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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유슬기의 스타의 사소한 습관
인터뷰를 좋아해 기자인 게 감사합니다. 귀로는 이야기를 듣고 눈으로는 행간을 읽으려 애씁니다.
아주 사소한 습관에 마음의 내용이 담겨있다고 믿어서요.
그런 찰나를 만나면 보물을 발견한 듯 심장이 두근!
비밀로 간직한 보물 이야기,토프를 대나무숲 삼아 털어봅니다.
#2. 배우 류승룡의 핫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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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작년 딱 이맘때였다. 2018131일 영화 <염력>이 개봉했다. <부산행>을 만든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었고, 빌딩숲 위로 높이 떠오른 류승룡의 몸이 포스터 전면에 담긴 영화였다. 개봉 순서는 역순이었지만, 그는 이미 배우 장동건과 함께 <7년의 밤>을 마친 뒤였고, 그 창백한 영화 뒤에 만난 <염력>은 그에게 숨통을 틔워 준 시간이기도 했다. 두 영화는 감독의 성향이 매우 다르다. <7년의 밤>을 만든 추창민 감독은 이미 <광해, 왕이 된 남자>로 류승룡과 연을 맺은 바 있다.

   

추창민 감독은 바느질을 하듯 한 땀 한 땀 감정을 아로새기며 영화를 만들었다. 류승룡이 맡은 최현수는, 늪에 빠진 인물이다. 버둥거릴수록 심연을 알 수 없는 비극에 빠져든다. 감독과 스태프의 노고를 알기에, 그는 서슴없이 늪을 향해 걸어들어 갔다. 몸고생과 맘고생이야, 당연한 일이었다. 그 길고 긴 밤을 지나 <염력>을 찍을 때는 후련한 기분이었다. 소심한 은행 경비원이었던 석헌은 염력을 얻게 된 후 건물 위를 뛰어 다니고, 도로 위를 날아다닌다. 전혀 다른 두 작품으로 류승룡은 땅을 파고 들어갔다가, 하늘을 뚫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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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년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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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염력>

그리고 이 두 작품은 모두 외로운 결말을 맞았다. 배우들은 치열했고, 감독들은 치밀했지만 관객이 보아주지 않는 영화의 운명이란, 쓸쓸한 것이었다.그 쓸쓸함의 끝에 류승룡이 있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만난 류승룡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나는 2006년 장진 감독의 영화 <거룩한 계보>에서 그가 맡았던 정순탄이 등장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자체 돌비 음향 시스템을 가동한 듯 공간을 울리던 목소리. 그의 등장은 영화 전체의 결을 입체로 바꾸어 놓았다. 당시 이야기를 하자 그가 쑥스러운 듯 웃었다.

   

2006년은 그가 연기를 접으려던 때였다. 무명의 배우로 연기와 생계를 겸하느라 그는 한 때 폭염 속에 도로를 포장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난타>라는 넌버벌 공연을 하며 10년을 채웠고, 칼자루를 쥐고 세계를 휩쓸었다. 이제 그 자루를 놓고 싶었다. 그 때 장진 감독이 찾아왔다. ‘한 편만 더 하자고 했다. 그게 <거룩한 계보>였다. 마흔 즈음 얼굴을 알린 이 배우는, 단숨에 산의 정상에 오른다. 그가 출연한 <광해, 왕이 된 남자>, <7번방의 선물>, <명량> 이라는 세 편의 영화가 모두 천만관객을 기록했다. 특히 <7번방의 선물>6살 지능의 딸바보 용구와 그의 딸 예승이의 이야기다.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부성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는 용구를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대신, 진실하게 그렸다.

   

잘 되기 어려운 영화는 잘 되었고, 잘 될 것 같은 영화들은 그러지 못했다. 인간의 힘으로 바꾸기 어려운 혼란이었고, 무기력이나 자책으로 빠질 수 있는 시기였다. 더구나 <손님>, <도리화가>의 부진이 <7년의 밤>, <염력>까지 이어졌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았다. 그는 대신 여행을 떠났다. 유명인이나 연예인이 아니라, 방랑자의 삶이었다. 술 대신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여름에 도로를 까는 일을 하는 인부들이 보이면 음료수를 사다주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생활인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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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 2아웃에도, 홈런은 나온다

 

<극한직업>은 그가 9회말 2아웃에서 쏘아올린 홈런이다. <극한직업>에서 류승룡은 좀비같은 마약반의 반장을 맡았다. 그렇다. 그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 어떤 필살기나 스킬이 아니라, 뚝심과 맷집으로 살아남는다. 그것도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다. 작년 이맘때, 나는 류승룡에게 핫팩을 받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가방을 챙겨 일어서는 참이었다. 밖이 많이 춥다면서, 그는 쌓아둔 핫팩 꾸러미에서 한 개를 건네주었다. 그 날 그 카페에서 그를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핫팩을 받았을 것이다.

   

누구보다 추웠을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닌 타인의 추위를 염려해 네모난 발열주머니를 준비했다,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영하의 거리로 나왔다. 그 핫팩을 주머니에 넣고 굴리면서, 황소같이 우직했던 그의 눈빛을 떠올렸다. 따스한 카페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터뷰 였음에도, 오가는 길을 염려한 그의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설연휴를 지나며 한국에서는 두 번째 천만코미디 영화가 탄생했다. 그 첫 번째와 두 번째에 모두 류승룡이 있다. 핫팩보다 더 뜨끈한 소식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그는 정상에 오르더라도, 고소공포증을 느끼거나 산소부족으로 무력증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내려오는 길도 정답게 느낄 것이다. 죽어도 죽지 않는, 류승룡의 오늘이 반갑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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