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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김정현의 CEO 백수일기
니콜라 테슬라 vs 토머스 에디슨 인류의 번영을 바라보는 두 천재 과학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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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8
니콜라 테슬라의 젊은 시절.

 ‘행복한백수들’이란 사명 때문에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회사 이름이 재미있네요. 행복한 백수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인간의 절대 가치 ‘행복’. 행복은 누구나 추구할 수 있고 누구나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일에 얽메이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을 누리는 삶. 이것이 '행복한 백수'의 목표다. 

행복을 누리는 것은 인간의 특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수에게 행복은 특권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 행복을 누리는 것은 당연하지만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백수에게 행복은 사치다. 뭐든 열심히 경쟁하고 성과 내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정서에는 더 그렇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입는 물질 세계에 살고 있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마시지 않으면 목이 마르다. 갓난 아기도 아는 세상의 이치다.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입을 것을 얻기 위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혹독한 사회의 법칙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천재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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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

 

세르비아계 오스트리아인 니콜라 테슬라(1856~1943). 그는 현대 인류의 소모적 생산 방식과 삶에 의구심을 품었다. 석탄이나 석유를 태우지 않고도 무한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루에 4시간만 일하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필요한 제안이었다.

니콜라 테슬라는 현대인류의 발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전설적인 천재다. 테슬라는 교류(AC), 형광등, 전자 현미경, 레이더, 와이파이, 엑스레이(x-ray), 라디오, 전자광선 무기, 에테르 연료 자동차 등 과거부터 현재까지 중요하게 여겨지는 기술개발에 거의 다 관여했다. 아직도 상용화 되지 않아 현대 과학자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테슬라의 설계도만 수십 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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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개발한 라디오 초기모델

  

테슬라는 “돈은 중요하지 않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나의 돈은 모두 발명품 개발에 들어갔다” 라는 말을 남겼을 만큼 물질적 보상보다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결혼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며 연구에 매진했다. 

그는 “행성과 행성 간의 통신기술이 중요하다”며 지구의 자기장을 이용한 전기 에너지를 증명하고자 했다. 테슬라에 따르면 지구는 표면이 한 극이 되고 또 다른 한 극이 되는 전리층으로 이뤄져 있다. 전리층은 지상 40~400km 사이에 형성된 기류층인데 상호 작용하는 거대한 전기적 공명체다. 이 공명체의 전기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기계를 만든다면 무한한 전기 에너지를 공급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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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코일

 

 

테슬라의 주장처럼  전기를 하늘에서 뽑아 쓸 수 있다면 그동안 인류는 왜 그 방법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에너지를 돈주고 사는 게 당연한 현대사회의 이면에는 에너지 개발의 역사가 숨어있다. 에너지 개발의 역사는 유럽의 산업 혁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산업화 이전의 시대, 목화솜 수출이 주요 수입원이었던 영국은 큰 수익을 내지 못해 유럽의 변방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영국 의회는 국내생산 마진율을 높이기 위해 원단 수출을 금지했고 대신 면직물을 가공해 수출하게끔 법령을 바꿨다. 영국의 기술자들은 2차 가공품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증기 터빈을 개발했다. 1705년 토머스 뉴커먼이 수증기를 열기관으로 바꾸는 증기기관을 발명했고 1769년에 제임스 와트가 개량했다. 점점 더 많은 에너지 자원을 필요로 하는 산업혁명의 시대로 들어선 것이다.  

 "에너지를 거머쥔 자가 곧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 유럽의 자본가들은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거대자본을 끌어들였다. 직류와 교류 방식을 두고 벌인 토마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전류전쟁(Current War)에서도 최종 승자는 두 발명가가 아닌 초기 투자자인 J.P. 모건(John Pierpont Morgan)이었다. J.P. 모건은 에디슨의 회사를 인수합병해 에디슨을 쫓아내고 현재의 GE(General Electric)을 만들었다. 또 재정난에 허덕이던 경쟁사 웨스팅 하우스의 교류식 전류 공급 특허를 사들였다. 직류와 교류식 전류공급 권한을 쥔 J.P.모건에게 전기를 공짜로 공급하겠다는 테슬라의 주장은 사업적 가치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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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 모건

                                                          

기술과 인류의 번영보다 한 자본가의 이익이 앞선 것이다. J.P. 모건과 같은 자본가들의 공을 폄훼하자는 것은 아니다. 전구가 최초로 개발되고 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에디슨이 상용화에 성공했다. 에디슨이나 J.P. 모건과 같은 기업가 정신이 전기 상용화에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에디슨은 모건의 투자금으로 전등을 개발하는 회사, 전력을 공급하는 회사, 발전기를 생산하는 회사 등 전기와 관련된 모든 분야의 회사를 설립했다. 제너럴 일렉트릭(Edison General Electric)은 에디슨이 1878년에 설립한 전기조명회사가 모태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 에디슨은 1882년 세계 최초로 중앙발전소를 뉴욕에 설립하기도 했다.

J.P. 모건과 같은 거대 자본가의 지원이 없었던 니콜라 테슬라는 ‘웨스팅 하우스 일렉트릭’ 에 특허권을 팔아 교류식 전기 상용화에 몰두했다. 교류와 직류를 둔 진검승부는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 수력발전 방식의 채택을 앞두고 벌어졌다. 앞으로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공급할 전기 방식이 직류가 될 지 교류가 될지 결정짓는 대결이었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에디슨을 지원하던 J.P. 모건의 자금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테슬라는 특허권을 웨스팅하우스에 팔면서 썼던 수익배분 계약서를 포기하는 강수를 두며 많은 투자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결국 1893년 국제 나이아가라 폭포 위원회가 웨스팅하우스의 교류 방식을 채택하며 테슬라는 에디슨과의 전류전쟁에서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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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테슬라의 노년 모습

 

승리는 했지만 공익을 위해 자신의 수익을 포기한 테슬라는 연구를 이어갈 돈이 부족했다. J.P. 모건으로부터 15만불의 후원금을 받았지만 목표가 다른 둘은 곧 이별했다. 테슬라는 무한에너지 공급 프로젝트를 위해 '테슬라 타워'를 건설하는 등 총 700개의 발명과 4000개의 발명 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특허권과 관련된 소송에서 지거나 연구소가 불타는 등 악재가 잇따랐다. 

 모든 것을 발명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테슬라는 노년까지 자금난에 허덕였다. 테슬라가 남긴 아이디어 노트에는 상용화되지 못한 설계도면으로 가득했다. 노년에 환상, 환청이 들렸고 비둘기와 대화를 나누는 등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의 산업화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발명가는 그렇게 뉴욕의 한 호텔방에서 홀로 사망했다. 순수 과학자의 삶을 살았던 니콜라 테슬라의 꿈 '무한에너지'는 만질 수 없는 신기루였던 것일까? 

    

“모든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위대한 힘이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지시하고 행복하게 하는 그런 이상을 가져야만 한다. 그런 자신의 이상이 예술, 과학 또는 어떤 다른 것에 있다고 해도 이것은 어떤 물질적 인 것이 아니다. 오로지 이 힘이 물질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 힘은 인간 자체가 평화롭게 존재하는 데 필요한 것이다.”      - 니콜라 테슬라 -


  

김정현 (주)행복한백수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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