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맨해튼 1박 2일 출장 일기 下 감미옥과 상업은행, 뉴욕곰탕의 추억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4.12
1902년에 문을 연 알곤퀸 호텔.

내가 알곤퀸 호텔에 예약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02년에 문을 연 유서 깊은 호텔로 현재는 뉴욕시 사적(Historic Landmark)으로 지정 되어있기 때문이다.

알곤퀸이란 이름은 이 호텔 동네가 흔히 ‘뉴욕 알곤퀸’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아메리칸 인디언)이 살았던 곳이어서 붙인 이름인데 사실은 조금 잘못된 이름이다. 현재 호텔이 있는 맨해튼과 롱아일랜드 일대에 살던 원주민들은 알곤퀸이 아니라 알곤퀴언(Algonquian)이다.

알곤퀴언 원주민은 알곤퀴언 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부족들을 통칭하는 말로서 그 대표적인 부족의 이름 중 하나가 알곤퀸이다. 하지만 알곤퀸 부족은 캐나다의 케백 주에 살고 뉴욕주로 내려와 살았던 흔적은 전혀 없다. 다만 알곤퀴언 원주민의 대표적 부족이었기에 알곤퀸과 알곤퀴언을 혼동해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알곤퀸 호텔도 혼동해서 잘못 사용한 말이 굳어진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알곤퀸 호텔’이 아니라 ‘알곤퀴언 호텔’이어야 맞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되었건 120년 가까기 ‘알곤퀸’으로 유명해 졌으면 그냥 ‘알곤퀸’이다.

개관당시 이 호텔은 최신식 건물로 바로 옆에 2층짜리 마구간까지 갖추고 있었다. 맨해튼 한복판에 마구간이 있다는 것을 언뜻 믿을 수 없지만 그 당시 교통수단은 마차였다. 밤이 되면 환경미화원들이 나와 길에 나뒹구는 말똥을 말끔히 치워도 오후가 되면 또다시 온 시내가 말똥 냄새로 코를 들 수 없었다고 한다.

20190412234122_xgpdktno.jpg

요즘도 뉴욕시 센트럴 파크 근처에는 관광용 마차들이 줄지어 서있다. 요즘은 말들이 요강을 하나씩 뒤에 달고 다니니 말똥이 땅에 굴러다닐 일은 없지만, 여름에는 센트럴 파크 근처만 가도 말똥 냄새가 난다. 온 시내에 마차가 바글바글 하던 시절에는 오죽했으랴 싶다. 자동차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자동차가 공해 문제를 해소해 줄 것이라 믿었다니 그저 실소만이 나올 뿐이다.

이 호텔은 당시의 저명 문화계 인물들이 매일 호텔 내 로즈 룸(Rose Room)에 모여 점심 식사를 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작가, 코미디언, 배우, 음악가, 평론가, 발행인, 편집자들이 둥글게 둘러 앉아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었다.

 

알곤퀸 원탁의 멤버들, <뉴요커> 창간에 일조  

 

sdfsf.jpg
호텔 벽면에 걸린 <뉴요커>.

 

이 호텔의 전설적 소유주이자 매니저 프랭크 케이스(Frank Case)는 이곳을 찾는 가난한 예술가의 점심 값을 깎아주고 그들에게는 특별히 간식도 제공했다. 프랭크 케이스의 비호 하에 모였던 초창기 멤버들을 알곤퀸 원탁의 멤버들(Algonquin Round Table members)이라 부른다.

초창기 멤버들 중 시인이자 소설가 도로시 파커(Dorothy Parker) 등은 한 세대 뒤 미국의 대표적 작가들인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와 헤밍웨이 등에 영향을 줬다. 해럴드 로스(Harold Ross)라는 멤버는 유명한 종합 주간지 <뉴요커(New Yorker)>를 창간했다. 뉴요커는 지금도 미국 내에서 명망 높은 주간지로 문화, 정치, 레스토랑 평론부터 창작 문학작품들도 싣는다. 나도 뉴요커의 열혈 구독자 중 한 명이다.

여러 전통으로 가득 찬 알곤퀸 호텔의 또 하나의 전통은 고양이다. 1930년대 프랭크 케이스가 길고양이 한 마리를 호텔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러스티’(Rusty)라고 이름을 붙인 뒤로 이 호텔에는 내부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손님을 맞는 고양이를 늘 길러왔다. 러스티가 호텔에 살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좀 더 고급스런 이름을 붙여야 한다는 로즈 룸 단골들의 제안으로 ‘햄릿’으로 개명했다.

그 뒤로 알곤퀸 호텔에 사는 모든 수고양이는 ‘햄릿’이라 부르고 암 고양이는 ‘마틸다’라고 부르는 것이 전통이다. 랙돌(Ragdoll)종인 마틸다 3세는 2006년 캣쇼에 나가 상을 타 온 적도 있어 동물 채널인 애니멀 플래닛(Animal Planet)에 소개된 적도 있다. 마틸다 3세가 천수를 누리고 죽은 후 지금은 햄릿 7세라는 유기 고양이가 입양되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고양이 햄릿 7세

rererer.jpg
알곤퀸 호텔에 사는 고양이 '햄릿 7세'.

 호텔에 도착하니 햄릿 7세가 프론트 데스크에 올라 앉아 손님을 맞고 있었다. 호텔은 얼마 전 대규모 수리를 하고 재개관 했지만 현대식 호텔과 달리 비좁고 복잡하다. 하지만 전통과 옛 건축의 미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꼭 묵어 볼 만한 곳이다.

로비 라운지에는 로즈 룸에서 점심을 먹는 문화계 인물들의 그림이 걸려있다. 로비에는 로즈 룸을 거처 간 문인들의 책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 양쪽으로 대리석 계단이 매우 멋있다. 현재는 모두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만 애초에 엘리베이터가 없던 시절에 지은 호텔이라 얼마나 사람들이 올라 다녔는지 대리석 계단이 움푹움푹 들어갔다. 대학 시절 동생과 유럽 여행을 갔을 때 꼭대기까지 걸어 올라갔던 피사의 사탑 계단 같았다. 그곳도 대리석 계단이 닳아 있었다.

그뿐 아니라 피사의 사탑 계단은 꼭대기까지 난간이 없어 올라가는 내내 발을 헛디뎌 탑 맨 밑바닥에 철퍽하고 떨어지는 끔직한 상상을 하며 올랐다. 알곤퀸 호텔의 계단은 난간도 매우 아름답다. 추락위험은 전혀 없다. 해롤드 로스를 기념하듯 건물 벽 여기저기에는 뉴요커 매거진의 표지들을 크게 확대해서 액자에 넣어 걸어 놓았다.
벽과 문과 천장이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역사를 머금고 있다. 내가 미다스의 손을 가진 것도 아닌데 만지는 것마다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 튀어 나온다.

 

뉴욕의 회의 장소, 설렁탕집 ‘감미옥’

yy.jpg
뉴욕 한인거리에 있는 감미옥.

방에 짐을 풀고 곧장 호텔을 나섰다. 이번 여행의 주요 목적인 업무상 회의를 위해서였다. 그런데 업무상 회의 장소가 설렁탕 집 감미옥이었다. 회의 상대는 영국 출신의 G인데 그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늘 업무상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날짜도 정하기 전에 한국 음식점에서 만날 수 있냐고 묻는 친구다. 나의 대답은 언제나 “기차 타고 가니 1시 넘어 도착할 텐데 그냥 커피만 마시며 이야기 하자”고 그의 대답은 “점심 안 먹고 기다리겠다”이다. 그래서 오늘도 설렁탕 집에서 넉넉하게 2시 반에 만나기로 했다.

비가 계속 부슬부슬 와 우산 쓰고 44가 호텔에서 32가 감미옥까지 걸어갔다. 중간에 브라이언트 파크(Bryant Park)에 잠시 들렀다. 뉴욕 하면 센트럴 파크를 떠올리지만, 사실 뉴욕시 안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여기저기 많다. 브라이언트 파크는 그 중 내가 아주 좋아하는 공원이다. 동쪽으로 뉴욕 시립 도서관의 육중한 건물에 기대어 있고, 낮은 담장이 둘러 있어 아늑하면서도 시야가 툭 트여 시원하게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NMyoktZjTcOr7fVzL73l0A.jpg rrrrrrre.jpg

조금 둘러보다 약속시간에 늦을 것 같아 부랴부랴 발길을 서둘렀다. 32가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한인 타운에 들어섰다. 뉴욕시에서 학교 다닐 때도 종종 가던 곳이다. 한인 타운은 옷가게들이 많이 모여 있던 동네인 가멘트 디스트릭트(Garment District)에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한인 식당들이 하나 둘 문을 열면서 생긴 거리다.

애초에는 32가가 브로드웨이가 만나는 지점과 5애브뉴와 만나는 지점 사이의 한 블록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에서 들어온 빵집과 커피 전문점, 여러 음식점들이 브로드웨이에서부터 5 애브뉴 훌쩍 너머까지 팽창했다. 초창기 식당들은 이민자들이 밤새 노동을 하고 아침에 국밥 한 그릇 사 먹고 집으로 가던 식당들이라 24시간 영업이 기본이었다. 아직도 그 전통은 이어져서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들이 많다.

 

상업은행, 강서회관, 뉴욕곰탕, 그리고 고려서적 

12.jpg 34.jpg 

내가 처음 뉴욕시로 이사 왔을 때 브로드웨이와 32가가 만나는 초입에 한국 상업은행의 뉴욕 지점이 있었다. 그 옆에 강서회관, 뉴욕곰탕 등이 있었고, 맞은편에 한인이 운영하던 호텔과 감미옥이 붙어있었다. 그때는 상업은행이 뉴욕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부자나라가 된 것 같고 기분이 우쭐해졌다.

조국이 가난하던 시절 우리에게 작은 자부심을 주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잊게 해주던 한인 타운은 이제 불야성을 이루고 뉴욕 시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임대료가 올라가 뉴욕곰탕, 강서회관 그리고 34가에 있던 우촌 등 초창기 식당들은 모두 폐업했다. 감미옥만이 아직 남아 있는데 장소를 몇 번 옮기고 한때 문을 닫았다 현대식으로 꾸며 다시 열었다. 매번 맨해튼에 올 때마다 언제 문 닫은 감미옥을 발견할지 조마조마 하다.

G와의 약속에 늦을까봐 발길을 바삐 옮기다 그래도 지나칠 수 없어 추억의 고려서적으로 들어갔다. 학창시절 늘 이곳에 와서 지금은 폐간된 <월간 음악동아>를 읽고 갔다. 간혹 재미있는 기사가 나오면 사 가기도 했지만, 한국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 그냥 읽기만 하다 간 것이 대부분이다. 책방을 둘러보니 훨씬 커지고 깨끗해지고 책값은 더 비싸진 것 같았다.

감미옥에 들어서니 G가 이미 와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녹두 빈대떡 하나 나눠 먹고 각자 설렁탕 한 그릇 씩 먹었다. 솔직히 말해 너무 졸려 빨리 회의 끝내고 호텔에 가 좀 쉬고 싶었다. G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설렁탕이 너무 맛있어 콧노래까지 부르며 먹고 있었다. 그가 “우리 여기서 밥 먹고, 업무 이야기는 옆에 한국 빵집 가서 하자”라고 말을 했을 때는 감미옥 테이블 위에 엎어져서 자고 싶었다. 결국 G가 무척 좋아한다는 뚜레쥬르에 들어가 페이스트리와 커피를 나눠 먹으며 회의를 마쳤다.

G와 헤어져 아직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길을 걷는데 돌풍에 우산이 꺾이면서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기차역에서 나올 때는 우산 파는 사람도 많던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산 살 곳이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욕을 영어와 한국말로 궁시렁대며 우산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했다.

 

칵테일에 리코타 치즈케이크 한 조각

sdf.jpg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 잠시 들러 사진 몇 장 찍었다. 아름다운 천장 사진도 찍고, 2층에서 내려다 본 역 구내 사진도 찍었다. 승강장 사진을 찍으러 다가가는데 갑자기 승강장에서 더운 바람이 훅 불어나오며 지하철 역 등에서 나는 특유의 먼지와 콘크리트가 섞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인간의 오감 중 기억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 후각이라고 하던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과 홍차의 냄새를 맡는 순간 시간의 통로로 빠져들어 콩브레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나는 먼지와 콘크리트 냄새를 맡는 순간 내 학창시절의 한 대목을 보았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에서 통근 기차를 타고 20분 쯤 가면 우리 학교가 나온다. 주말에 맨해튼에 놀러 나오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주말 저녁에는 기차가 1시간에 하나 정도 있었다. 늘 승강장에 서서 이 냄새를 맡으며 20~30분 씩 기차를 기다리곤 했다. 

사진 찍고 호텔까지 걸어오니 설렁탕과 페이스트리가 모두 꺼졌는지 허기가 졌다. 로비 라운지에 앉아 리코타 치즈케이크와 알곤퀸 칵테일 한잔을 시켜 먹었다. <에스콰이어> 매거진에 실린 기사에 의하면 알곤퀸 칵테일은 호밀로 담근 위스키에 드라이 베르무스와 파인애플 주스를 섞어 만든다고 한다. 리코타 치즈케이크가 얼마나 맛있는지 칵테일과 곁들여 먹다, 칵테일을 살짝 부어 먹다 곱씹으며 모두 비웠다.

호텔방에 올라오니 취기가 돌며 참았던 졸음이 마구 쏟아졌다. 침대에 쓰러져 한 두어 시간 잤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아침까지 자고 싶었지만 중요한 일정이 한 가지 더 남아있었다. 뉴욕을 방문 중인 귀한 손님을 만나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다. 1980년대 초반 캐나다 밴쿠버로 이주 하셨는데 뉴욕을 방문하신다고 하여 뵙기로 했다.

선생님과 바깥 선생님이 카네기홀 음악회에 가셨기 때문에 음악회 끝날 무렵 카네기홀 밖으로 가서 기다렸다. 비가 오면서 온도가 내려가 밤공기가 찼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간 밴쿠버와 서울에서 몇 번 뵈었지만 미국에서는 처음 뵙는 것이라 설레었다. 두 분이 머무는 호텔로 함께 가 와인을 나누며 새벽 1시까지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이 나를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선생님 내외분은 20대의 캠퍼스 커플 출신 신혼부부였다. 그 시절 이야기가 고스란히 다시 다 나왔다.

 

먼 시간여행을 다녀온 듯

호텔로 들어오니 1시 반이었다. 낮잠을 잤더니 별로 졸리지 않았지만 다음 날 선생님 내외분과 뉴욕 메트의 오페라 토요일 낮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기 때문에 후다닥 씻고 침대에 누웠다.

120년 된 호텔의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이제 선생님 내외분은 손자가 넷이나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셨다. 나는 눈이 침침해지는 나이가 됐다. 상업은행은 은행 자체가 없어졌고, 뉴욕곰탕도 온데간데없이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세월이 언제 이렇게 흘렀을까?’ 언제 우리 부모님들이 하시던 말이 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오는 나이가 되었을까? ‘새벽부터 기차 타고 맨해튼에 도착해 발품 팔며 다닌 거리 보다 훨씬 더 먼 시간여행을 다녀 온 것 같다’고 생각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