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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제8전투비행단 황윤지 대위

금녀의 땅에 첫발을 디딘 여성 전투기 조종사 1호

그러나 비행 중 ‘파이터’만의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바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것을 보고 있는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지상의 빛으로 인해 활주로를 착각할 수도 있고, 바다에 떠있는 오징어 배의 불빛으로 하늘과 바다를 분간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파이터는 이런 아름다운 광경에도 무감각해져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아름다움을 느낄 때 ‘파이터’는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유쾌, 상쾌, 통쾌”라는 한 CF의 카피가 떠오르는 그녀. “하하하, 뭐 인터뷰까지야….” 그녀는 어색한 듯 웃으며 손사래를 쳤지만, 금세 “어떻게 대답하면 되나요?”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묻는다. 그녀에게선 딱딱하거나 근엄한 군인 모습보다 개구쟁이 같은 순수함이 느껴진다. 공군사관학교가 개교한 지 48년이 지난 1997년. 그동안 여성에겐 허락되지 않았던 공군사관학교에 첫 여성 사관생도로 입학한 20명 중 한 명, 2001년 공군사관학교 여성 수석졸업, 한국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공군 제 8전투 비행단에서 만난 32세 황윤지 대위(공사49기)가 걸어온 길이다.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된 것에 대해 황윤지 대위는 호기심이 많은데다 ‘특이함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특별히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기보다 여자는 사관학교에 갈 수 없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사관학교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었어요. 제복을 입는다는 게 너무 멋있게 보이는 거예요. 그런 이유로 이 길을 택했고, 전투기까지 몰게 되었습니다. 사관학교에 가면 제가 영화 〈탑 건〉의 주인공인 톰 크루즈처럼 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요.”

고등학교 졸업 후 이화여대 심리학과에 진학한 황 대위는 다시 시험을 쳐서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올해부터 사관학교에서도 여자 생도를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3 여름방학 때부터 사관학교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그 해에는 여자 생도를 뽑지 않더군요. 대안으로 ‘범죄’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심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미련이 남아 있던 차인데, 공군사관학교에서 여자 생도를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았습니다. 주저 없이 다시 사관학교 입시 준비를 시작했고 1997년, 육곀?공을 통틀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사관학교에 입학한 20명의 여자 생도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육사는 1998년, 해사는 1999년부터 여성의 입학을 허용).

사관학교에 들어갈 때는 하늘을 날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 강렬하지 않았다. 심리학과 정보학 공부가 재미있어 한때는 영화 〈쉬리〉에 나오는 한석규나 송강호 같은 정보요원이 되는 것을 꿈꾸기도 했다. 공군사관학교의 교수 요원이 될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공군사관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 점차 새끼보라매로 커갔다.

“공군사관학교에서 생활하는 4년 동안 무의식적으로 비행에 대한 동경이 생긴 것 같아요. 하늘을 나는 선배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나도 하늘을 날아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 같아요. 공사의 교육이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요.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뭐든 열심히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종사가 된 거죠.”

비행 전 비행임무에 대한 설명과 비행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브리핑 시간. 왼쪽 두 번째가 황윤지 대위.
그녀의 대답은 시원시원했다. 둘러서 말하는 법이 없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힘든 고비도 있었다고 한다.

“생도 시절은 당연히 힘들었죠. 가장 호기심 많고 활달할 나이에 사관학교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또 그전까지는 생각해 보지 못하던 계급이라는 위계질서가 존재하는 세상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지금껏 남자들만의 세계였던 곳이니 이전과는 다른 환경(여성과 함께 생활해야 하는)에 대해 선배들(남자 생도들)도 부담스러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또 여자라는 이유로 사람들 눈에 띄고, 주목받아야 했던 것도 제게는 큰 부담이었죠.”

그러나 워낙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이라 이런 상황을 즐겁게 극복하던 그녀에게도 넘기 어려운 산이 있었다고 한다. 바로 ‘축구’다.

비행기 격납고로 이동하는 차 안의 황윤지 대위(왼쪽).

비행훈련보다 축구가 더 힘들어

“사관학교에 입학한 후, 또 군인이 된 후에도 가장 힘든 게 축구입니다. 훈련이나 비행하는 게 훨씬 편하고 쉽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신체구조도 다르고, 근력이나 힘에서도 차이가 나는데 군대에서 하는 축구는 그런 거 안 봐줍니다. 한팀이 되면 무조건 같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몸을 부딪쳐야 합니다. 솔직히 힘에 부칩니다. 축구 못합니다. 못하니까 더 싫어지더군요. 저는 한ㆍ일전 축구 경기도 안 봐요. 거기에 비하면 비행은 참 공평한 거 같아요. 남자든 여자든 계기판과 조종대만 조작할 수 있으면 그렇게 커다랗고,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날게 되니까요. 정말 실력으로 승부하는 몇 안 되는 세계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현재 흔히 ‘제공호’라 불리는 F-5기를 조종한다. 2001년 5월부터 하늘을 날기 시작해 총 650시간의 비행시간(전투기 조종시간 420시간)을 가진 베테랑 ‘파이터’(공군 조종사 사이에서 전투기 조종사는 ‘파이터’로, 전투기 이외 비행기 조종사는 ‘파일럿’으로 불린다)이다. 베테랑 ‘파이터’인 그녀도 하늘을 날고 있을 때는 다른 생각을 못할 만큼 긴장된다고 한다.

“비행은 자동차 운전과는 전혀 다릅니다. 자동차야 운전 중에 문제가 생기면 길 옆으로 세워 놓고 정비회사나 보험사에 도움을 청하면 되지만, 4600m에서 6100m 높이의 허공을 나는 비행기는 도움 받을 곳도 없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비행을 아무리 잘하는 톱 건도 지상에서 수없이 반복 연습한 비행기 조작을 하늘 위에서는 50%정도밖에 하지 못합니다. 비행 중에는 한순간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비행 중에 비행과 임무 외에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건 비행이 말리고(잘 안 되고) 있다는 거죠. 이런 생각이 들면 ‘내가 잘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러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이런 긴장감 때문에 사실 제 인생 첫 비행 때의 기억도 그냥 ‘뿌듯하다’ 정도 외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비행 중 ‘파이터’만의 특권을 누리기도 한다. 바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다. “야간비행을 마친 후 한숨 돌리며 기지로 귀환할 때 가끔 대도시 쪽에서 올라오는 불기둥을 봅니다. 지상의 가로등, 네온사인, 건물 안의 조명들이 하나로 뭉쳐 불기둥처럼 공중으로 치솟아 오릅니다. SF영화의 특수효과 이상의 환상적인 광경이 연출됩니다. 전투기 조종을 하지 않는다면 절대 볼 수 없는 광경들이죠. 또 캄캄한 밤바다에서 마치 UFO 편대가 떠다니는 듯한 모습을 볼 때가 있어요. 야간 조업을 나온 오징어잡이 배들이 오징어를 유인하기 위해 배에 매달아 놓은 전등의 빛이 바다에 비치며 마치 UFO처럼 보이는 거죠. 이런 걸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것을 보고 있는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입니다. 지상의 빛으로 인해 활주로를 착각할 수도 있고, 바다에 떠있는 오징어 배의 불빛으로 하늘과 바다를 분간하지 못하는 순간이 생깁니다. 파이터는 이런 아름다운 광경에도 무감각해져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아름다움을 느낄 때 ‘파이터’는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녀의 바람은 후배들에게 믿음직한 선배가 되는 것.

“전쟁이 났을 때 내가 ‘나가자’고 하면 후배들이 두말 없이 내 뒤를 따를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군인으로서, 파이터로서 좋은 선배가 되는 것이 제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명예인 것 같습니다.”

사진 : 신규철
  • 2008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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