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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센트럴 뉴욕의 눈폭탄 下 반려견 부도(Budo)에게 겨울왕국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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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2.08
눈 쌓인 센트럴 파크. ©셔터스톡

 눈 폭탄이 이번처럼 주말에 떨어져 주면 감사할 일이다. 미리 볼일을 보고 집에 들어앉아 꼼짝 않고 있다 하루에 3번 우리 개만 산책 시켜주면 된다.

 나에게는 티베탄 스파니엘(Tibetan Spaniel) 종의 개가 한 마리 있다. 이름은 부도(Budo)다. 오래 전에 읽었던 성장소설에 나온 등장인물의 이름이다. 12파운드니까 5KG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고대 눈 내린 티베트고원에 살던 승려들이 낮에는 밖에 내 놓고 밤에는 데리고 들어와 차가운 이불 속에서 끼고 잤던 종자라 추운 날 밖에 나가 바들바들 떠는 일은 없다.  

 혹한 속에도 눈 속으로 뛰어 들기를 즐기는데 문제는 눈이 30센티미터나 내리면 짧은 다리가 눈 속에 박혀 아무데도 가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다. 생각 끝에 폭설이 내린 날은 부도를 데리고 나가기 전에 내가 먼저 장화를 신고 나가 앞마당에 눈을 밟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라비린토스를 연상시키는 얽히고설킨 미궁을 만들어 놓는다. 그럼 부도는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다 볼일까지 다 보고 집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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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부도' ©이철재

 일단 집으로 들어오면 부도는 하루 종일 푹신한 자기 침대에 들어가 얼굴도 들지 않고 잠만 잔다. 날이 어두컴컴하니 계속 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부도가 나랑 놀아주지도 않고, 운전을 하고 어디 나갈 수도 없으니, 나는 미리 장을 봐 놨던 것들을 꺼내 한 달은 족히 먹을 음식들을 하루 종일 만든다. 우선 와인을 한잔 따라 마시며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다장조를 튼다. 나도 왠지는 모르겠는데 음식을 만들 때면 늘 하이든 첼로 협주곡으로 손이 간다.

만드는 음식은 그때그때 준비한 재료에 따라 다르다. 김치, 파이, 쿠키, 파스타 소스, 갈비찜, 녹두빈대떡, 만두, 잡채 등 다양하다. 만들다 배가 고프면 만들던 음식을 점심으로 먹고 계속 만든다. 그다음날도 눈이 오면 계속 음식을 만든다.

 

“Cabin Fever”

 아무리 혼자 잘 노는 나지만, 그래도 이틀을 꼬박 집에 갇혀 있으면 답답하기 마련이다. 집에만 갇혀있어 답답한 느낌을 영어로 “Cabin Fever”라고 한다. 캐빈 피버가 엄습하기 시작하면 만든 음식들을 싸가지고 장화를 신고 옆집 할머니 메이(Mae)의 댁으로 간다. 할머니는 내가 왔다고 앞집 아저씨 모리스(Maurice)에게 연락을 하고, 앞집 아저씨도 장화 신고 길을 건너와 어느 틈에 동네 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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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면 눈 폭탄이 주중에 떨어지면 난리가 난다. 뉴스에서 오후 퇴근 무렵부터 눈이 시작된다고 하면 회사들도 2-3시 쯤 모두 집으로 가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 집은 언덕 중간에 있고, 나의 차는 눈에 취약한 후륜구동이라 눈이 오는 날 밖에 나가 볼일을 보고 집으로 갈 때는 ‘오늘 제발 집까지 올라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가 절로 나온다.

 한번은 밖에서 일을 보고 집 앞 언덕 밑까지 위의 기도를 드리며 왔는데 멀리서 시라큐스 시의 눈 치우는 트럭이 뒤에서 오고 있었다. 하늘이 나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생각하고 그 트럭을 기다렸다가 뒤를 졸졸 따라가며 언덕을 올라 집으로 들어갔다. 트럭이 눈을 치우며 소금을 뿌리니 차가 온통 횟가루를 뒤집어 쓴 듯 소금을 뒤집어썼지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업무상 약속이 있어 2-3시간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서 누군가를 만나야 할 때, 혹은 비행기를 타고 어디로 가야할 때는 며칠 전부터 늘 날씨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실제로 날씨 때문에 취소되는 약속도 꽤 있다.

 

센트럴 뉴요커들에게 눈은 애증의 대상

 늘 눈이 오나 신경을 쓰며 살자니 눈 이야기만 나오면 짜증이 난다. 하지만 나도 한 때는 눈을 기다렸다. 텍사스에서 대학 4년 마치고 뉴욕시로 이사 했을 때 아파트 10층에서 살았다. 내 방 창문 너머로 브롱크스 동물원(Bronx Zoo)의 사슴 우리가 보였다. 어느 하루 밤새 눈이 내려 온 세상에 눈이 쌓였다. 눈 덮인 브롱크스 동물원과 그 위를 유유히 걸어 다니는 사슴의 모습은 4년 동안 눈이라고는 구경도 해보지 못한 나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뉴욕시에 사는 2년 동안 늘 눈을 기다리며 살았다. 문제는 2년 동안 눈이 그날 딱 한번 내렸다.

 시라큐스에 처음 와서 눈이 많이 온다는 말을 듣고 은근히 기뻤다. 그러나 로스쿨 1학년이 끝나기 전에 눈에 학을 떼고 말았다. 12월 31일까지는 그래도 견딜 만 했다. 크리스마스 등 연말의 들뜬 분위기와 눈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1월에도 오고, 2월에도 오고, 3월에도 오고 4월에도 그칠 줄 모르는 눈은 인간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 눈이 왔다고 이야기를 하면 한국에 친구들은 열이면 열이 “좋겠다”라고 반응 한다. 그 말 듣는 것도 짜증나 눈이 왔다는 이야기도 잘 하지 않는다.  

  한 가지 고백을 하자면 이번에 눈 폭탄이 떨어진 주말 나는 서울에 와 있었다. 영상의 날씨에 뜨듯한 온돌방에 앉아 이웃들에게 약 올리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한참 혼자 즐거워했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눈 내린 센트럴 뉴욕의 사진을 보자니 오랜만에 ‘눈이라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기도 한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센트럴 뉴요커들에게 눈은 애증의 대상이다. 가까이 있을 때는 짜증이 나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얼어붙은 폭포와 눈 쌓인 산자락과 호수 등 눈에 덮인 뉴욕주의 자연처럼 아름다운 풍경도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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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집 앞 풍경. ©이철재

 “겨울의 갑옷으로 갈아 입었구나”

 우리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1년을 우리 집에서 사셨다. 그 마지막 겨울 할머니께서 우리 집 마당에 내린 하얀 눈을 내다 보다 혼잣말을 하셨다. “모두 겨울의 갑옷으로 갈아입었구나.” 눈 덮인 센트럴 뉴욕의 자연은 배화고녀의 문학소녀 우리 외할머니의 표현처럼 겨울의 갑옷으로 갈아입은 듯 늠름하고 장엄하다. 그래서 생각한다. ‘그래, 이 위대한 자연이 왜 나 따위의 짜증에 아랑곳 하리오?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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