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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160년 된 사랑이야기 <라 트라비아타>下 애절한 사랑은 모두 별에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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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8.06
오테사가 호텔

오페라를 보고 다섯 명이 근처 오테사가 호텔(The Otesaga Resort Hotel)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곳에도 10여 년 만에 처음 발을 디뎠다. 오테사가 호텔은 1909년에 지은 매우 유서 깊은 호텔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오치고 호수가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 하는 일요일 야외 브런치 뷔페가 유명하다.

예전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글리머글래스에 가던 시절에는 토요일 저녁 공연 보고, 1박 한 뒤 일요일에 오테사가 호텔에서 다 같이 브런치를 먹었다. 그리고 일요일 낮 공연 보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 그 전에 쿠퍼스타운에 지금은 없어진 빵이 아주 맛있던 이탈리아 음식점에 다시 모여 이른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갔다. 그 시절에는 1년에 한번 글리머글래스 가는 것이 동네 피크닉이었다. 

아무도 죽지 않고 살아 있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때로는 즐거운 추억이 사람을 참 쓸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라 트라비아타》 토요일 낮 공연 보고  5시에 식당에 들어가 와인 마시며 이야기하다 주문해서 저녁을 먹었다. 밖으로 나오니 8시 40분이었다. 아직도 환했다. 미국 대부분의 지역에는 서머타임제가 있다. 7월 말이면 해가 꽤 짧아지지만, 그래도 9시가 지나야 어두워진다. 주차장까지 따라 나가 자동차 하나로 함께 온 짐, 세스, 캐시와 스티브를 보내고 나만 혼자 남았다. 그 4명은 시라큐스에 살지 않고 알바니에 산다.

 

즐거운, 그래서 쓸쓸한 추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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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치고 호수의 아침

나는 저녁 먹으며 술 마시고 혼자 운전하고 돌아가지 않으려고 오테사가 호텔에 방을 잡아 놓았다. 덕분에 마음 놓고 술을 마셨다. 나는 최대 주량 와인 두 잔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두 잔을 다른 사람 나발 부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게 마신다. 와인 두 잔 아니 정확히 1과 3/4잔 마시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내 방으로 올라가 침대에 뻗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오치고 호수를 끼고 있는 글리머글래스 주립공원에 들어가 호숫가를 한 30분 달렸다. 원래 호숫가 지역은 여름에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조금 낮다. 게다가 오치고 호수는 뉴욕주의 수많은 호수 중에서도 물이 맑기로 으뜸이다. 주변 공기가 매우 상쾌했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마을에 혼자 뚝 떨어져 맑디맑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것이 기분 좋았다. 전날 저녁에 먹은 와인과 기름진 음식이 좀 소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저녁 약속은 될수록 잡지 않는다. 늘 점심을 크게 먹고 저녁에는 지방이 비교적 낮은 에멘탈 치즈 등을 한두 조각 먹거나 삶은 계란을 한 개 먹고 잔다. 가끔 저녁에 정찬을 하면 다음날 아침까지 속이 더부룩하다. 호텔에 돌아와 샤워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오테사가 호텔에서 걸어서 5분만 가면 있는 야구 명예의 전당은 이번에도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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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머스 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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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모어 미술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집을 개조해 만든 페니모어 미술관(Fenimore Art Museum)에 갔다. 페니모어 미술관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농장이 있던 땅에 옛날 농촌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파머스 뮤지움(Farmers’ Museum)과 마주하고 있다. 미국의 역사를 보여 주는 18세기와 19세기 풍경화, 인물화 컬렉션 그리고 미국 원주민들의 유물 컬렉션이 유명하다.

이번에 갔을 때는 유명 가수들의 사진을 많이 찍었던 허브 릿츠(Herb Ritts)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마이클 잭슨, 마돈나, 저스틴 팀버레이크, 디지 갈레스피 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가수들의 사진을 찍은 인물이다. 우리세대라면 청소년 시절 한 장 쯤 갖고 있었을 올리비아 뉴튼 존의 Physical》이란 앨범의 재킷도 이 사람의 작품이다. 페니모어 미술관 뒤뜰에 야외극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하는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Taming of the Shrew)》 공연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요즘 같은 미투(Me Too) 시대에 새롭게 해석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라는 선전 문구에 궁금해지기도 했으나, 저녁 공연이라 발길을 돌렸다.  

7. 페니모어 미술관4.jpg 6. 페니모어미술관5.jpg

 

버스랑 남자는 기다리면 또 와 

쿠퍼스타운을 떠나기 전 앨리스 부시 오페라 극장으로 한 번 더 갔다. 10여년 만에 돌아왔는데 올해는 이게 끝이다. 내년에는 좀 더 자주 와야지. 극장 길 건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리허설 중인지 극장 안에서 소프라노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현대인은 참 오만한 존재다. 우리의 과학 문명에 취해 조상들의 위대함을 곧잘 얕잡아 본다. 400년 전 마이크를 대지 않고도 목소리가 길 건너 야외 주차장까지 들리는 발성법을 만들어 내고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들이라면 현대의 우리보다 못할 것이 없는 분들이다. 주차장에 한참 서서 간간히 들리는 노래를 들었다.

앨리스 부시 극장을 나와 오후 1시가 조금 지나 집으로 향했다. 화창하던 날씨가 흐려지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바흐 시디를 틀었다. 나는 비가 오는 날은 운전을 하며 꼭 바흐의 <영국 모음곡>을 듣는다. 바흐의 음악이 비 오는 바깥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이 된다. 창문에 또그르르 흐르는 빗물은 그대로 카랑카랑한 피아노 소리가 된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내내  비올레타와 알프레도, 도민준과 천송이 생각이 났다. 오페라 볼 때부터 두 이야기가 오버랩 되더니 전날 밤새 두 사랑 이야기가 뒤죽박죽된 꿈을 꿨다. 집으로 가는 길까지 그들이 나를 따라 나섰다. “참, 인생 쉽지 않네.” 나도 모르게 한 마디 입 밖으로 불쑥 튀어 나왔다. 둘이 만나 잘 사는 사람들도 많던데 간절한 이들의 사랑은 왜 그리 험난하고 애절해야만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다. 그냥 애절한 사랑은 모두 별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도민준뿐 아니라 비올레타도 사실은 별에서 왔기에 그들은 떠나야 하고 떠나야 해서 더욱 간절한 것이라고 그렇게 치부하기로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주 저 편에서 영겁(永劫)의 세월 동안 운명이란 길고긴 다리를 건너 와 나의 문을 두드리는 사랑이라면, 그 사랑이 꿈처럼 흘러갈 것을 알아도 거부하지 못 할 것이다. 그렇게 찾아와서 심장을 복구 불능으로 찢어놓고 별로 돌아간 사랑은 세상에 다시없을 사랑이니까.

내가 아는 여자분 중에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지 늘 데이트는 하면서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 그녀가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뒤 며칠 앓아누웠다 털고 일어날 때면 하는 말이 있다.

“Oh well, bus and men come and go(버스랑 남자는 기다리면 또 와).”

‘남자는, 여자는, 버스는 기다리면 또 오겠지. 하지만 세상에 다시없을 나만을 위한 사랑은 날이면 날마다 찾아오는 게 아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더더욱 아니라구!’ 이번에는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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