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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를 반으로 쪼개는 일을 무한 반복하면? 존 돌턴(John Dalton, 1766.9.6~1844.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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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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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신로아

  “사과를 반쪽으로 쪼개고, 반쪽을 또 반으로 쪼개는 일을 무한히 반복한다면?”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크기가 아무리 작아도 그것을 자를 칼만 있다면 가능하다.”
  “매우 작은 크기에 다다르면 더 이상 자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전자는 원소설(元素說)을 믿는 학자들, 후자는 원자설(原子說)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생각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기원전 493~430년경)는 만물이 물, 불, 공기, 흙의 4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플라톤(Pluto, 기원전 428~348)도 4원소설을 믿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는 4원소에 에테르(Aether, 고대 그리스어 Αἰθήρ)를 추가하여 5원소설을 제안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없는 것이 존재할 이유는 없다’라고 생각하여 진공(vacuum)을 인정하지 않았고, 천상의 세계는 빛나는 물질 에테르로 가득 채워져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역설(逆說, paradox)의 논리로 유명한 철학자 제논(Zeno of Elea, 기원전 5세기, 생몰 연대 미상)은 무한히 작은 것으로는 유한한 것을 만들 수 없다고 보았다.
 “사과를 무한히 자를 수 있다고 가정하면 무한히 작은 것이 된다. 즉 무한소(無限小) 크기의 사과가 되는 것이다. 무한소 크기로 작아진 사과 알갱이를 전부 모아서 원래의 사과로 복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무한소에 무한소를 더해도 계속 무한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과를 무한히 자를 수 있다는 논리는 모순이다.”1)

1) 수학의 극한 개념에서는 무한소에 대한 연산이 가능하다.

 데모크리토스2) (Democritus, 기원전 460~ 380년 무렵)는 ‘세계는 원자와 텅 빈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원자설을 주장했다. 원자(atom)는 부정 접두어 ‘a’와 분할을 의미하는 ‘tomos’가 합쳐진 말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추종했던 절대 다수의 학자들은 원자설을 그릇된 이론이라고 생각했다. 원자와 원자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라는 말은 ‘없는 것이 있다.’라는 관념이므로 ‘세상은 질료(質料, matter)로 형상(形相, form)으로 이루어진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은 물체에 작용하는 힘은 접촉을 통해서만 전달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텅 빈 공간이 있다면 운동의 원리가 적용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은 레우키포스(Leucippus)이고, 레우키포스의 스승은 제논이라는 설도 있다.  

 결국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원소설에 밀려서 2천 년 이상 잠들어야 했다. 잠자고 있던 원자설을 19세기에 다시 깨운 사람이 존 돌턴이다.

 존 돌턴은 영국 컴벌랜드 코커마우스에서 서쪽으로 2마일 떨어진 이글스필드(Eaglesfield)에서 퀘이커3) 교도이자 직조공인 조셉(Joseph Dalton)과 데보라(Deborah)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돌턴은 퀘이커 교도인 존 플래처가 운영하는 문법학교(John Fletcher's Quaker grammar school)를 다녔고, 기상학자이자 악기 제작자인 로빈슨(Ellihu Robinson)의 집에서 심부름을 하며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3) 퀘이커(Quakers): 종교친우회(Religious Society of Friends)라고도 한다. 1650년대에 영국의 조지 폭스(George Fox)가 명상 운동으로 시작하여 창시한 기독교 교파이다. 종교와 교육에서 남녀는 평등하고, 사람은 자기 안에 신성(神性:신의 성품)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기르는 법을 배우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교리를 따른다. 퀘이커는 침묵으로 예배하며, 일반적으로 예배를 이끌어가는 별도의 성직자나 목사를 두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과 미국의 퀘이커 봉사 친우회는 194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함석헌 선생과 미국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도 퀘이커 교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돌턴의 전기에 의하면, 그는 문법학교에서 은퇴한 교사의 수학 수업을 맡아 12세의 어린 나이에 2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고, 14세에 축산 농가에 고용되어 일을 하다가 15세가 되었을 때 집에서 45마일(72km) 떨어진 켄달(Kendal)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그 학교는 그의 형 조나단(Jonathan)과 친척이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60명 정도의 소년과 소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돌턴은 몇 년 동안 조교 업무를 보면서 여가 시간에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수학 등을 공부했고, 나중에는 수업을 맡아 가르치는 교사로서 27세까지 근무했다.

 돌턴은 18세부터 과학· 예술 잡지 「레이디스 다이어리, Ladies' Diary」와 수학· 수수께끼 잡지 「젠틀맨스 다이어리, Gentleman's Diary」에서 출제하는 과학 · 수학 · 철학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투고했다.(1784~1795) 그가 제출한 답은 대부분 우수작으로 선정되었고 잡지사가 주는 상금도 받았다.

 돌턴은 컴벌랜드 지역의 산들을 오르내리면서 온도, 습도, 기압, 날씨 등의 대기 상태를 측정하고 일기처럼 기록했다.(그의 기상 일기는 21세부터 죽기 전날까지 57년 동안 꾸준히 기록되었다.)

 1793년 돌턴은 자신의 기상 관찰 자료를 토대로 ≪기상 관측과 에세이, Meteorological Observations and Essays≫를 출간하였고, 맨체스터에 있는 뉴 칼리지(New College)의 수학과 화학 담당 교사로 채용되었다.

 1794년에 맨체스터 문학철학협회(Lit & Phil; Manchester Literary and Philosophical Society)에 가입한 돌턴은 본격적으로 과학 활동을 시작했다. 협회지에 게재된 그의 첫 논문은 ≪색 비전에 관한 특별한 사실들, Extraordinary facts relating to the vision of colours, 1794≫로 색맹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과 형제가 모두 선천적으로 색맹이었기 때문에 색맹은 유전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 원인이 무엇인지는 몰랐고, 자신의 안구가 푸른색으로 가득 차 있어서 붉은 빛만 주로 흡수하므로 색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돌턴은 자신의 눈을 해부하여 이를 입증하라는 유언장을 남겼고, 그가 사망했을 때 주치의였던 조셉 랜섬이 안구를 적출하여 분석했다. 그러나 그의 수정체는 보통 사람들처럼 투명할 뿐이었다. 나머지 한 눈은 보존 처리되었다가 150년 후 현대의 과학자들이 DNA를 분석한 결과 적록색맹인 것으로 판명되었고, 1995년 사이언스지를 통해 알려졌다. 적록색맹을 영어로 돌터니즘(doltanism), 프랑스어로 달토니앙(daltonien)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의 이름으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1800년, 뉴 칼리지에서 강의하던 돌턴은 학교 재정이 어려워지자 퇴사했고, 맨체스터 문학철학협회의 간사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소수의 학생을 개인 지도하는 사설학원을 열어 평생 직업으로 삼았다. 1801년에는 학생들을 위한 영어 문법책 ≪영어 문법의 요소, Elements of English Grammar: or, a new System of Grammatical Instruction, for the use of Schools and Academies≫를 출판했다.

 이후 공기가 여러 기체의 혼합물이며, 기체 혼합물의 총 압력은 각 성분 기체의 부분 압력을 더한 것과 같다는 ‘분압의 법칙(돌턴의 법칙)’을 비롯하여 기상과 관련한 여러 논문들을 맨체스터 문학철학협회에 꾸준히 기고했다. 그는 비와 이슬의 양을 더한 값이 강물로 운반되는 물의 양과 증발량을 합한 것이라는 물의 순환 과정을 논문으로 발표했고, 공기가 팽창하면 온도가 내려가고 압축하면 온도가 올라간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논문을 썼다. 돌턴은 유체에 관련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물질은 수많은 원자들로 이루어진 집합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돌턴은 원자가 더 이상 분해될 수 없는 작은 입자이며, 화학 반응은 원자의 결합 방식이 바뀌는 것일 뿐 원자는 없어지거나 새롭게 생겨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의 원자설은 온도와 열, 탄성 유체인 공기의 성질 그리고 원자와 화학 결합에 대한 내용을 다룬 ≪화학의 새로운 체계, 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 1808≫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수소(H)의 원자량을 1로 정하고 다른 원소들의 상대적 무게를 계산하였다. 원자를 그림으로 표시할 때는 자신이 고안한 동그라미 형태의 기호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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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의 새로운 체계, A New System of Chemical Philosophy, 1808에 수록된 원자 기호 및 원자량

 돌턴은 원자와 화합물의 구성과 원자량을 파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조합 규칙을 만들어 적용했다.

1. AB 원자가 한 종류의 화합물만 만드는 경우, 그 물질은 2원자 화합물(binary)이다. A+B = AB(2원자)

2. AB 원자가 두 종류의 화합물을 만드는 경우, 그 물질은 각각 2원자 화합물(binary) 한 종류와 3원자 화합물(ternary) 한 종류로 가정해야 한다. AB(2원자), A+2B(3원자) 또는 2A+B(3원자)

3. AB 원자가 세 종류의 화합물을 만드는 경우, 그 물질은 2원자 화합물(binary) 하나와 3원자 화합물(ternary) 두 종류로 추정해야 한다. AB(2원자), A+2B(3원자), 2A+B(3원자)

4. AB 원자가 네 종류의 화합물을 만드는 경우, 그 물질은 2원자 화합물(binary) 한 종류와 3원자 화합물(ternary) 두 종류, 4원자 화합물(quaternary) 한 종류일 것으로 보아야 한다. AB(2원자), A+2B(3원자), 2A+B(3원자), A+3B(4원자) 또는 3A+B(4원자)

 돌턴은 자신이 만든 규칙이 화합물의 조성을 밝히는 법칙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규칙에는 오류가 있었다. AB를 더해 한 종류의 화합물만 만드는 경우에 이를 단순히 AB라고 단정한 것부터가 잘못된 가정이었다. (HO)처럼 2A+B와 같은 조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규칙을 확신했던 돌턴은 3원자 화합물인 물(HO)HO, 4원자 화합물인 암모니아(NH)HN으로 판단했다. 이처럼 3원자나 4원자 화합물을 2원자 화합물로 판단하면 원자량 값이 다르게 나올 수밖에 없다. 때문에 원소들의 원자량이 실제와는 다르게 계산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그렇지만 돌턴은 위의 규칙들을 적용하여 배수 비례의 법칙을 이끌어냈다. 배수 비례 법칙이란, 한 물질이 다른 물질과 화합물을 만들 때 1, 2, 3, 4간단한 정수비로만 결합한다는 법칙이다.

  배수 비례 법칙의 예로는 일산화 이질소(NO), 일산화 질소(NO), 이산화 질소(NO)를 들 수 있다. 앞의 세 가지 물질이 각각 질소(N) 14그램과 반응하여 만들어지는 경우에 결합하는 산소의 질량은 차례대로 8그램, 16그램, 32그램(1 : 2 : 4)으로 간단한 정수비가 된다. 이는 화학 반응이 불연속적인 일정한 단위로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원자의 존재를 지지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돌턴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물질 연구에 이바지했다. 그의 기록을 조사한 한 전문가는 1817년부터 1844년까지 맨체스터 문학철학협회에 기고한 돌턴의 논문이 117편이라고 보고했는데, 논문 원본의 상당수가 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인해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816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Académie des sciences)의 회원이 되었고, 1834년에는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외국인 명예 회원으로 지명되기도 했다.

  1822년부터 죽기 전까지 26년 동안 돌턴은 목사이자 식물학자인 윌리엄 존스(Rev William Johns, 1771~1844) 부부가 사는 집에서 거주했다. 그는 70대 이후 몇 번의 뇌졸중을 겪었고, 1844년 침대에서 떨어져 숨이 끊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장례는 맨체스터 시청(Manchester Town Hall)에서 시민장으로 치러졌으며 수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장례 후 그는 맨체스터 아드윅 묘지(Ardwick Cemetery)에 안장되었지만, 오늘날 그곳은 도시화로 인해 평평한 운동장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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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돌턴 조각상] 조각가: Francis Leggatt Chantrey, 출처: 위키미디어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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