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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보다 먼저 '중력의 법칙' 알아낸 과학자는 누구?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년 7월 18일 ~ 1703년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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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8
그림 신로아

  로버트 훅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다방면에 박식한 과학자요 발명가였다. 현미경 제작, 세포 발견, 진공 실험, 망원경 제작, 기상학, 광학, 운동 역학, 탄성의 법칙, 화석학, 인지심리학1), 건축학 등등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영국 왕립학회의 결성과 발전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 않았으며, 심지어 왕립학회에 걸려 있었던 초상화마저 사라졌다.

1)인지심리학(認知心理學, cognitive psychology): 뇌의 정보처리 과정에 중점을 둔 심리학. 1682년 왕립학회 강연에서 로버트 훅은 기억 부호화, 기억 용량, 검색, 망각 등의 개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남해안의 와이트 섬(Isle of Wight)에서 태어난 로버트 훅은 어린 시절 너무나 병약해서 일곱 살 무렵까지 분유와 같은 유동식을 주식으로 먹으면서 큰 것으로 전해진다. 지역 교회의 운영자였던 그의 아버지 존(John Hooke)은 아들을 교회에서 손수 가르쳤다. 훅은 허약한 소년이었지만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모형 만들기(나무를 깎아 시계 부속품을 만들거나 하는)에도 재능이 있었다. 십대 초반에는 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 과외 수업을 받았다. 그렇지만 13살이던 해에 아버지가 돌연 자살했기 때문에 훅은 도제2)수업을 받기 위해 화가 피터 레리(Sir Peter Lely, 1618~1680)와 함께 런던으로 보내졌다.

 2)도제(徒弟, Apprenticeship): 장인(匠人)과 상인(商人)의 직업교육제도. 12세기부터 시작된 영국의 도제는 14세~21세의 청년기에 5~9년 동안 수업을 받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기술자, 미용사, 요리사, 배관공, 목수 등의 직업군에서 도제 수업을 마치면 대학 석사 수준의 인증을 부여하였다. 오늘날 도제는 영국을 비롯하여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체코, 터키,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파키스탄, 리비아 등 여러 나라에서 법제화되어 운용되고 있다.

 그러나 훅은 도제 수업을 포기하고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16세에 옥스퍼드 대학(University of Oxford)에 합격했다. 그는 가난한 고학생이었으므로 대학의 하인 계급으로 허드렛일을 하면서 천문학, 화학 등의 과목을 수강했다. 그렇지만 기계를 제작하고 장비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기 때문에 훅은 점차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명해졌고 로버트 보일(Robert Boyle, 1627~1691)의 눈에 띄어 조수로 발탁되었다.

 로버트 보일은 거대한 영지를 보유하고 있던 코크 백작(Earl of Cork, Richard Boyle)의  일곱 번째 아들로 ‘보이지 않는 대학(Invisible College)’이라는 이름의 과학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그는 과학 연구에 뜻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실험과 토론회를 자주 열었다. 훅은 그 모임에서 실험 기구를 제작하는 역할을 맡았다. 1660년 보일은 새로 즉위한 국왕 찰스 2세(Charles II)의 협조를 얻어 ‘자연 지식의 향상을 위한 런던 왕립학회3)’를 결성했다. 훅은 왕립학회의 실험 관리자로 지명되었다.

 3)런던 왕립학회(The Royal Society of London for the Improvement of Natural Knowledge): 1660년 로버트 보일의 주도로 창립한 지식인들의 모임으로 오늘날까지 영국 과학아카데미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근현대 과학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그 무렵 이탈리아의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가 시험관에 수은을 채워 진공을 만드는 실험에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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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리첼리의 수은 기둥 실험]
왼쪽 그림 출처: wikimedia commons 

 수은(Mercury, 화학 기호 Hg)은 쇳물보다 두 배 정도 무겁고, 물보다는 13.6배나 무겁다. 토리첼리는 시험관에 수은을 가득 담고 수조에 거꾸로 세우면 일부의 수은이 흘러나오다가 기둥의 높이가 76센티미터 되는 지점에 이르렀을 때 멈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시험관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으므로 내부에 생긴 빈 공간은 진공 상태라는 해석이 가능했다.

 토리첼리의 진공 실험 소식을 들은 보일은 훅에게 진공 펌프를 만들 수 있는지 문의했고, 훅은 실험하기에 편리하고 독특한 진공 펌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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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yle with Robert Hooke 공기 펌프와 부품 해부도]
그림 출처: J Appl Physiol • VOL 98 • JANUARY 2005 • www.jap.org, Historical Perspective

 보일이 쓴 책4)에 의하면, 훅이 만든 진공 펌프는 대기압의 3% 수준으로 기압을 낮출 수 있는 장비였다. 보일과 훅은 진공 펌프를 이용하여 촛불과 화약을 이용한 연소 실험, 곤충이나 새를 넣고 상태를 관찰하는 실험, 시계를 넣어 똑딱 소리를 측정하는 실험, 종을 넣어 울림을 측정하는 실험, 액체의 기포나 연기를 관찰하는 실험 등을 수행했다. 그 결과 진공 속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고, 촛불이 꺼지며, 벌레는 버둥거리다가 죽고, 참새나 종달새는 기절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보일은 훅과의 진공 펌프 실험을 토대로 1662년 ‘온도가 같으면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라는 보일의 법칙을 발표했다.

 4)New Experimets Physico-Mechanical: Touching the Spring of the Air and their Effects

 로버트 훅은 보일을 비롯한 여러 학자의 조수로 일한 경력이 인정되어 1663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고, 1664년부터 그레샴(Gresham) 대학에서 천문학 강좌를 진행하였다.

 훅은 섬세한 솜씨로 현미경을 제작했다. 현미경의 경통을 비스듬하게 기울이고 접안렌즈 위에 깔때기 모양의 덮개를 부착하여 관찰의 편리성을 높였고, 램프의 불빛을 구형 물통에 비추도록 한 후 렌즈로 빛을 집중시켜 밝기가 일정한 상태로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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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의 현미경]
그림 출처: Robert Hooke ≪Micrograpia(1665)≫Wellcome Collection. (그림 일부 수정)

 훅은 현미경으로 머리카락, 피부를 비롯하여 바늘, 면도칼, 섬유, 유리, 다이아몬드, 얼음, 눈의 결정, 오줌에 포함된 결석, 석탄 등의 무생물과, 푸른곰팡이, 쐐기풀, 해초, 제비꽃, 양귀비, 티미(Tyme), 쇠비름 등의 식물과, 파리, 누에알, 각다귀, 나방, 거미, 개미, 책벌레, 벼룩, 이, 진드기 따위의 곤충들을 관찰했다. 달팽이 이빨, 벌침, 공작의 깃털, 식초 속의 작은 뱀장어5)와 같은 특이한 대상도 관찰했다.

 5)로버트 훅은 여러 가지 종류의 자연 식초에서 뱀장어처럼 보이는 아주 작은 생물을 발견하고 그 특성을 마이크로그라피아의 관찰57에 설명했다. 그는 그 작은 생물을 거름종이로 걸러서 꺼냈을 때 마치 뱀처럼 둥글게 말리는 형상을 보고 어쩌면 거머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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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그라피아 관찰57. fig3. 뱀장어]
그림 출처 : Robert Hooke ≪Micrograpia(1665)≫ Wellcome Collection

 포도주 병마개로 쓰이는 코르크(Cork)를 얇게 잘라 관찰한 훅은 벌집처럼 보이는 조직의 모양에 ‘셀(Cell, 세포)’이라는 표현을 붙였다. 셀(Cella; 라틴어)은 본래 수도승들이 거주하는 다닥다닥 붙은 작은 방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훅이 명명한 ‘셀(Cell)’은 19세기에 중반 세포이론6)이 정립되면서 ‘생명체의 몸을 이루는 기본 단위’를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6)세포이론(cell theory): 세포가 생명체의 기본 단위이며, 생물의 몸은 세포로 이루어진다는 이론. 독일의 식물학자 슐라이덴(Matthias Jakob Schleiden, 1804~1881)의 식물 세포설(1838), 생리학자 슈반(Theodor Schwann, 1810~1882)의 동물 세포설(1939)에서 학문으로 발전했다. 사람의 몸은 약 6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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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크 셀 구조]
그림 출처 : Robert Hooke ≪Micrograpia(1665)≫Wellcome Collection

 훅은 현미경으로 관찰한  대상(2개는 망원경 관찰)을 섬세하게 스케치하여 ≪마이크로그라피아, Micrograpia(1665)≫에 싣고 자세한 설명과 이론을 전개했다. 빛과 색채, 온도와 열, 불꽃, 결정 구조, 모세관 현상, 곰팡이 부패 작용, 식물의 독성, 공기의 탄성도, 천문 관찰에 이르기까지 훅의 지식 전개는 방대했고 다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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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송이(fig. 3), 얇은 얼음(fig. 4), 대리석의 얼음(fig. 5), 오줌의 얼음 (fig. i), 약간 두꺼운 얼음(fig. 6)
그림 출처 : Robert Hooke ≪Micrograpia(1665)≫ Wellcome Collection

 1665년, 그레샴 대학은 훅을 정교수로 임명하고 거주할 집도 마련해 주었다.(훅은 그레샴 대학이 제공한 집에서 여생을 보냈다) 같은 해에 훅은 왕립학회의 실험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매년 연금을 받을 수도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공기의 성질, 연소, 비중, 낙하하는 물체의 성질, 기압과 날씨와의 관계를 연구하였고, 전보 방식을 개선하고 수중 작업용 도구인 잠수종을 개량하는 등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망원경 관측을 통해 목성의 대적점을 발견한 것도 같은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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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성과 대적점(2014년 허블 망원경 촬영 사진)]
그림 출처: 허블망원경(hubblesite.org)

 1666년 9월 2일 새벽에 런던 대화재가 발생했다. 빵 공장에서 발생한 불이 런던 전역에 번졌고 5일 동안 87채의 교회와 1만 3천 채의 집이 불탄 것으로 집계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로버트 훅은 런던 재건의 설계 및 감독관으로 임명되어 그리니치 천문대를 비롯하여 대학과 병원, 교회와 공연장, 추모비 등을 건설하는 일에 참여했다.

 1672년에 빛의 회절에 관한 논문을 출판하였고, 1674년에는 최초의 그레고리안식 반사망원경을 제작하였다. 반사망원경은 오목거울을 이용해 빛을 모으고 이를 확대하여 보는 방식의 망원경으로 빛의 경로를 바꾸는 부거울(보조 거울)의 형태에 따라 뉴턴식, 그레고리안식, 카세그레인식으로 분류된다. 뉴턴식은 부거울이 평면이고, 그레고리안식은 타원형이며, 카세그레인식은 쌍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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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4년에는 논문 ≪지구의 운동을 입증하려는 시도, An Attempt to Prove the Motion of the Earth by Observations≫를 발표했다. 훅은 논문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을 강력하게 옹호하면서 지구의 공전 증거가 되는 ‘별의 연주 시차(아리스타르코스 편 참조)’를 측정하지 못한 것은 천문학자들의 실수나 관측 기기의 결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태양이 환하게 빛나고 있는 한낮에 별을 관찰하는 놀라운 경험을 했는데, 별의 크기는 밤에 관찰한 것보다 3분의 2 수준으로 작게 보였으나 하얀 점으로 훨씬 또렷하게 보였다7)면서 그 관찰 방법을 소개했다. 논문의 결론 부분에는 ‘물체는 그들의 중심을 향해 끌어당기는 힘이 존재한다’라는 내용의 가정을 짤막하게 언급했다. 

7)캄캄한 밤에는 우리 눈이 약한 빛도 감지할 수 있기 때문에 별빛이 일렁거리며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별의 본 모습은 구형(●)이지만, 별 모양(★)에 가까운 느낌이 든다. 낮에 별이 보이는 경우에는 별 주변의 흐린 산란광을 우리 눈이 감지하지 못하므로 별이 작은 점(●)처럼 보인다.

 1678년에는 ‘훅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훅의 법칙은 용수철처럼 탄성이 있는 물체가 외부 힘의 작용에 의해 늘어나거나 줄어들었을 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려는 복원력(F)의 크기와 변형(x)의 관계를 나타내는 물리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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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77년 로버트 훅은 혜성을 관측한 논문 ≪코메타, Cometa≫를 발표하여 천체의 운동이 역학적 문제임을 밝혔고, 천체의 운동이 역제곱 법칙8)에 따른다는 사실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8)역제곱 법칙(逆제곱, inverse square law): 어떤 힘이나 세기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법칙을 말한다. 중력, 전기력, 빛의 세기 등은 역제곱 법칙에 따라 세기가 변한다.

 1686년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의 역작 ≪프린키피아≫가 출판되고 중력 역제곱의 법칙에 관한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에 로버트 훅은 자신이 먼저 역제곱 법칙을 알아냈는데 뉴턴이 이를 가로채어 발표한 것이라며 노여워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부질없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물리학의 바이블로 평가될 만한 놀라운 수준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18세기 프랑스의 수학자 클레로(Alexis Clairaut, 1713~1765)는 ‘힐끗 본 것과 증명한 것의 차이’라고 논평했다.

 훅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지만, 조카인 그레이스를 사랑하여 부부로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슬하에 자식은 없었다. 1687년 그레이스가 사망한 후에 그는 급격히 쇠약해졌다고 한다. 급기야 1702년에는 시력을 잃고 다리를 절게 되었으며 유언장도 없이 1703년에 삶을 마감했다. 그의 시신은 교회(St Helen's Church, Bishopsgate) 묘지에 안치되었다.

 훅이 죽은 후 영국 왕립학회의 회장이 된 아이작 뉴턴은 학회 건물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훅의 논문과 원고를 모조리 불태우고 걸려 있던 초상화9)마저 없애버린 것으로 과학사는 전한다. 두 사람은 젊은 학자 시절에 편지를 교환하면서 과학적 주제를 논의했었지만 서로의 주장이 엇갈릴 때가 많았고, 빛 이론에 대한 의견 대립과 중력 법칙에 대한 우선권 논쟁 등으로 서로를 무척 미워했다. 

 9)훅의 초상화는 17세기 증언 기록을 토대로 한 상상도만 있다.

 로버트 훅이 세상을 떠난 2년 후, 생전의 강의와 논문 내용을 토대로 엮은 ≪지질학 역사; Lectures and Discourses of Earthquakes and Subterraneous Eruptions(History of geology)≫가 출판되었다. 

 그의 묘지는 19세기에 런던으로 이장한 후 현재는 그 위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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