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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염은영의 다행의 기록
아직까지는 퇴사하는 중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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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1
도움 : 친구 이랑, 영화 <타샤 튜더>, 시집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

얼마 전 회사를 그만두었다. 사직서를 낸 일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오랜만의 퇴사였다. 한 회사에 적을 둔 생활을 얼마나 했는고 하니, 장장 만 3년이다. 사직서를 쓰는데, ‘적어도 2년 동안은 이곳에서 잘 해보자’하고 다짐했던 첫 마음이 덜컥 떠올랐다. “와, 해냈네.” 반사적으로 뱉어진 말에는 성취의 숨 같은 건 붙어있지 않았다. 의자에 털썩-하고 주저앉는 데 쓰인 추임새일 뿐이었다.


일에 대한 애정이 마르지 못한 채로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생각에 몇 주를 내 앓았다. 몸에서 빠져 나가지 못한 일에 대한 미련, 습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디어…. 그러니까 내 상태라는 것은, 그것들을 떨치지 못해 안달한다기보다 그것들을 떨쳐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쪽에 가까웠다. 그렇게 진단하고 나니 불행, 해져버렸다.


이런 날들의 연속이었다. 불행한 날들의 연속. 사나워진 마음은 좀체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인제공자가 있었잖아! 나는 이 이야기를 줄기차게 하길 원했다. 나를 몰아세운 어떤 이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고, 아직 할 일이 더 남아있었다고, 나보다 그 일을 더 잘할 사람은 없다고. ‘~ 때문에’ 그만둔 거라고. 하지만 이 이야기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최소한의 자기 위로도 되지 않았다. 회사 생활이 곧 나라고 착각한 잘못의 결과라는 사실만이 더 확고해질 뿐이었다. 회사 생활로 자아성찰을 하려고 했었니? 라고 내게 묻지 말아 달라. 낯이 뜨거워진다.  


무모한 열정과 어리석음으로 점철된 과거, 라고 지난 회사생활을 이름 짓고 나면 조금 더 불행해질 수가 있었다. 더 불행해지는 쪽으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방향은 결코 옳은 것은 아니지만, 보다 냉정한 자기 상태의 인지가 가능해지는 유익이 있다. 불행한 줄 알아야 행복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고 해야 할까. 그런데 당장 나는 뭘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런 걸 별로 고민해 보고 살지 못했다는 사실도 지금에서야 알다니. 한층 더 불행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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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도움 1.
그런 나와는 반대로 행복한 일상을 누리는 데 적극적인 친구 이랑을 며칠 전에 만났다. 최근 이랑이 누리고 있는 일상의 행복은 식물 기르기에 있다. 뭐라도 하나 시작하면 대충하는 법이 없는 그는 근사한 가드너가 되어가는 중이다. 식물을 돌보는 일에도 정성이 대단하지만, 그 스스로 확장해 나가고 있는 식물의 세계는 견고하고 다채롭다. 열심히 찾고 배우고 공부하고 실행하는 데 거침없다. 그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푸른 이파리들의 세계는 과묵하다. 살고 죽는 문제가 그들 세계에서도 가장 중요하지만, 이 문제에서 그들은 소리치는 법이 없다. 물이 많으면, 흙이 맞지 않으면, 햇볕을 충분히 쬐지 못하면 그들은 자멸한다. 결코 드러내지 않는 덤덤한 생의 감각. 무슨 일에든 시끄러워지곤 하는 나는 식물의 세상이 조금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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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타샤 튜더> 스틸


도움 2.
이랑을 만난 다음 날, 영화 <타샤 튜더>를 보러갔다. <타샤 튜더>는 <비밀의 화원>, <소공녀>의 그림을 그린 작가이자 <호박 달빛>, <코기빌 마을 축제>를 쓴 동화작가 타샤 튜더의 라이프스타일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타샤 튜더는 평생 정원을 가꾸고 동물을 기르며 그림을 그리고 인형을 만든 천생 크리에이터였다. 그는 모든 것을 대부분 직접 만드는 일을 기꺼워했다. 그가 손을 갖다 댄 모든 사물과 생명체에 담뿍 깃든 생의 에너지는 놀랍도록 동화적인 데가 있었다. 낡고 아름다운 것들이 즐비한 그의 집에는 품위가 있었고, 그 퀴퀴한 속내를 들여다보는 일로부터 나는 평안을 찾아갔다. 영화 속 그는 꾸준히 움직였다.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곳을 찾아 매만지고 가꾸었다. 92세의 노인이 된 그는 잡초를 뽑고 삽으로 땅을 파 씨앗을 심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정원을 가꾸는 데 있어 사려 깊은 사람이었다. “꽃이 행복한지 아닌지 보면 알아요. 그들 각자 심기길 원하는 곳이 있지요. 나는 꽃들이 원하는 곳에 그들을 심어주었어요.”


그는 영화 속 인터뷰 내내 명언을 쏟아냈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나는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고, 그래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라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나는 내 안에 완전히 꺼진 줄로만 알았던 삶의 불씨를 기미를 발견한 듯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가장 중요한 말.


“누구나 어두운 면이 있지요. 그런데 자꾸만 어두워지려고 하면 결국 인생에 그늘이 생겨요. 떠나세요. 남들은 비극에 끌린다는데 나는 아니에요. 불행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아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지 영화 한 편을 보고 솔루션을 얻었다면,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영화가 좋았대도 거기까진 아니다. 당장 나는 정원을 가꿀 수도 없고 겨우 하나 기르고 있는 아레카야자나무를 끝까지 잘 키워낼 수 있을지도 자신 없다. 여전히 마음은 사납고 행복은 내게 속한 단어가 아닌 것만 같다. 하지만 나 역시 더는 비극에 끌리지 않는다. 그 생각을 선창해 준 이를 만나 조금 힘을 얻었으니 뭐라고 덧붙여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의 먼저 된 동의로 비극에 가까워져 가는 나를 멈추고만 싶다. 당장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불행에 머물고 싶지 않다.

 

도움 3.

col_news181121_3_3.jpg“걱정은 자주 넘어졌던 부위에 묻어있죠” (시집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 중 ‘걱정 인형’ 부분)


시집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를 읽고 있다. 시집 제목에 ‘정원사’라는 단어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걱정은 자주 넘어졌던 부위에 묻어있죠”는 시집에 수록된 시 ‘걱정 인형’의 첫 행 시구다. 마음이 끌리는 문장이어서 여러 날 곱씹고 있다. 이 시는 첫 문장의 성마른 고백으로부터 “걱정은 계단과 같을 거예요. (중략) 가장 친했던, 헐렁해진 계단이 닳고 낡은 걱정을 보관하기 좋은 관이 있죠 (후략)”로 이어진다. 시의 맥락을 훼손 않은 채로 감상하기에 멋대로 발췌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걱정 인형’에 이입한 나는 ‘낡은 걱정을 보관할’ 기력을 조금씩 회복하기 위해 이 세 문장을 이어 읽는 중이다.


내게는 사람과 영화와 문학이 갈피를 모르는 매순간의 전진을 돕는다. 그것은 행복 그 자체는 아니지만, 명징한 도움이자 불행을 떨칠 활로임에 틀림없다. 여러 날에 걸쳐 퇴사로 말미암은 마음의 병을 다스리기 위해 이들로부터 도움을 얻었다. 앞으로도 어떤 문제에 직면하든 사람과 영화와 문학으로 순간의 감각을 틔우고 생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힘쓸 생각이다. 그리고 꾸준히 글로 전할 것이다. 천천히 조금씩 서두르지 않고 오늘 더 행복에 가까워지고 싶다.


아직까지는 퇴사하는 중입니다만.

 

염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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