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조현영의 보통 사람을 위한 클래식
남편을 믿으세요. 그리고 믿음으로 하나가 되세요!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 중 ‘혼례의 합창’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8.08
사진=셔터스톡
 
피아니스트라고 모든 음악을 좋아하진 않습니다. 자신의 성향이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요. 저는 특별히 싫어하는 음악이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듣기 힘든 곡이 몇 있습니다. 바로 바그너예요. 누군가는 웅장한 서사와 엄청난 음량 스케일, 대대적인 악기 등장 때문에 상당히 좋아하기도 하지만 저는 여전히 조용하고 들을 수 있을 만큼의 사운드를 즐깁니다. 

그런데 그런 바그너의 곡 중에서 피아니스트가 사랑하고 자주 연주하는 곡이 있습니다. 바로 결혼식장에서 신부입장 때에 쓰는 ‘혼례의 합창’입니다. 파란색 명곡집을 치기 시작한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 했던 결혼식장 아르바이트까지 연주한 횟수를 계산해보면 상당합니다.(은근 우리나라 결혼식장에서 클래식이 많이 흐릅니다.) 사실 이 곡만 듣고 보면 바그너가 작곡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율이 아름답습니다. 결혼식장에서 판박이처럼 들리는 많은 곡들이 꽤 달라졌음에도 이 곡은 지금까지 신부 입장 음악으로 절대불변, 확고부동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대체 어떤 곡이기에 이럴까요? 음악이야기를 한번 해보겠습니다.

이 곡을 작곡한 사람은 독일 출신의 리하르트 바그너입니다. 1813년에 태어나 1883년까지 정확히 70년을 살았습니다. 엄청 장수했지요. 제가 공부했던 라이프치히가 그의 고향이라 저에게 바그너는 동네주민 같기도 합니다. 그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철학과 음악을 전공했고 작곡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유년 시절을 보낸 라이프치히와 옆 동네 드레스덴은 바그너의 흔적이 꽤 많아요. 라이프치히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많이 있는데, 독일 여행을 하신다면 두 도시를 꼭 둘러보시길 권합니다.

바그너는 어릴 때부터 시와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연극에도 남다른 애정이 있었습니다. 직접 시를 쓰는 일도 많았어요. 시를 쓰는 작곡가! 멋있지요? 그는 아홉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바그너 한 살 때 돌아가십니다. 너무 어렸기에 아버지 얼굴을 거의 기억 못하죠. 엄마 요안나는 화가이자 배우인 루트비히와 재혼을 하고, 드레스덴으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다행히도 바그너는 새아버지에게 예술적인 영향을 많이 받으며 사랑으로 키워지고, 드레스덴에서 유명해진 루트비히의 집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린 바그너는 그런 예술가들을 통해서 자신의 안목을 넓혔어요. 역시 사람은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나 봐요.

이제 그의 결혼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격정적인 성격의 바그너는 불같은 사랑을 꿈꾸고 23살에 배우인 민나 플라너와 결혼했지만 두 사람의 갈등은 처음부터 끊이지 않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가 심했던 거지요. 죽기 전 민나는 바그너와의 결혼을 30년 전쟁에 비유했다고 하니 대단합니다. 30년 전쟁씩이나! 그야말로 사랑과 전쟁입니다. 성인이 된 바그너는 드레스덴에서 폭동 주도자로 지목되어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고 스위스 취리히로 떠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의 여성 편력은 멈추지 않아요. 자신을 후원했던 뵈젠동크의 젊고 아름다운 아내 마틸다와 염문을 뿌려 세상이 발칵 뒤집히고 결국 취리히를 떠나게 됩니다. 그 후엔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리엔치’ 등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자신의 삶도 어려워집니다. 남의 눈에서 피눈물나게 하니 자신도 좀 울어야지요.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었는지 자신의 지지가인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뮌헨으로 초대를 하고 그곳에서 바그너는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제 바그너의 마지막 여인이 등장합니다. 바로 코지마예요. 자신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친구였던 작곡가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가깝게 되지만 이미 그녀는 지휘자 한스 폰 뷜로의 아내였습니다. 그러나 거침없는 남자 바그너는 1870년 코지마와 결혼을 하게 되고 57살의 바그너는 그의 대작인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을 완성하게 됩니다.

뮌헨에서 자리를 잡은 바그너는 자신의 작품을 공연하기에 딱 알맞은 공연장을 세우리라 마음먹고 후원자를 설득해서 4년 뒤 자신의 극장을 설립합니다. 그리고 과도한 업무로 힘들었던 바그너는 요양차 이탈리아로 떠났다가 오페라 ‘파르지팔’을 완성하고 1883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런 바그너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이야기하는 건 그만큼 바그너의 음악세계가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바그너는 독일 중세 기사문학에 관심이 많았기에, 원작에 자신의 환상을 곁들여 극본을 많이 썼습니다. ‘로엔그린’은 바로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오페라의 제목은 대부분 주인공의 이름인 경우가 많은데, 로엔그린 역시 주인공이자 백조의 기사입니다. 왕이 되고 싶어 남동생을 죽였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엘자 공주는 자신을 구해줄 성배의 기사를 찾습니다. 꿈속에서 그 기사를 만났는데 실제로 로엔그린이 성배를 들고 백조를 타고 엘자 공주를 구하러 옵니다. 결백을 입증할 결투에서 이기면 엘자 공주는 원죄를 용서 받고 기사와 결혼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자신을 구해준 기사의 이름도 출생도 묻지 말라는 규칙을 지켜야했지요. 

하지만 인간의 궁금증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이 마음을 어찌하나요? 에덴동산에서 절대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와 같습니다. 약속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고야 마는 엘자. 그런 엘자는 3막의 결혼식 장면에 흐르는 믿음으로 하나가 되라는 결혼식 곡을 들었음에도 로엔그린을 믿지 못합니다. 결국 이 오페라는 엘자의 죽음이란 비극으로 끝이 나요.

역시 살아보니 결혼은 사랑으로 시작하지만 믿음이 있어야 이어집니다. 오늘도 남편을 무조건 믿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바그너를 흥얼거려 봅니다. 그나저나 정작 여성 편력이 심했던 바그너 자신은 배우자에게 이런 믿음이 있었을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는데요!
 

유튜브 검색어 : 바그너 ‘혼례의 합창’ 
조현영 피아니스트, 아트앤소울 대표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