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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을 찍어 천상계의 조화를 풀어낸 천문학자 下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년 12월 27일 ~ 1630년 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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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5.22

1604년 케플러는 ‘상하가 뒤집혀 안구의 망막에 맺히는 사물의 상, 근시와 원시를 교정하는 안경의 원리, 구에서 나오는 빛의 광도(표면적에 비례하고 거리 제곱에 반비례함)’ 등의 내용을 담아 《천문학의 광학적 측면》을 출간하였다. 1604년 10월에는 신성5)을 발견하고 1년 동안 관측하여 《뱀주인자리의 발 부분에 있는 신성》이라는 책을 냈다.

5) 1604년 케플러가 관측한 신성 이후로는 400년이 넘도록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신성이 관측된 바 없다. 현대 과학자들은 그가 관측한 신성을 ‘케플러 초신성(Kepler's Supernova, SN1604)’이라고 명명했다. 1604년 폭발 당시에는 -2.5등급 정도로 금성만큼 밝았는데 오늘날에는 우주 망원경으로만 그 잔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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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NASA, 사진은 찬드라 X-ray 망원경, 허블 우주 망원경, 스피처 우주 망원경을 이용하여 여러 파장으로 찍은 사진을 합성한 것.
 

그리고 티코가 남긴 화성 관측 자료를 검토하여 행성의 공전에 관한 규칙성을 알아냈다. 이른바 케플러 제1법칙, 제2법칙으로 불리는 ‘타원 궤도의 법칙’과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다. 이 내용은 1609년 《신천문학, Astronomia Nova》에 수록되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케플러는 궤도의 모양을 알아내기 위해서 태양, 지구, 화성이 이루는 각도 자료를 삼각형으로 연결하여 교차점을 찾은 후 하나 하나 점을 찍어가며 화성의 공간적 위치를 파악했다. 그는 화성의 궤도를 달걀 모양, 소시지 모양 등으로 상상하며 자료를 분석하다가 최종적으로 타원 궤도임을 파악했다. 타원은 두 초점에서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지는 곡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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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타원의 중심이 아니라 초점에 위치한다. 때문에 행성은 태양에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며 공전한다. 행성이 태양에 가장 가까운 지점을 근일점, 태양에서 가장 멀리 위치한 지점을 원일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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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의 공전 속도는 근일점을 지날 때 가장 빠르고 원일점을 지날 때는 가장 느려진다. 이러한 공전 속도의 변화는 행성이 같은 시간 동안에 쓸고 지나가는 부채꼴 면적과 밀접한 상관이 있다. 같은 시간 동안에 행성이 쓸고 지나간 부채꼴의 면적은 항상 같다는 것이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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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봄, 케플러는 갈릴레이가 목성의 위성 4개를 발견했다는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갈릴레이는 위성 발견의 내용을 담은 자신의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Sidereus Nuncius(별의 소식) 》를 케플러에게 보내고 의견을 구하는 편지를 썼다. 이에 케플러는 갈릴레이의 발견을 지지하는 편지를 썼고, 그 내용을 별 메신저와의 대화라는 제목의 소책자로 발간했다. 덕분에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반대하는 학자들과 싸움을 하는 데 큰 힘을 얻었으나 고맙다는 편지도 하지 않았고 케플러의 업적에 대해서도 무관심했다고 과학사는 전하고 있다.

케플러는 갈릴레이가 만들어 한 귀족에게 선물한 망원경을 빌려서 목성을 관찰했다. 그리고 갈릴레이식 망원경보다 더 효율적인 방식의 망원경을 설계한 후 1611년에 출간한 굴절광학, Dióptrica에 설계도를 실었다. 갈릴레이가 만든 망원경은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결합한 것이었지만, 케플러가 설계한 망원경은 두 개의 볼록렌즈를 결합한 것이었다. (오늘날 시판되는 천체 관측용 굴절망원경은 대부분 케플러식 망원경이다.)

1611년 봄에는 여섯 살이 된 아들이 천연두에 걸려 죽었고, 여름에는 그의 아내 바르바라가 열병으로 사망했다. 또한 정신이상을 보이던 황제 루돌프 2세가 권자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를 동생 마티아스(Mattias)가 차지했다. 루돌프 2세는 몇 개월 후 사망했다. 힘든 일들이 연거푸 일어나자 케플러는 여덟 살인 딸과 세 살인 아들을 데리고 프라하를 떠나 오스트리아 북부의 중심 도시 린츠(Linz)로 이사했다.

케플러는 어린 자녀들 잘 돌보기 위해서도 재혼을 서둘러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11명의 신붓감 후보에 번호를 붙이고 비교하며 갈등하느라 쉽사리 선택을 못했다.

‘1번 후보는 건강해 보이나 입 냄새가 심하고, 2번 후보는 우연히도 1번 후보의 딸인데 사치스럽고, 3번 후보는 매춘부를 임신시킨 다른 남자와 약혼한 사이였고, 4번 후보는 미모에 운동 실력도 있고, 5번 후보는 진지하고 검소하며 아이들에게 헌신적인데 평민 출신이고, 6번 후보는 나이가 어린데 콧대가 높고, 9번 후보는 폐병을 앓고 있고, 10번 후보는 못생기고 뚱뚱해서 남이 비웃을까 염려되고…, 7번 후보에게는 내가 차였고…, 8번 후보는 내 신앙심을 의심하고 있고, 11번 후보는 기다리다 지쳐서 나를 포기했고….’

케플러는 2년 가까이 고민하다가 결국 5번 후보 수잔나 로이팅거(Susanna Reuttinger)와 1613년 10월 30일에 결혼했다. 재혼 후 케플러는 구형 통의 부피를 보다 정확하게 측정하는 방법을 담은 포도주통의 신계량법(1615), 7권으로 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 요약서(1618~1621)를 집필했다.

1617년 9월부터 1618월 2월까지 케플러는 2살인 딸,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할 때 얻었던 의붓딸(27세), 생후 6개월 된 딸이 연이어 사망함으로써 견디기 힘든 상실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1618년 5월, 케플러는 우주의 조화, Harmonices Mundi의 집필 마무리 단계에서 케플러의 제 3법칙인 ‘조화의 법칙’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행성~태양의 평균 거리(타원의 긴반지름)를 세제곱한 값’과 ‘공전 주기를 제곱한 값’이 일정한 비례 관계에 있음을 알아낸 것이다.

행성들의 평균 거리 𝑎와 공전 주기 𝑇는 아래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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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분의 일 정도의 오차를 보이는 것은 행성 운동에 영향을 주는 우주 공간의 모든 변수들을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측정 정밀도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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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는 티코 브라헤가 죽기 전에 부탁했던 루돌프 표1624년에 완성했다. 그런데 티코의 유족들이 지분을 요구함에 따라서 인쇄가 미루어지다가 1627년에야 출간되었다. 프라하의 페르디난트 2세는 케플러의 공을 치하하여 새 집과 인쇄소를 하사하고 상당량의 금화 지원을 약속했다. 1630년 그는 라이프치히 도서전에 참여했다가 가을의 찬바람을 맞으며 레겐스부르크로 돌아온 후 고열과 섬망7)에 시달리다가 16301115일에 숨졌다. 그날 밤에는 불꽃같은 유성우가 내렸다고 한다.

7)섬망(譫妄): 혼란스런 상태, 떨림과 동공 확장, 놀람, 횡설수설하는 것이 특징인 증상

그가 살던 시대에는 종교 대립이 극심하여 몸을 피신해야 할 경우가 많았다. 구교 통일 정책에 대항하여 신교 제후들이 반기를 들었고 유럽의 30년 전쟁(1618~1648)이 지속되어 평온한 삶이 어려웠던 시기였다. 케플러는 교회의 정원 중앙 묘지에 묻혔으나 그의 무덤은 종교 전쟁 중에 군대에 의해 훼손되어 사라졌다.  

 

신규진 경성고 과학교사 《너무 재밌어서 잠못드는 지구의 과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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