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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뉴욕, 제국이 되다 下 Gateway to the World, 이리 운하 박물관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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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27
Ⓒ이리운하박물관

 이 글을 쓰다 보니 한 번 다시 가봐야 할 것 같아 며칠 전 짬을 내 오랜만에 이리 운하 박물관에 갔다. 입구에 푯말이 하나 서 있는데 거기에 'Gateway to the World'라고 쓰여 있다. '세계로 나가는 관문'이라는 뜻이다. 세계까지는 모르겠지만 유럽에서 뉴욕항에 도착한 이민자들이 신천지인 서부로 나가는 관문이었던 것은 맞는 말이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리 운하 박물관을 가 본 것은 아직도 로스쿨에 다니던 때였으니 시라큐스로 이사와 얼마 되지 않아서이다. 자전거 공원에 가서 자전거 타며 운하를 여러 번 봤지만, 운하 시스템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전거가 다니는 길은 좁은 흙길이고, 그 옆으로 운하가 지나가긴 하는데 무동력선인 바지(Barge)선이 어떻게 여기로 다닐 수 있었단 말일까?’ 하며 늘 궁금하게 생각했었다. 박물관에 들어가 그 당시의 그림과 흑백 사진들을 보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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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이나 이민자들을 싣고 이리 운하를 운행하던 바지선들을 뭍에서 말과 당나귀의 잡종인 노새들이 끌고 갔다. 노새들이 걷던 길을 토우 패스(Towpath, 견인로牽引路)라고 불렀다. 지금 자전거 공원이 된 흙길이 바로 토우 패스이다. 엔진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 같은 노새가 끄는 짐차라도 뭍에서 끄는 것보다는 물 위에 띄우고 뭍에서 끄는 것이 훨씬 빨랐고 훨씬 더 많은 짐을 나를 수 있었다.

박물관은 1850년에 지은 오리지널 건물에 새 건물을 붙여 지은 것이다. 새 건물에는 사무실과 기념품 가게가 있다. 입장료는 따로 없다. 안내 데스크에서 5 달러를 기부 하고 긴 복도를 따라 오리지널 건물로 들어갔다. 그 당시에 있던 은행 간판과 사무실이 그대로 보존되어있었다. 바지선의 무게를 재던 웨이록이 있던 곳에는 실물 크기의 바지선 모형이 있어 그 안에 들어가 볼 수도 있다. 안으로 한발 디뎌 보았다. 갑자기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19세기 시라큐스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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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지선 선장과 선원은 한 가족인 경우도 많아 5월부터 11월까지 늘 바지선 위에 살며 짐이나 사람을 날랐다. 아이들은 주로 노새 등에 타고 노새를 부리는 일을 교대로 맡아 했고,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를 했다. 늘 떠돌아다니니 배가 다니는 기간에는 배에서 공부를 하고 운하가 문을 닫는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는 주로 뉴욕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겨울을 났다고 한다. 배에서 생활을 해야 했던 만큼 배안에 자는 방과 부엌 등 살림살이를 갖췄다.

박물관 2층에 올라가니 당시의 선술집 등이 재현되어 있고, 많은 사진 자료들을 전시해 한참 돌아보며 흥청망청했을 그 당시의 풍경을 그려볼 수 있었다. 게다가 당시 유행했던 이리 운하 쏭(Erie Canal Song)을 녹음해 틀어 줘서 흥겹게 구경할 수 있었다. 이리 운하를 지나던 뱃사람들이 부르던 노래다.

엽서 몇 장 사려고 기념품 가게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일하는 분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리 운하의 원래 코스와 현재 코스를 비교한 지도를 펼쳐 놓고 해주는 이야기를 듣다 아예 그 지도를 한 장 사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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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와 보니 역시나 또 눈이 내리고 있었다. 길에 서서 박물관 건물을 다시 한번 뒤돌아봤다. 어느새 차들이 배로 변하고, 눈이 물길이 되어 또다시 19세기 시라큐스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다시 앞을 보니 아름다운 시라큐스 시청 건물이 있었다. 시라큐스가 한창 경제적으로 번창하던 1889년에서 1893년까지 4년에 걸쳐 신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미국은 유럽에서 신천지로 온 사람들이 원주민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세운 나라다. 얼마 전에는 유럽인들이 미 대륙으로 들어와 학살한 원주민 수가 5500만 명이나 되었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개척시대의 어두운 역사는 이제 더 비밀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당시로써는 상상하기도 힘든 이리 운하를 건설할 도전정신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현재의 업스테이트 뉴욕은 꿈을 잃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운하로 부를 쌓고 자동차가 운하를 대체하며 다시 제조업으로 호황을 누렸지만 1990년대 이후 공장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쇠락하고, 폐허가 된 공장 건물들만이 휑하게 서있다. 아름다운 시청 건물도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하고 산적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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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뉴욕에서 시작하지 않은 백인이 몇이나 될까?

 그럼에도 뉴욕주는 아직도 제국이라 불린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제국이라 불리는 주는 뉴욕 이외에는 없다. 왜일까? 업스테이트가 근래 고전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뉴욕주는 아직도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주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과연 부자라는 것만이 제국으로 불리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계획은 이리 운하 박물관에서 운전하고 20분 쯤 가는 곳에 운하가 호수 위를 지나가는 일종의 고가도로 같은 뱃길의 사진을 찍으러 가려고 했는데 길에 세워 둔 차로 갔더니 차에 주차 위반 딱지가 붙어있었다. 분명히 주차 요금을 지불하고 갔건만 그려 놓은  금에서 조금 삐져 나가게 세웠다고 40달러나 벌금을 물린 것이다.

날씨도 춥고, 눈도 많이 오고, 주차 딱지에 기분이 상해 운하 고가도로 사진은 날씨 좋을 때 찍기로 하고 단골 식당에 들어가 바에 앉았다. 늦은 점심 겸 저녁으로 햄버거와 맥주 한 잔을 시켜 먹으며 내 십년지기 바텐더 저스틴과 왜 뉴욕은 제국인가에 관해 이야기 했다. 저스틴이 말했다. 미국의 백인들 가운데 뉴욕에서 시작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 미국이 가장 활발하게 영토를 넓히던 시절 거의 모든 이민자는 유럽에서 온 백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뉴욕항으로 들어와 이리 운하를 통해 전 서부로 퍼져 미 대륙을 개척했다. 뉴욕은 미 대륙 개척의 뿌리요 심장이었던 것이다. 제국이 될 만하다.

저스틴에게 인사를 하고 나오다 다시 생각했다. 제국이 되어 오늘날까지 군림하는 뉴욕. 뉴욕에 사는 사람으로서 나도 자랑스럽다. 하지만 이제는 제국 건설 도중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사죄하고 보듬고 함께 새로운 도약을 시작해야 할 때라는 말도 꼭 한마디 곁들이고 싶다. 부끄러운 역사를 끌어안을 때 자랑스러운 역사도 더욱 빛난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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