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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은어 생활 : "치지직이 왜 이렇게 딜딜하냐?" "개미똥꼬 같으니라고!"... 탐험대원 '사슴'의 언어탐험
입력 : 2021.10.12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친구가 나를 태그했다. 아래 사진을 공유한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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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당고라는 말은 처음 들어본다. 익명 작성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말은 배고파서 단 게 안 땡김 배단안 배안단 배안당고 판당고라는 변천사를 거쳐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애초에 배고파서 단 게 안 땡긴다라는 상황이, 굳이 줄여서 한 단어로 불러야 할 만큼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던가?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저 익명 작성자의 가족들에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자주 사용하는 단어인 듯하다. 게다가 필요해서 만든 단어일 테다. 그러니 내가 저 단어의 탄생이나 변천사를 평가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평가할 생각도 없다. 조금 의아하긴 하나, 흥미로울 뿐이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판당고라는 말을 들어보기는커녕, 유래조차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 판당고를 사용해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상대방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이해시켜야 할 필요도 없다. 은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런데 이 글에 나를 태그한 친구는, 가족들끼리 사용하던 은어를 스무 해 한평생 동안 표준어로 알고 평상시에도 사용하며 살아왔다. 그 친구네 가족이 쓰는 은어는 딜딜하다이다. 나는 딜딜하다라는 말을 이 친구에게서 처음 들었다. (당연하다) ‘딜딜하다라는 말은 왠지 사전에 있을 것 같지만 아니다. 어떤 물건이 잘 작동이 안 되거나 시원찮을 때, 사람이 칠칠치 못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아유, 채칼이 왜 이렇게 딜딜하니?“라고 하면, 채칼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지 않아 제 기능을 못하고 무디다는 뜻이 된다.

우리 집에도 이런 단어가 몇 가지 있다. 서술어로 사용되는 말은 없고, 대체로 명사다. 먼저 똘또로.’ 똘또로는 내 태명이었다. 똘똘한 아기가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빠가 지어주신 태명이다. 이 똘또로라는 호칭은 나중에 껌또로로 변형되기도 한다. 어릴 때 엄마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귀찮게 하던 내 모습을 보고, 아빠가 껌딱지 똘또로를 줄여 부르기 시작하신 것이 시초다. 내가 일곱 살 때 엄마의 뱃속에 생긴 동생은 태명부터 껌또로였는데, 엄마 뱃속에서 얌전했던 나와 달리 동생은 엄마를 입덧으로 많이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한편, ‘개미똥꼬는 우리 엄마가 화났을 때 장난스럽게 사용하시는 단어다. 사람에게도 쓰이고, 물건에도 쓰이며, 추상적인 상황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이런 개미똥꼬 같으니!”라고 하면, 어떤 사람/물건/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고 짜증이 난다는 뜻이다. 자매품은 매미똥꼬. 뜻은 특별히 다르지 않지만, “이런 개미똥꼬 매미똥꼬 같으니!”라고 하면 좀 더 강도가 센 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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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용하시는 이상한 말이 또 있다. ‘치냉이다. 이열치열 이냉치냉도 아니고, 웬 치냉? 치냉은 바로 김치냉장고의 줄임말이다. 어느 날 내가 엄마에게 메시지로 엄마, 올 때 우유 좀 사다 줘하니, ‘우유는 치냉 오른쪽에 있어라고 답장이 왔다. 치냉이 뭐냐고 물으니 김치냉장고라 했다. '김치냉장고를 왜 치냉이라고 불러?' '너네처럼 한 번 줄여봤어.' '그런데 왜 김냉이 아니라 치냉이야? 김냉은 어감이 이상하잖아~' 전말은 대충 이렇다.

그런가 하면 내가 쓰는 은어도 있다. ‘치지직인데, 바로 전기 파리채다. 전기 파리채는 이 시대의 무척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로, 버튼을 누르면 그물망에 전기가 통하면서 그곳에 닿는 벌레를 모조리 구워버리는 살상 무기다. 전기 파리채로 벌레를 잡으면 항상 치지직하며 전기 튀는 소리가 나고, 단백질 타는 냄새가 뒤따른다. 날벌레를 잡을 때는 고도의 집중력과 동체 시력이 필요한데, 그때 벌레를 주시하며 동시에 전기 파리채를 가져올 재간이 나는 없다. 가족들에게 가져다 달라고 할 때 전기 파리채라는 다섯 글자를 또박또박 말할 정신도 없다. 그래서 빨리 치지직 좀 줘!”라고 말하기 시작한 게 습관이 되었다.

어릴 때는 배추김치의 줄기 부분을 울루불퉁 김치라고 불렀다. 울루불퉁은 사전에도 없는 단어다. 지금은 통통김치로 순화(?)해서 부른다. ‘쭈까쭈까(기지개)’, ‘오똑오똑(코를 오똑하게 해 주는 마사지)’, ‘아키미(아이스크림)’ 등의 가족 은어도 있다. 이 외에 겨데기(겨드랑이)’, ‘궁데기(궁뎅이)’도 있는데, 어쩌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게 된 건지 유래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웃기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사용하는 특별한 은어가 있는가? 집집마다 특별하게 사용하는 은어가 있는가 하면, ‘돌돌이(테이프 클리너)’처럼 많은 가정이 공유하는 공통의 은어도 있을 것이다. 주변의 다른 가족들은 어떤 은어를 사용하는지 살펴보고, 우리 가족의 슬기로운 은어 생활은 어떤지도 떠올려 보자. 아주 색다르고 재미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이야기...

엄밀히 말하자면, 이 글에 수록한 단어들은 정확히 은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은어隱語, ‘어떤 계층이나 부류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도록 자기네 구성원들끼리만 빈번하게 사용하는 말을 말합니다. , 은어의 가장 큰 특징은 숨기고 감추려는() 의도입니다.

이 글에서 언급한 단어들은 가족이 아닌 외부인에게 어떤 뜻을 숨기려고 사용한다기보다는, 그 가족의 문화 안에서 가족 구성원들만의 약속으로 새로 만들어진 것이므로 은어가 아니라 가족 방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응집성 있는 제목을 위하여 은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에서 말하는 은어란 다른 이들에게 뜻을 숨기고 감추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가 아닌, 다른 이들이 뜻을 알지 못하고 쉽게 유추하기 어려운 단어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슴(필명) 고려대학교 언어학과 19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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