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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일이 특별하긴 하지만 제가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영화 〈소공녀〉의 이솜이 만든 ‘우아한 세계’

동화 〈소공녀〉는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의 아동 소설이다. 동화 속 소녀는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구박받는 신세가 되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올바른 심성으로 이를 이겨낸다.
영화 〈소공녀〉에는 하루아침에 아버지를 잃은 소녀 대신 하루아침에 집이 사라진 한 여자가 등장한다.
동화와 영화를 함께 관통하는 건 풍부한 상상력과 올바른 심성이다.
영화 속에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자기만 한 가방을 메고, 세상을 여행했던 배우 이솜(미소 역)은 가녀린 손목과 작은 얼굴을 갖고 있었다.
근육이 뭉쳤는지 자주 어깨를 매만졌고, 입이 마르면 침을 바르는 대신 립밤을 두드려 발랐다.

사진제공 : CGV 아트하우스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전고운 감독은 이솜을 ‘최고의 배우이자 친구’였다고 말한다. 〈소공녀〉는 〈족구왕〉, 〈범죄의 여왕〉 등을 만든 ‘광화문 시네마’의 작품이다. 〈소공녀〉에 먼저 러브콜을 보낸 건 이솜이었다. 미소에게 담배, 위스키, 남자친구가 있다면, 이솜에게는 영화, 커피 그리고 산책이 있다. 혼자 커피 한 잔 들고 영화 보기를 즐기는 이솜에게 ‘광화문 시네마’의 작품은 ‘최애(최고로 좋아하는) 필름’이었다. 전고운 감독은 원래 미소 역에 30대 중후반의 배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역할을 이솜이 맡고 보니, 친구들은 모두 현실에 적응해 나이를 먹어 가는데 미소 홀로 진공 상태에서 사는 듯 시간이 멈춘 모습이다. 그건 미소와 퍽 잘 어울렸다.

미소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집’은 2018년의 많은 것을 상징한다. 미소가 찾아가는 친구들은 우리가 ‘집’으로 대변되는 안정적인 일상과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포기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어떤 친구는 집을 얻은 대신 링거로 연명하는 직장인의 삶을, 어떤 친구는 집에 사는 대신 적성에 맞지 않는 살림을, 또 어떤 친구는 집을 짊어지고 대출 빚을 갚아가는 삶을 산다. 그 사이를 부유하는 미소의 짐은 도리어 가벼워 보인다. 미소의 방문으로 위로를 받는 건 친구들이다.

“미소가 달걀 한 판을 사 가잖아요. 그건 공짜로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 마음이기도 하고, 제대로 된 먹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소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요.”

미소의 직업은 가사도우미다. 살림에 있어 그는 프로다. 요리할 때나 청소할 때, 허투루 하지 않는다. 그렇게 얻은 하루 4만 5000원의 일당으로 그는 일용할 양식을 산다. 담뱃값이 오르지만 않았어도, 그는 집을 떠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월세를 내느니, 담배를 피우겠다는 게 그의 선택이다. 한편 미소가 들고 있는 ‘달걀 한 판’은 서른이라는 나이를 은유하기도 한다. 더는 이상만 좇을 수 없는 나이,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나이 말이다.

“(스물아홉인) 저는 아직 서른은 되지 않았지만, 그런 고민은 했었어요.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요. 꿈만 좇을 수는 없으니 현실과 타협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그때 마음먹었어요. 좀 느리더라도, 타협하기보다는 여유롭게 가자고요. 그렇게 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다시 편해졌어요.”


중학교 때 잡지를 보면서 처음 모델의 꿈을 꾼 이솜은, M-net에서 주최한 모델 오디션에 우승하면서 꿈을 이룬다. ‘이솜’이라는 이름도, 모델 활동을 하면서 갖게 됐다. 얼굴에 젖살이 볼록해 솜뭉치 같다고, 함께 작업하던 작가가 붙여준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이소연이다.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계속 쓰게 됐어요. 연기를 하고 싶다는 건 일을 하면서 알았죠. 이후로는 오디션을 봤어요. 운이 좋아서 〈맛있는 인생〉이라는 독립영화에 출연하게 됐고 이 작품을 본 감독님들이 연락을 주셔서 다음 작품도 하게 됐고요.”

이솜의 이름을 알린 건 영화 〈마담 뺑덕〉, 〈좋아해줘〉, 〈대립군〉 등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마담 뺑덕〉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정우성, 〈대립군〉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정재는 현재 그가 속한 아티스트컴퍼니의 대표이기도 하다.

“작품을 할 당시에는 같은 회사가 아니었어요. 〈대립군〉 마치고 계약 기간이 종료됐는데, 그 이후에 이정재 선배님이 제안을 해주셨어요. 그 후로 함께하게 됐죠.”


이 와중에 우아하게


〈소공녀〉를 촬영하는 동안 이솜은 매니저도, 스타일리스트도 없이 혼자 다녔다. 회사에서는 걱정했지만 이솜의 의지를 존중해줬다. 어느 날에는 그의 촬영장에 이정재가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느닷없는 후광에 제작진도 당황했다고 한다. 〈소공녀〉의 시사회가 있던 날에는 정우성이 참석했다. 주변 관객의 반응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오를 때는 가장 크게 손뼉을 쳐주기도 했다.

“저희 일이 특별하긴 하지만 제가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평소에도 혼자 잘 다녀요. 혼자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요. 사람들도 각자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저한테 신경 쓰는 분은 별로 없어요.(웃음)”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이솜에게 중요한 것 역시 생각과 취향이다. 미소로 한 시절을 살다 보니 그게 맞는다는 걸 전보다 더 실감하게 됐다. 그 대신 자신의 마음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광화문 시네마에 먼저 문을 두드린 것도 그런 과정의 하나였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냥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광화문 시네마 작품을 너무 좋아하니까 이들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범죄의 여왕〉에 짧게 출연한 게 계기가 되어서 〈소공녀〉까지 이어질 수 있었어요.”

〈소공녀〉는 그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모두 모은 작품’이다. 촬영할 때나, 홍보할 때나 그때 그 행복이 고스란하다. 부디 관객들도 그가 미소를 통해 얻은 행복과 충일감을 맛보길 바랄 뿐이다.

“어른이 있고, 어른 그 이상의 어른이 있다고 생각해요. 미소는 그런 인물이고요.”


〈소공녀〉의 미소는 ‘집은 없지만 취향과 생각은 있는’ 인물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내 몸 하나 누일 공간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척박한 일인 줄 알면서도 미소의 선택이 마냥 철부지 같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미소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 얼마나 정성껏 살고 있는지 보여서다. 미소가 지은 밥과 만든 반찬을 먹는 이들은 삶의 허기를 채우고도 남는다.

동화 〈소공녀〉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이 하나만은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공주라면 누더기나 넝마를 입었어도 속마음은 공주처럼 될 수 있어. 금빛 두른 옷을 입었다면 공주가 되는 게 쉬웠겠지만 아무도 몰라줄 때도 쭉 공주가 되는 게 훨씬 대단한 거야.”

가진 게 없어도 초라해지지 않는 미소의 우아함은, 우리의 비겁함을 부끄럽게 만든다. ‘집=안정적인 삶’을 위해 포기했던 수많은 ‘나’의 생각과 취향이 찾아와 인사를 건넨다.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은 “어느새 잃어버린 나를 찾고 싶어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관을 나오면 궁금해진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 2018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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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이덕미   ( 2018-05-07 ) 찬성 : 4 반대 : 1
영화 소공녀를 참 잘 설명해 주신 것 같아요~앞으로도 멋진 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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