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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밤하늘에 달빛이 사라져도... 패티김上- <사랑의 맹세>
입력 : 2020.09.21

1998년에 나온 미국 영화 중에 <플레전트빌(Pleasantville)>이라는 영화가 있다. 1998년 당시에 살고 있던 주인공 둘이 재방송으로 보고 있던 1950년대의 흑백 TV 드라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모두가 흑백인 속에 그들만 컬러였다. 그들은 모든 것이 검거나 흰색인 그 드라마 안에 새로운 세상, 새로운 색깔이었다. 모두가 매일 아침 똑같은 아침 식사를 하고, 드라마에 등장하는 장소 이외에는 가지도 않고, 갈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 두 주인공들이 컬러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세상이 그들 때문에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패티김은 이미 대스타였다. 내가 언제 처음 그녀의 모습을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패티김을 발음하지 못해 패트김이라고 할 때부터 그녀를 좋아했다. 사람의 얼굴은 흰색, 나머지 모든 것들이 다 검거나 회색인 흑백 상자 속에서도 그녀는 <플레전트빌>의 주인공들처럼 색깔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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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도레미파'를 열창하는 패티김. ⓒ조선DB

연예인이든 아니든 여자들은 무조건 부끄러워하고 조신해 보여야 하던 시절, 그녀는 어깨가 드러나고 허벅지까지 찢어진 롱 드레스를 몸매가 모두 드러나게 꽉 맞춰 입고 노래했다. 어떤 때는 머리를 뒤로 묶고, 어떤 때는 강렬하게 풀어헤치고 커다랗고 동그란 귀걸이를 찰랑찰랑 흔들며 열정적으로 노래하던 그녀는 어린 나의 눈에도 흑백 화면 속 유일한 컬러였다. 어려서는 그 모습이 신비스러워 좋아했다.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쯤 되어서였다. 패티김이 부른 <사랑의 맹세>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팝송인 ‘Till’을 번안해서 우리말로 부르고 후렴구를 원어인 영어로 한 번 더 부르는 노래이다.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다 고등학교 입학하고 변성기가 끝나면서 나는 이 노래를 매일 목청껏 부르기 시작했다.

모임에서 노래를 시키면 가장 자신 있게 부르는 노래가 이 노래이다. 고등학교 동창 약혼식에 가서 이 노래를 불렀다가 내 노래에 반한 신부 어머님의 주선으로 소개팅을 한 적도 있다. 요즘도 내가 혼자 가장 자주 흥얼거리는 <사랑의 맹세>는 내 인생 최애창곡이다.

 

스무 살 아가씨 김혜자를 패티김으로 만들어 준 그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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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작곡가 고 박춘석씨 반주에 맞춰 노래 연습하는 가수 패티김. ⓒ조선DB(PK프로덕션 제공)

<사랑의 맹세>는 김혜자라는 스무 살의 아가씨를 패티김으로 만들어 준 노래이기도 하다.

1960~1970년대는 물론 1980년대까지만 해도 글로리아 방, 위키 리, 티나 황 등 영어식 이름에 성을 뒤에 붙인 가수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이들은 모두 미8군 무대에서 가수 경력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이름이 한국식인 사람 중에도 노래 좀 한다 하는 가수들의 대부분이 미8군 쇼 무대에서 노래하다 기회를 얻어 TV에 얼굴을 비추고 인기를 얻은 가수들이었다.

이들은 전국의 미군부대 클럽 매니저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오디션을 통과해야 하고, 통과 후에도 매년 다시 오디션을 봐 낙방한 사람은 쇼에서 나가야 했기에 끊임없이 실력을 연마해야 했다. 그들은 유명 외국 가수들의 유명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영어 발음을 교정하고, 수많은 장병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무대 경험을 쌓았다.

요즘의 연예기획사 연습생들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는 힘든 과정이었다. 패티김은 1959년 바로 이 미8군 오디션에서 ‘Till’과 ‘Padre’를 불러 최고 점수인 A플러스를 받고 미8군 쇼의 스타가 되었다.

<사랑의 맹세>는 패티김의 초창기 스승이기도 하고, 이미자, 남진 등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끄덕여지는 가수들의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곡가 박춘석이 개사를 했다. 들을 때마다 요점만 정리해서 개사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어의 가사를 직역했다면 ‘달이 하늘을 떠날 때까지, 바닷물이 모두 마를 때까지 나는 당신을 숭배하겠소. 열대의 태양이 식을 때까지, 이 젊은 세상이 늙어버릴 때까지 난 당신을 사랑하리’라는 다소 장황하고 유치한 가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박춘석은 ‘푸른 밤하늘에 달빛이 사라져도 사랑은 영원한 것. 찬란한 태양이 그 빛을 잃어도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고 간단하고 깔끔하게 번역을 했다.

후반부의 영어 가사는 ‘You are my reason to live’이다. 《뷰티풀 마인드》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노벨상을 타고 수상 연설을 하면서 부인에게 “You are the only reason I am”이라고 한다. 여러 깊은 의미를 내포하는 말인데 “내가 존재하는 건 오직 당신 때문이다”라는 대단한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의 맹세>의 가사도 이에 못지않다.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말한다. 박춘석은 여기서도 기지를 발휘해 입으로 그 사랑의 말을 다 노래로 부르지 않으면서 얼마나 행복한 사랑의 순간인지 표현한다. ‘오, 그대의 품 안에 안겨 속삭이는 사랑의 굳은 맹세.’ 달이 하늘에서 사라질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 안겨 사랑을 속삭이니 얼마나 행복할까?

이렇게 클라이맥스에 달했던 노래는 다시 처음의 고요한 멜로디로 돌아와 ‘…까지 사랑하겠다’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강이 냇물로 거슬러 흘러갈 때까지, 연인들이 꿈꾸기를 멈출 때까지, 나는 당신의 것이오. 당신도 내 것이 되어 주오.’

박춘석은 이것도 여러 재료 버무려 맛깔난 김치를 담그듯 간단명료하게 ‘강물이 흐르고, 세월이 흘러도 사랑은 영원한 것’이라고 번역했다. 강물이 냇물로 거슬러 올라가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꿈꾸는 것을 멈추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니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한국 가요계 명콤비, 패티김-길옥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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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5월 1일 패티김과 길옥윤이 베트남 파견 비둘기부대에서 펼친 위문공연 장면. ⓒ조선DB

미8군 무대를 거쳐 1960년대 한일 국교정상화 이전 최초로 일본 정부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미국 라스베이거스까지 진출했던 패티김은 1966년 2월 잠시 편찮은 어머니를 방문하러 귀국한다. 두 달 휴가를 내 귀국했다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작곡가 길옥윤과 결혼한 것이다.

우리 가요사에 가수와 작곡가 명콤비가 많지만 패티김-길옥윤 콤비는 아마도 인간 문명에 노래가 존재하는 한 잊히지 않을 것이다. 전 국민이 다 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이별>을 비롯 내가 즐겨 듣는 노래만도 <사랑하는 마리아>, <람디람디람>, <빛과 그림자> 등 일일이 손에 꼽기도 힘들 정도의 수많은 히트곡이 두 사람의 결혼 생활 동안 나왔다.

이들은 장안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스타 커플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패티김의 이름을 건 <패티김 쇼>라는 프로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상의 가수-작곡가 콤비가 부부 생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이들은 이혼을 했다. 그들의 이혼이 어느 날 조간신문에 대서특필 되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때만 해도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 부모님이 아침에 신문을 보며 “이혼이 뭐 좋은 일이라고 조간신문에 이렇게 크게 내?”라고 하셨다.

이혼 기자 회견을 마친 둘이 손을 잡고 회견장을 빠져나가는 모습이 신문에 실렸다. 이후 수많은 억측과 소문에 지친 패티김은 미국으로 건너가 몇 년간 노래도 하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사업가와 재혼한 뒤 1978년 세종문화회관 개관 때 대중가수 최초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리사이틀을 하며 가요계에 복귀했다. 이때부터 15년간, 그녀의 30대 후반에서 50대 중반이던 기간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골든 보이스 시절이다.

1970년대 그녀의 목소리는 음역이 넓고 파워가 있었지만 허스키 보이스였다. 여성 특히 고음을 가진 가수들이 절정에 이르는 40대가 되자 그녀의 고음에 안개처럼 끼어 있던 허스키한 기운이 사라졌다. 이때 나온 노래들 중 대표적인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에서 처음 그런 변화를 감지했다.

1967년에 녹음한 길옥윤 작곡의 <빛과 그림자>에서 짙은 색소폰의 반주에 맞춰 부른 그녀의 허스키한 음성이 마치 담배 연기 자욱한 재즈 바를 연상케 했다면, 그녀가 40대 때 부른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랑>의 과거 영상을 보면 ‘오페라를 해도 잘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개가 걷힌 목소리가 그녀의 탄탄한 발성의 힘을 받아 빨랫줄처럼 뻗어나간다.

<빛과 그림자> 역시 1985년 40대 때 다시 녹음한 것을 들어보면 오리지널 녹음에 비해 목소리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둘 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1985년 녹음은 클래식한 발성과 파워풀한 보컬이 좋다. 오리지널 녹음은 목소리를 조금 자제하면서도 여러 감정의 색깔을 팔색조처럼 펼쳐 보인다.

여기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침울하고, 어두운 느낌을 배가한다. 마치 재즈 바에 앉아 와인 한잔 마시며 ‘사랑은 나의 천국이며 지옥이고, 행복이며 불행이고, 빛과 그리고 그림자’라 토로하는 듯하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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