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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재의 수요일에 떠난 순례 下 ‘제네시 수도원’에서 보낸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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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3.11

 제네시 수도원은 나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텍사스에서 대학 다닐 때 <제네시 일기(Genesee Diary)>라는 책을 읽었다. 어느 신부님이 제네시 수도원에 들어가 수사들과 함께 1년간 노동하고, 침묵하고, 묵상하며 쓴 일기를 책으로 낸 것이다. 이제 그 내용이 잘 생각나지는 않지만, 침묵수행을 하는 곳이라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수화로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한다는 것과 매일 빵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뉴욕시로 이사와 대학원을 다닐 때 학교에서 일 하던 한 수녀님과 친해졌다. 어느 날 수녀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분이 제네시 수도원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수녀님께 부탁해 제네시 수도원 전화번호와 주소를 얻어 전화를 해 봤다. 우리나라의 템플스테이처럼 그곳에서 3일 길게는 1주일 머물며 수도원 생활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했다.

 그해 여름 방학이 되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책 몇 권을 싸 들고 제네시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하루 다섯 번 기도드리기를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와 성당은 약 1㎞ 정도라 매일 다섯 번 걸어서 왕복했다. 숲이 우거진 시골이다 보니 여름이었지만 새벽 기도에 갈 때는 상당히 추워서 덜덜 떨었던 기억이 난다.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오니 추운 새벽길 걸어가는 것도 즐거웠다. 전공인 사회학 시간에 읽었던 칼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아침에 사냥을 하고, 낮에 물고기를 잡고, 저녁에 가축을 몰아넣고, 밤에 비평을 한다”는 대목이 생각났다. 나도 노동하고, 명상하고, 책 읽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두어 번 스쳐갔다.


빵공장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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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아침 식사를 하러 갔더니 손님담당 수사님이 아침을 차려 놓고 빵공장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이름을 적으라며 종이를 두고 나갔다. 단 남자들만 가능하다고 했다. 성당과 게스트하우스는 늘 일반에 열려있지만 성당 뒤 수사들이 모여 살며 기도하고 노동하는 곳은 외부의 출입을 제한하는 봉쇄(Cloistered)구역이다. 외부인은 특별히 허가 받은 사람만 들어가는데 그나마 여자는 들어가지 못하는 금녀의 구역이다.

 제네시에 오면서 빵공장을 구경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왔기 때문에 이름을 적었다. 9시까지 성당으로 오라고 해서 다시 1㎞를 걸어 성당으로 갔다. 저스틴이라는 수사 신부님이 나와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빵공장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별로 크지 않은 공간에 기계가 몇 개 있고 몇 분의 수사님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저스틴 신부님이 낮은 소리로 일일이 수사님들에게 나를 소개하고 수사님들은 빙긋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포장된 빵을 바구니에 담고, 바구니가 꽉 차면 그걸 다른 한 쪽에 차곡차곡 쌓아놓는 것이 내 임무였다. 신부님과 수사님들은 작업 중에 필요한 말만 수화로 간단히 했지만, 나에게는 작은 목소리로 이런저런 지시를 했다. 한참 일을 하다 잠시 휴식 시간이 오자 그 때는 어디서 왔느냐, 전공이 뭐냐는 등 사사로운 이야기도 거리낌 없이 했다.

 작업 다 끝나고 게스트하우스로 터벅터벅 걸어오며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은 “빵이 이렇게 무거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너무 무거워 팔이 아플 정도였다. 그러다 또 생각했다. “이 한심한 것. 밀가루가 얼마나 무거운데 아무렴 그 밀가루로 만든 빵이 가볍겠냐?” 맞다. 세상사에는 모두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면이 있다. 늘 빵을 한 봉지씩 사다 먹으니 한 바구니의 빵이 얼마나 무거울 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이다.


25년 만의 해후, 저스틴 신부님

 오랜만에 20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운전을 하다 보니 어느 새 2019년 3월 6일의 제네시 수도원에 도착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이곳. 세상이 모두 변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이곳에 나도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섰다. 스물 몇 살 나를 오늘의 내가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스물 몇 살 시절과 오늘 사이의 모든 시간이 책장을 후다닥 넘기듯 순식간에 내 눈 앞에서 흘러갔다. 그 모든 시간이 마치 펼쳐진 두꺼운 책을 양손으로 탁 덮듯 한 덩어리가 되어 내 심장에 박혔다.

 성당 안에서는 정오에 드리는 육시과를 바치고 있었다. 수사님들 사이에 저스틴 신부님도 보였다. 덥수룩한 턱수염이 하얗게 샜지만 얼굴은 알아볼 수 있었다. 수도원의 기도는 모두 그레고리안 성가로 부르는데 그 소리가 매우 아름답다. 기도는 정확히 시간을 재 본적은 없지만 그리 길지 않다.

 수도원의 봉쇄구역은 성당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성당에 들어서면 일반 신도 석이 있고, 성당을 가로질러 성당을 반으로 가르는 바가 있다. 그 바 넘어 부터 봉쇄 구역이다. 기도가 끝나고 성당의 봉쇄구역 안에 앉아 있던 수사들은 모두 퇴장하고, 몇몇 신도들이 계속 앉아 기도를 드렸다. 살금살금 성당 뒤 쪽으로 가서 사진 한 장 찍고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는 손님들을 접대하는 연세 많은 브라더 크리스천(Br. Christian)이라는 수사님이 서서 성당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웃으며 인사를 했다. 수도원에 사는 수사들은 영어로 몽크(Monk)라 부르고, 서로 부를 때는 브라더(Brother) 누구누구라고 부른다. 브라더 중 성직자인 신부로 임명된 사람들은 그 때부터 브라더가 아니라 파더(Father)라고 부른다.


빵은 무겁지만, 한 봉지의 빵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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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더 크리스천에게 내가 25년 전 이 곳에 머물며 파더 저스틴(Fr. Justin)과 빵을 만들었다고 했더니 대번에 오늘 저녁 같이 먹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 머물고 가라고 하셨다. 오늘은 힘들고 이번 여름에 날씨 좋을 때 와서 한 3일 있다가 가겠다고 했다. 수사님은 “이번 여름까지는 나도 살아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며 씩 웃으셨다.

 눈을 뚫고 고생고생 하며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어서 매점에 들러 몽크스브레드 식빵 한 봉지 사가지고 나왔다. 한 봉지의 빵은 참으로 가벼웠다. 매점 맞은편에 서점도 있었는데 서점은 마루가 꺼져 다 비우고 공사를 하고 있었다. 새 것이라고는 모르는 곳인 줄 알았는데 마루도 새로 깔고, 공사를 하긴 한다.

 성당 문을 나서다 앞뜰에 성모상과 마주쳤다. 25년 전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성모상이다. 모든 생명이 잘려나간 겨울 들판, 두껍게 쌓인 눈 밑에 얼어붙은 땅만이 숨죽여 봄을 기다리는 그 황량한 들판에 성모상이 혼자 바람을 맞고 서있었다. 이곳에 서서 25년 전 단 한 번 찾아왔던 나를 기다렸던 것일까? 운전을 하고 떠나며 거울 속으로 멀어지는 성모상을 힐끗힐끗 바라봤다.


거울 앞에 선 중년의 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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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라큐스에 근접하니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아침보다는 나아진 것이 해가 쨍쨍 나며 눈이 오고 있었다. 3월의 태양은 높이 뜬다. 그래서 해만 나면 아무리 눈이 많이 와도 금방 녹는다. ‘Winter, your days are numbered. (겨울아, 너도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생각하니 빙긋이 미소가 번졌다.

다시 눈을 뚫고 시라큐스로 진입해 집으로 왔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거울 속에 나를 봤다. 이마에 까맣게 그려져 있던 십자가는 바람에 다 날아가고 희미하게 한 줄 남아 있었다. 올해도 재를 받으며 ‘착하게 살겠다’ 다짐했다. 그 다짐이 바람에 다 날아가 희미해지면 내년에 또 같은 다짐을 하며 재를 받겠지.

꿈과 열정이 가득하던 시절에 3일을 보냈던 곳에 중년이 되어 다시 섰다. 한 곳에 덩그마니 서 있는 그곳을 나 혼자 빙글빙글 25년을 돌아 다시 찾아갔다. 언젠가 다시 돌아가는 날 여전히 덩그마니 서서 나를 바라보겠지. 그날이 꼭 오면 좋겠다.

눈을 뚫고 떠나 큰 원 하나를 그리며 다시금 눈을 뚫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오늘의 여정을 “재의 수요일에 떠난 순례”라 이름 붙였다.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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