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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의 금융! 바로 알고 활용하기
금융의 눈으로 바라본 '베니스의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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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10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은 책과 연극 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고, 등장하는 인물과 재미있는 판결 내용은 일상생활에서 자주 회자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등장하는 인물과 내용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특히 금융과 경제적 측면에서 다시 풀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이 이야기의 중심에 놓겠다.

작품의 내용은 이렇다.

안토니오는 친구인 바사니오가 돈이 없어 명문가 여인 포샤에게 청혼을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 친구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었지만, 본인의 처지로는 역부족이었기에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기로 결심한다.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는 조건은 ‘기한 안에 돈을 못 갚으면 안토니오는 신체 일부분의 살을 내어 주겠다.’였고 이를 내용으로 한 차용증서를 작성하고 돈을 빌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안토니오는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하고 재판을 받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안토니오의 빌린 돈으로 바사니오는 포샤와 결혼에 성공하였고, 이 소식을 들은  포샤는 재판장으로 변장하고 나타나서 “살은 베어 가되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로 인하여 안토니오는 위기를 벗어나고,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재판에 패하였으며 전 재산을 잃게 된다는 내용이다.
 
학창 시절, 솔로몬의 재판과도 같아 보이는 이 명쾌하고도 지혜로운 듯한 판결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러나  경제와 금융이라는 면으로 이 작품을 바라보게 되면, 단지 그렇게만 볼 문제는 아니며,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고의 수준이 비슷한 성인들이 서로의 동의하에 작성한 금융 계약을 단지 높은 이자를 받는다고 하여 악인으로 분류하고, 사회에서 없어져야 하는 고리대금업자로 몰아붙이기엔 문제가 있다. 단, 인간의 신체 일부를 내놓는 계약은 논외로 하자.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고리대금업자가 유대인으로 특정되어 있다. 일종의 왕따 문화와 일맥상통한다. 시대적 상황이 유대인은 땅을 가지고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하여 유대인들은 대부업과 같은 기피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자. 기피직업은 누구의 몫인가? 특정 인종이나 국가의 사람을 비하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어쩌면 그들이 더 나은 평가를 받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이다. 비하하기보다는 감사해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문화로 성숙해져야 한다.

또 하나, 자신의 능력 밖임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안토니오의 모습은 과연 바람직한가?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20여 년 전만 해도 보증으로 패가망신한 가정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지금도 제도상 보증이 제한된 탓에 보증 대신 가진 집이나 논, 밭을 타인을 위한 담보 제공 후 재산을 잃게 되어, 가족의 생계를 위협하는 사례들이 얼마나 많은가? 작품 속의 안토니오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족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명문가의 여인과 결혼을 하는 것은 현명할까? 결혼 후 빚을 갚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바사니오와 같은 상황의 현대인이라면 과연 결혼 후 배우자의 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인가? 배우자는 동의를 할 수 있을 것 인가?

또한 “살은 베어 가되 피는 단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로 돈을 빌린 자는 자유로워지고, 돈을 빌려준 자는 전 재산을 잃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계약의 본질을 지켜야 하는 책임감은 온데간데없고,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계급이라 하여 지혜라는 말을 빌어 이렇게 파산까지 내몰아도 된단 말인가.

가끔 정책적으로 빚을 탕감해준다는 말들이 나오곤 한다. 이와 견주어 생각해 보자. 만약 빚진 자는 자유로워지고, 가진 자는 그 탕감해주는 돈을 메꾸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대가를 치르는 것이 정당해진다면 사회 정의는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어느 한 곳에서만 바라보는 것은 참 위험하다. 입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반대편의 모습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는 시끄러워지고, 나이 든 자는 꼰대로, 젊은이는 이해 못할 세대로 평행선을 달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생각을 들추어낸다.
혹 ‘베니스의 상인’ 이야기가 나오면 샤일록의 비극도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박은영 NH농협은행 서울산금융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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