄게’ 다짐했어요.”


슈나의 유산이군요.

“그렇죠. 너 같은 아이가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내용으로 편지도 썼어요. 세상이를 들인 것도 어떻게 보면 슈나의 힘이죠. 곧 세상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이 나옵니다. 《강아지 마음사전》이라고, 세상이의 목소리로 마음을 읽어주는 책이에요.”


원장님 책 《그 개는 정말 좋아서 꼬리를 흔들었을까》에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려 하지 말라고 했지요. 다들 애니멀 커뮤니케이터가 되려 하는데, 왜 그렇게 말씀하신 건가요.

“대부분의 애니멀 커뮤니케이터는 사기꾼이에요. 강아지 번역기도 정확하지 않고요. 사람의 언어처럼 개의 언어에도 맥락이 있는데, 번역기는 그 맥락을 읽을 수 없어서 오류가 많거든요. 지금 우리는 자신이 키우는 반려동물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어요. 반려동물에 대한 공부를 안 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잘못된 정보가 난무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반려인들이 저한테 ‘이럴 때 왜 이럴까요?’라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답변은 ‘저도 잘 몰라요’예요. 과학적으로 검증된 행동의 원인은 많지 않거든요. 혀를 날름거리는 건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몇 가지 합의된 사실을 제외하고는 잘 몰라요. 그런데 한 사람의 경험만 가지고 세상 모든 개에게 다 맞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충격인데요?
이 분야 최고 전문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저도 잘 몰라요”라니.


“견종에 따라서 다르고, 같은 종이라도 유전이나 환경에 따라 달라요. 또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고요. 그래서 저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습니다’라고 해요.”


저희 어머니의 경우 반려견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는 게 행복이라고 여깁니다.
앉아, 기다려 같은 트레이닝을 받는 걸 보면 안쓰럽다고 하시고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듯, 반려견 역시 타고난 기질에 따라 행복한 상황이 다 달라요.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 한 가지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게 해준다고 행복한 건 아니라는 거예요. 성취감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잖아요. 저 역시 집안이 부유한 편은 아니라서 힘들게 생활했지만, ‘100억 받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놀래, 아니면 지금의 삶을 살래’ 하면 지금을 택할 거예요.”


그렇다면 개도 성취감을 통해 행복을 느낀다는 건가요?

“그럼요. 과학적으로 보면 개가 성취를 경험하면 즐거움을 주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나와요. 어머님은 아마 훈련을 통해 먹이를 주면 ‘왜 애를 그렇게 힘들게 하냐, 그냥 주면 되지’ 할 거예요. 그런데 콘트라프리로딩 이론(Contrafreeloading theory)에 따르면, 먹이를 그냥 주는 것과 어렵게 먹는 것 중에서 개들은 후자를 선택해요. ‘개들에게 과도한 사랑을 주지 마라’는 말은 잘못됐어요. 사랑을 많이 줄수록 좋죠. 다만 어떻게 줘야 개들이 행복을 느끼는지를 고민해봐야 해요.”


개라는 존재가 참 신비롭습니다. 늘, 한결같이, 무조건적으로 보호자를 믿고 따르는 반려견을 통해 인간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안전지대’를 느끼게 된 사람도 많고요.

“그렇죠. 진짜 신비한 존재예요. 많은 과학자들이 개와 인간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요, 인간이 멸종하면 그다음으로 멸종할 동물이 개예요.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개를 조건 없이 사랑하죠.”


왜 그럴까요.

“꽤 명쾌한 연구 결과가 일본에서 나왔어요. 이종(異種)끼리 눈을 마주쳤을 때 사랑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서로에게서 다 나오는 동물은 개와 사람과의 관계밖에 없대요. 사람이 개를 보면 사랑스러워서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개들은 후각이 예민해서 그 냄새를 맡아요. 그러면 개들에게서도 옥시토신이 분비되죠.”


그런 관계의 존재가 지구상에 인간과 개밖에 없다고요?

“당분간은 없을 거라고 봐요. 1만 년 정도 후에는 고양이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학설이 있고요.”


개와 고양이의 습성은 완전히 다릅니다만.

“아주 먼 옛날에는 개도 사람의 적이었어요. 진화하는 과정에서 인간 친화적인 개가 살아남았고, 결국 가축화가 된 것이죠. 고양이의 가축화 역사는 개보다 훨씬 짧은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개와 같은 속성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봐요. 실제로 러시아 과학자 벨랴예프의 여우 실험을 보면 야생동물이 어떻게 가축화가 되는지를 알 수 있어요. 수십 세대에 걸쳐서 실험해오고 있는데요, 사람 손 모형을 보여줬을 때 공격적이지 않은 여우들만 교배시키자 뒤로 갈수록 개 같은 속성의 여우가 태어났어요.”


동물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게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 중에는 동물권에 반하는 인식을 조장하는 말들이 있는 걸로 알아요.


“바꿔가야 할 언어들이 꽤 있어요. 애완견 대신 ‘반려견’으로, 주인 대신 ‘보호자’로 써야 합니다. 또 저는 훈련이나 행동교정 대신 ‘행동수정’이라고 해요. 훈련이나 교정에는 위력의 뉘앙스가 있어요. 훈련은 운동선수나 군인처럼 실수를 하면 안 되는 곳에서 받는 거예요. 개 중에서도 인명구조견, 마약탐지견, 시각장애도우미견도 훈련이 필요해요. 하지만 반려견이 과연 훈련을 받아야 할까를 생각해보면 ‘행동수정’이 맞죠.”


최근 10여 년간 동물권에 대한 인식 변화가 피부로 와 닿나요?

“제가 수의학과 대학생이 된 지 17년이 지났는데, 그사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졌어요. 초창기만 해도 다 애완견이라고 불렀어요. ‘무슨 반려견이야’ 하면서. 청담동에 MRI와 CT 전문 동물병원이 처음 들어섰을 때는 미쳤다는 반응이었고요. 하지만 요즘 보호자들은 고도화된 진료를 원해요. 실제로 레진, 금 씌우기, 임플란트를 전문적으로 하는 동물치과가 있고, 안과, 피부과 등으로 점점 세분화, 고도화되고 있어요. 미국과 일본, 독일 등에서 유학 다녀온 분들이 선도하고 있죠.”


미국 미네소타에서 동물행동학을 배웠지요.
사연이 궁금합니다.


“얘기를 하자면 좀 긴데,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아요. 고1 때부터 수의사가 꿈이었어요. 원래 동물을 좋아했고,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안양동물병원이 늘 만원이라 수의사가 되면 굶지는 않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황우석 세대라 수의대 합격권 점수가 너무 높아져서 지원 대학에 다 떨어졌어요. 대신 카이스트에 합격했죠. 수학을 좋아했거든요. 카이스트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온 날 건대 수의학과에 추가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카이스트를 포기하고 건대를 택한 건가요?

“수의사가 너무 되고 싶었거든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제 꿈은 확고했어요. 카이스트에 가게 되더라도 공대 쪽은 안 할 것 같았기에 큰 매력이 없었고요. 학비 때문에 고생은 많이 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한 편이라 학비가 안 드는 카이스트 대신 건대 수의학을 택하자 타격이 컸죠. 용돈과 학비를 늘 벌어야 했기 때문에 과외에 묻혀 살았어요. 스물아홉 살 때까지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해외 유학파라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금수저 같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니었군요.

“네, 아니에요(웃음). 제가 사적인 얘기를 잘 하는 편이 아니라서…. 수의사가 되니 대출이 가능하더라고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동물행동학을 배우러 미국에 갔죠.”


왜 꼭 유학을 가야 했나요.

“국내에는 동물행동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어요. 동물행동학을 처음 접한 건 둘째 버블이를 키우면서예요. 분리불안이 되게 심해서 고전적인 방법으로 다뤄봤는데 다 안 통했어요. 울어도 혼내고 짖어도 혼냈더니 저를 가장 좋아하던 애가 저를 가장 싫어하게 됐어요. 이건 아니다, 문제가 있다 싶어서 해외 원서를 찾아보던 중 동물행동학의 개념을 알게 됐죠.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힘들어하는 강아지에게 꽤 오래전부터 정신과 약물을 처방하고 있었어요.”


미네소타대학과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습니까.

“정식으로 동물행동학을 배우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연수라도 하고 싶었어요. 미국에 있는 행동학 전공 교수님들을 구글 검색으로 찾아서 다 메일을 보냈어요. 학과 홈페이지에 이메일 주소가 있는 곳이 꽤 되더라고요. 열 곳 가까이 보냈고, 그중 두 곳에서 답신을 받았어요. 미네소타는 그중 한 곳이었고요.”


총 배운 기간은요.

“동물행동학 연수는 3개월 정도, 미국 KPA 트레이너 자격증 취득까지는 6개월 정도 걸렸어요. 행동학 연수 후 귀국하려는데 담당 교수님이 ‘한국에 칭찬을 통해 교육하는 트레이너들이 있어? 없다면 네가 배워야 돼’ 하셔서 추가로 하게 됐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게 된 거군요.

“이때도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트레이너가 되겠다고 했더니 왜 그 어려운 공부를 해놓고 훈련사가 되려고 하냐며 어머니가 펑펑 우셨어요. 당시만 해도 트레이너에 대한 인식이 미미했거든요.”


요즘엔 부모님이 뭐라고 하시나요.

“저를 소개할 때 표현 중 하나가 ‘결정적인 순간에 부모님 말씀 안 들어서 성공한 사람’이에요(웃음). 지금은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시죠. ‘네가 이렇게 정신과 선생님 같은 일을 할지 몰랐구나’ 하시면서요.”


〈세나개〉 출연 계기는요.

“그렇게 호기롭게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행동진료를 하겠다고 병원을 열었죠. 당연히 잘 안됐어요. 내과 외과 같은 일반진료도 열심히 하면서 3년 정도 지났는데, 〈TV동물농장〉에 선배님들의 추천으로 출연하게 됐어요. 이후 반려견을 다루는 다양한 프로에 단발적으로 출연하다가 〈세나개〉에 고정 출연 제안을 받았죠.”


부담이 컸겠습니다.
전임자 강형욱 씨가 개통령으로서 인지도가 워낙 높았잖아요.


“처음엔 그랬죠. 하지만 저는 의학적인 면에서도 얘기해줄 수 있고, 교육 측면에서도 스타일이 다른 부분이 있었어요. 인기 여부를 따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진정성 있게 해보자 싶었습니다.”


동물권, 반려동물에 대한 사명감이 남달라 보여요.

“박준영 재심전문변호사님이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라요. 자신은 원래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 주위에서 그렇게 봐주니까 그런 사람으로 바뀐다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유기견에 대해 관심이 많긴 했지만, 행동력은 약했거든요. 〈세나개〉를 하면서 많은 것들이 보이고 응원을 많이 보내주시니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 반려문화 시스템에 모멘텀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어떤 모멘텀이요?

“유기견, 개 물림, 강아지 번식장 등 반려견 이슈를 들여다보면서 뭐를 바꾸면 달라질까, 많이 생각해봤어요. 한 지점으로 모이더라고요. 제3의 지위. 우리나라 법에서는 사람 이외의 모든 것은 다 물건으로 봐요. 그런데 독일 등에서는 반려견을 ‘사람도 물건도 아닌’ 제3의 지위를 인정해요.”


반려동물을 제3의 지위로 인정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지금은 반려동물이 물건이기 때문에 사고파는 게 너무 쉬워요. 동물보호법이 있어도 강아지 번식장을 막을 순 없고요. 세상이가 살던 곳은 지옥이나 다름없었지만 단속 나가서 할 수 있는 건 과태료 부과 또는 벌금밖에 없어요. 세상이를 못 데리고 나와요. 강아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주인의 소유물이거든요. 세상이는 구청 직원들과 주위 사람들의 설득으로 주인이 소유권을 포기해서 데려올 수 있었어요. 그렇지 않으면 자원봉사자들이 성금을 모아서 돈을 주고 빼내 와야 해요. 개들끼리 싸우다가 죽어도 개 값만 물어주면 돼요. 나에게는 가족인데, 남들에게는 물건인 거죠.”


펫샵은요?

“거래가 자유롭지 않게 될 거예요. 동물복지가 발달한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자격증을 소유한 전문 브리더가 강아지 분양을 담당해요. 소규모로 운영하면서 얘네들의 복지를 생각하며 출산을 돕죠. 미국과 캐나다는 주마다 법이 다른데, 강아지 거래가 아예 금지된 곳이 많아요. 독일에서는 반려인 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고요.”


반려동물을 제3의 지위로 인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는지요.

“뜻있는 수의사들과 동물보호단체 그리고 일부 정치권에서 꾸준히 이야기는 하지만 큰 힘을 받는 단계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계속 이렇게 얘기하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람들이 이 이슈에 익숙해져서 몇 년 후엔 ‘그래, 왜 반려동물이 물건이야? 우리나라 법에 문제가 있어’ 하고 생각할 테니까요.”


누군가에겐 밥그릇과 관련된 문제라 저항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그래서 서서히 바꿔가야 한다고 보는 거예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당장 바뀌길 바라지만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오히려 사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하나하나 사회적 합의를 해가면서 바꿔야죠. 제가 죽을 때쯤에는 바뀌지 않을까요(웃음)?”


마지막 질문이에요. 원장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릴 때 품은 꿈이 점점 더 커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떤 꿈을 꾸시나요.

“큰 꿈과 작은 꿈이 있어요. 작은 꿈은 반려동물과 반려인이 함께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것. 3월에 청담에 유사한 공간이 들어섭니다. 놀로(Knollo)라고, 130~140여 평에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들어서는 반려동물경험콤플렉스인데요, 반려견과 함께 밥을 먹고, 병원도 가고, 수영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반려동물문화에 관심 많은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가 하는 사업인데 뜻이 좋아 동참하게 됐습니다. 큰 꿈은 ‘블랙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번식장, 펫샵, 소비자 3자의 고리가 끊기는 걸 보고 죽는 것이에요. 언젠가는 가능하겠죠?”
  • 2021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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