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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검은 산에 눈이 쌓이니 반짝이잖아요" 아홉 살 경원이의 <산> VS 화가 박고석의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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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27
9세 이경원 作 <석양>

“경원아, 너는 왜 늘 검정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니?”
“음… 그냥 검정도화지가 더 좋아요.”
“그냥?”
“뭔가 달이나 태양 같은 빛나는 색을 진짜 빛나게 하고 싶은데, 그러면 검정도화지 위에 그리는 게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서요.”
“그렇구나. 그러니까 우리 경원이는 빛나는 색을 잘 담고 싶구나?”
“네!”  

아이는 온화한 말투로 천천히 말을 한다. 그런데 순둥이 같은 아이 성격과는 반대로 그림들은 모두 기백이 넘쳐난다. 아홉 살 경원이가 그린 <석양>에서는 빛의 파편들이 붓의 잔 터치로 지는 햇빛의 강한 인상을 뿜어내고 있는데, 아이가 어느 날 봤던 석양의 기억과 그 순간이 보는 이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는 듯하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을 처음 봤던 어린 시절, 정확히 그 장소와 시간의 순간 느낌이 어떨지, 가본 것처럼 생생히 전달되었던 감동이 있는데, 경원이의 그림 역시 아이가 경험했던 그 장소와 시간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그림일기_4편_2_이경원 9세 '산'.jpg
9세 이경원 作 <산>

“왜 초록산이 아닌 검은 색의 산을 그렸어?”

최근에 그린 검은 산을 보고 내가 물은 말이다.

“밤에 본 산이에요. 산 위의 은빛 선들은 내린 눈 때문에 산이 얼어서 반짝이는 것이에요.”
“바탕에 찍은 여러 색의 붓 터치는 종이가 검은색이라 화려하게 보이라고 이렇게 한 거니?”
“그건 눈발인데요? 눈이 겨울밤에 산 위로 날리는 걸 그린 거예요.”
“와! 눈이 흰색이 아니라 여러 색이니 정말 더 멋지구나!”

이 그림은 우리나라 산 그림의 대표 화가라 부를 수 있는 박고석 작가의 그림을 떠오르게 했다. 
 
박고석.jpg
박고석作 <산>. 공룡능선 1978, 캔버스에 유채.

화가 박고석은 그리는 대상의 생동감을 중시했는데, 그가 궁리 끝에 찾아낸 것은 호흡과 터치 등 '육체의 리듬'을 갖는 일이었다. 화가가 몸으로 경험한 감정을 육화시키는 방법이란 그 감정을 붓으로 실어내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자신의 미의식을 육체의 리듬, 즉 붓 끝에 실어내는 것이다. ('박고석과 산' 중에서)

그래서 박고석의 그림을 보면 산의 기백과 힘이 강한 붓 터치와 두꺼운 물감의 두께에 실려 뿜어나온다. 그런데 이제 아홉 살인 경원이의 산 그림에서도 나는 그 노장이 그려낸 기백을 볼 수 있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어린이기 때문에 겁 없이 쓱쓱 휘날려 그린 붓질의 대담함이 그 기백으로 가는 통로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박고석 화가가 ‘궁리 끝에 찾아낸’ 붓 터치를 아이의 겁 없는 순수함이 그것을 이뤄내었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전히 궁금한 건, 왜 굳이 밤에 본 산을 그리고 싶었을까?
"검은 산은 암흑이고 절망이에요. 뒤에 흩날리는 눈보라는 어려움이구요. 눈보라가 흩날리는 어려움이 닥쳤는데, 그 결과로 산 위에 눈이 쌓이니 검은 산을 반짝이게 하잖아요.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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