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의 성공 비결| 돈보다 사람 !

32세 최연소 은행지점장 박경진

인터뷰 시간을 정하기 위해 전화를 걸자 박경진 SC제일은행 강남중앙지점장은 “가능하면 아침 일찍 만나자”고 했다. 근무시간 중에는 영업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시간 전에 인터뷰를 하자는 것이다.

덕분에 아직 셔터도 올리지 않은 지점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은행에 들어서자 대형 빌딩의 1층 로비 데스크와 비슷한 안내 데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산소발생기가 설치된 소파에 앉아서 산뜻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박경진 지점장이 직원들과 오전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에서 나왔다. 선명한 보라색 스트라이프의 와이셔츠와 보라색 넥타이가 그의 ‘젊은’ 나이를 대변하는 내용증명 같아 보였다.

“이미 언론을 통해 제가 32세 최연소 지점장이라는 것이 알려진 상황에서 굳이 딱딱한 양복 속에 저를 감춘 채 나이 많은 척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규정상 캐주얼한 옷을 입고 출근할 수는 없지만, 색깔 있는 와이셔츠는 용납이 되니까 그 정도 선에서 ‘젊은 느낌’을 주기 위해 패션에 신경을 씁니다.”

서강대 경제학과 93학번인 그는 벌써 세 번째 직장을 옮겼다. 첫 직장은 LG카드 신기술사업 팀이었다. 그는 첫 직장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상품을 기획해 주목을 받았다. 당시에 종신보험이 유행이었는데, 기존의 상품은 매달 납부액이 10만 원 이상이면서도 사망 시 지급되는 보험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점을 간파한 박경진 사원은 매달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 소액만 내도 사망 시 무조건 5억 원이 지급되는 상품을 기획했다. 이것이 가장(家長)들에게 큰 인기를 끌어 한 달에 4만 건 이상 팔려 나가는 대박 상품이 됐다.

때마침 보험사업을 확대하려던 씨티은행에서 박경진 사원에게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더 정확히 말하면 LG카드에서 함께 근무하던 상사가 씨티은행으로 옮긴 후 그에게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한 것이다.

“신입사원이던 제가 LG카드에서 일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상사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분의 제안은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에서 전직(轉職)을 결심했죠.”

씨티은행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실적이 별 볼일 없던 아웃바운드 콜센터장을 맡게 된 그는 그곳 직원들이 회사에 충성도가 낮은 용역직원들이라 지각과 조퇴가 잦고, 근무태도가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원들의 책상 칸막이가 지나치게 높아 늘 어두침침하고 자리에서 업무 대신 딴짓을 해도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콜센터의 영업실적은 직원들의 하루 총 통화 시도 건수와 고객과의 통화 성공 건수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요. 100통 전화를 하면 다섯 건이 성사되는 식이죠. 그러니까 성공의 관건은 직원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오래 자리에서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사무실 환경을 바꾸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는 상부에 이런 사실을 알리는 보고서를 올리고 1억 원의 자금을 요청해 대대적인 사무공간 리모델링 작업에 돌입했다. 오래되어 칙칙한 카펫을 산뜻한 색상으로 바꾸고, 대형 공기청정기를 설치했으며, 칸막이를 낮춰 사무실 분위기가 생동감 넘치도록 했다.

당시 콜센터 직원들은 근무 환경을 바꿔 주겠다고 여러 차례 공수표만 날리던 회사에 지쳐 있을 때였다. 젊은 센터장이 온 후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일을 밀어붙이자 그에게 홀딱 반했다.

당시 그는 서른 살이었다. 콜센터 직원 중 절반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10여 명씩 나눠 수시로 대화하면서 간격을 좁히려 노력했다. 이런 노력이 콜센터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결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젊은 센터장이 부임한 후 콜센터의 실적은 매달 두 배 이상으로 뛰어올랐다. 회사를 옮긴 지금도 콜센터 직원들은 회식 자리에 박 지점장을 초청한다.

씨티은행에서 성공가도를 달리던 박 지점장은 부장 승진을 눈앞에 둔 올 4월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SCB)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봉이나 대우 등을 생각하면 결코 마음이 내키는 자리는 아니었다. 승진을 눈앞에 둔 데다 연봉도 적잖이 오를 참이었던 안정된 직장을 떠나 예전보다 직급도 낮고 연봉도 그대로인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겉으로 보면 손해 보는 장사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얼마나 뜻이 맞느냐라고 생각했어요. SCB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 분이 정말 훌륭한 분이었고, 같이 계시는 분들도 너무 좋아서 전직을 결정했습니다.”

돈(연봉)이나 진급보다 ‘사람’을 선택한 것이다. 또 금융권에서 일했지만 자신이 체험했던 분야가 너무 좁다는 생각이 들 즈음 새로운 업무인 대출영업을 맡기겠다는 제안이 그를 움직이게 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

700여 명의 직원들과 대출영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낼 즈음 SCB와 제일은행이 합병했고, 존 필메리디스 SC제일은행장이 보낸 e메일을 받게 됐다. 새로 오픈할 지점 세 곳을 운영할 지점장을 공모하는데 직급,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최고의 운영 아이디어를 낸 사람을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다.


공항 귀빈 접대용 라운지를 벤치마킹

SC제일은행 강남중앙지점은 호텔 로비처럼 꾸며져 있다. 호텔식 안내 데스크와 산소발생기는 박경진 지점장의 아이디어다.
이 제안이 ‘새로운 것에의 도전’을 즐기는 박 지점장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그는 전체 응모자 100명 중 2등으로, 그것도 최연소 지점장에 임명됐다. 현재 자신이 책임을 맡고 있는 강남중앙지점에 설치된 호텔 로비식 안내 데스크와 산소발생기 등은 박 지점장의 아이디어다. 공항의 귀빈 접대용 라운지를 벤치마킹해서 은행에서도 최상의 서비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그의 미래형 점포 계획안은 출품된 계획안 중 서비스 분야에서 가장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SC제일은행 강남중앙지점은 호텔처럼 은행 입구에 프런트 데스크를 설치하고 서비스 앰배서더(대사)가 고객을 맞는다. 앰배서더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하고 직접 번호표를 뽑아 해당 데스크까지 안내해 준다. 기껏 번호표를 가지고 기다리다가 공과금 접수는 자동 접수기에서 해야 한다는 등의 황당한 이야기는 박 지점장의 은행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족과 함께. 박 지점장은 대학교 3학년 때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성동본의 여성과 결혼했다.
박 지점장은 승진만 빨리 한 것이 아니라 결혼도 빨랐다. 대학 3학년이던 1996년 한 살 연상의, 그것도 동성동본 여성과 전격적으로 결혼했다. 부모님 반대가 심했지만 ‘사람 하나 보고’ 자신의 인생을 투자하는 버릇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던 셈이다.

대학 재학 중에 결혼을 한 이상 부모에게 손을 벌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주중에는 과외교습, 주말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통역가이드를 하여 돈을 벌었다. 아내는 미술학원 교사로 일해 대학생 부부는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까지 자력으로 해결했다.

사회생활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는 빠듯한 업무 일정 때문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 유일한 불만이라고 한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업무상 골프를 치고 한 번은 가족과 함께 등산을 하면서 건강을 유지한다. 좁은 실내에서 땀을 흘리며 인공적인 근육을 만드는 헬스는 절대 사절이라는 박 지점장은 오전 8시에 출근하여 자정 무렵 퇴근하는 전형적인 워커 홀릭이다.

“일에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그런데 제가 계속 남아 있으면 직원들이 퇴근을 못 하잖아요? 빨리 끝내고 외부 고객들을 만나러 다니려고 합니다. 저는 영업 쪽에 유난히 흥미를 느낍니다. 지점장 이후에도 계속 영업을 해서 임원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
  • 2005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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