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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We`re HERO 임영웅》 리뷰 / '음향이 아쉬웠지만, 역시 임영웅' 임영웅 上
입력 : 2022.01.13

서울의 우리 동네 재래시장에 건어물 가게를 하는 할머니가 한 분 계신다. 내가 될수록 카드 결제를 피하고 현금으로 지불해서 나만 보면 양도 넉넉하게 주고 좋아하신다. 이제 연세가 많아 겨울이면 뜨끈한 전기장판 위에 앉아 내가 사려고 집어 온 구운 김을 보고 “그건 돌김이야. 저쪽에 있는 거 그게 맛있어 그거 가져와. 그렇게 우리 집 드나들면서 여태 돌김도 구별 못 해?” 하신다. 그리고 덧붙이기를 “장사 오래 했으면 관둬야 하는데 아직도 하면서 손님한테 이거 가져와라 저거 가져와라 하네”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임영웅의 광적인 팬이다. 가게에 아예 임영웅 포스터까지 붙여놓고 계신다. 지난 성탄절에 또 김 사러 가서 “할머니 내일 임영웅 텔레비전 콘서트 해요” 했더니 할머니 왈 “아유 내가 아주 내일 저녁 9시 기다리다 진이 빠져서 지레 죽을 거 같어” 하셨다. 

지난해 12월 26일, 임영웅이 KBS 방송에서 단독 콘서트를 했다. 나훈아, 심수봉에 이어 국영방송이 선택한 가수가 임영웅이라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제 그는 《내일은 미스터트롯》 초대 진으로 한정할 수 있는 가수가 아니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새 역사를 쓴 《내일은 미스터트롯》이 배출한 임영웅의 위상이 《내일은 미스터트롯》을 넘어섰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의 가요계가 인정하는 이 시대의 스타이다.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타》에서 1년 반 노래방 기계에 대고 노래를 해야만 했던 임영웅이 제대로 된 반주에 맞춰 국영방송에서 콘서트를 한다니 건어물집 할머니가 기다리다 진이 빠질 만도 하다. 나는 건어물집 할머니만큼 광팬은 아니지만 그 콘서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임영웅이 긴장한 걸까 보는 내가 긴장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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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KBS 송년특집 《We`re HERO 임영웅》의 한 장면. ⓒ임영웅SNS

헬리콥터를 타고 와서 내리는 모습이 무대 뒤에서 그림자극처럼 펼쳐지며 임영웅이 등장했다. 쇼가 시작하면서 임영웅의 움직임에서 어딘지 딱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어색했다. ‘임영웅이 긴장한 거야 내가 임영웅보다 더 긴장을 한 거야?’ 임영웅의 노래는 역시 훌륭했다. <사랑이 이런 건가요>를 부르면서 불안하던 나의 긴장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임영웅도 이때부터 몸이 좀 풀렸는지 흥에 겨워 노래하기 시작했다.

특히 배호의 <영시의 이별>이 좋았다. <영시의 이별>은 배호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주고 간 앨범 속에 담긴 노래이다. 나는 어려서 배호를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전혀 없다. 그가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다 요절했기 때문이다. <영시의 이별>도 병상에서 녹음했다. 그는 마치 짧았던 자신의 삶과의 이별을 이야기하듯 흐느끼며 부른다. 임영웅은 그보다 훨씬 차분하고 담담하게 불렀다.

담담과 무덤덤은 아주 다른 말이다. 배호의 흐느낌이 있다면, 임영웅의 담담 속에는 허망과 비애가 있었다. 이 노래는 임영웅이 즐겨 부르는 노래이다. 그는 이 날 콘서트에서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타》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부르는 것보다 더 차분하게 불렀다.

첫 소절 ‘네온불이 쓸쓸하게 꺼져가는 삼거리’를 부를 때 그는 주로 ‘쓸쓸하게’를 강조한다. “어떻게 네 글자에 저런 감정을 담아내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쓸쓸함이 울컥 솟아나오듯 ‘쓸쓸하게’를 부르고 바로 뒤에 ‘꺼져가는’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번 텔레비전 콘서트에서는 ‘쓸쓸하게’를 매우 담백하게 불러 노래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꺼져가는’까지 끌고가 거기서 방점을 찍었다. 전체적으로 피아노와 포르테의 간격이 넓지 않은 대신 ‘원점으로 돌아가는’에서처럼 ‘원점으’까지 밀며 크레셴도로 나가다 디크레셴도로 급변해 ‘으로’를 마무리 지으며 이별하는 이의 출렁이는 감정을 그렸다. 기막힌 테크닉이다.

얼마 전 재미있게 봤던 《어느 날》이란 미니시리즈에서 나중에 무죄가 밝혀진 주인공 김현수가 냉소적이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눈으로 변호사를 바라보는데 보일 듯 말 듯 눈물이 맺혔다. 임영웅의 노래가 여러 감정이 겹치는 속에 보일듯 말듯한 눈물 같았다.

차분한 톤으로 노래를 하다 보니 ‘밤안개가 자욱한 길 깊어가는 이 한밤’에서 ‘깊어가는’에 약간만 강세를 주어도 한 음 한 음 꼭꼭 눌러 부르던 배호의 노래와 비교해 호소력 면에서 뒤짐이 없었다. 임영웅은 나이와 연륜에 비해 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힘 빼고 노래를 부르며 관객을 앞으로 끌었다 뒤로 민다.
<영시의 이별>을 이처럼 담담하게 부른 것은 크게 봐서 매우 사려 깊은 해석이기도 했다. 이 노래는 트롯 명곡 메들리로 부른 세 곡 중 첫 곡이었다. 같은 장르의 노래를 연속으로 부를 때 첫 곡부터 감정을 쏟아부으면 세 곡을 다 마칠 때쯤 지루한 감정이 들게 마련이다. 담담하게 앉아서 부른 <영시의 이별>과 <가슴 아프게>를 지나 일어서서 끝을 맺은 <잃어버린 30년>에서 ‘어머님, 아버님’ 하며 감정을 쏟아내며 세 곡의 메들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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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KBS 송년특집 《We`re HERO 임영웅》의 한 장면ⓒKBS2 제공

<잃어버린 30년> 시작 전 실제 이산가족 찾기의 자료 화면을 보여줌으로써 노래에 흠뻑 취할 수 있었다. 같은 멜로디이지만 1절의 ‘비가 오나 눈이 오나’보다 2절 ‘내일일까, 모레일까’에서 훨씬 감정을 끌어올렸다. 노래 끝에 한과 울분을 분출하며 세 곡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이 좋았다. <영시의 이별> <가슴 아프게> <잃어버린 30년> 세 곡의 노래가 한 곡의 1, 2, 3악장이 되는 듯했다.

임영웅의 노래는 훌륭했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었다. 국영방송이 코로나 때문에 지친 대한민국을 위로한다면서 꼭 그렇게 영어를 그것도 문법에 맞지도 않게 사용해 제목을 붙였어야 했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 그 정도 영어 못 읽는 사람 없다고 하면 할 말 없다. 그냥 ‘꼰대’의 넋두리라 치자.

좀 더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 음향이 영 성에 차지 않았다. 대중가수들은 오페라 가수와 달리 마이크의 도움을 빌어 소리를 전달한다. 하지만 임영웅의 목소리는 때로 마이크 없이 극장에서의 울림을 한 번 들어봤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공명(共鳴)이 있다. 그런 소리를 찌부러트려 반주 뒤에 가둬놓은 음향이 답답했다.

<이제 나만 믿어요>를 부를 때 ‘고맙고, 미안해요. 사랑해요. 이 세상을’ 하는 대목에서 비눗방울처럼 크고 둥글게 퍼져나가야 하는데 그런 울림이 전혀 없었다. <잃어버린 30년>을 부를 때 ‘어머님, 아버님’ 하던 대목은 울림은커녕 소리가 더 납작해지는 느낌이었다.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부르던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타》 버전을 들을 때도 ‘왜 저 울림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할까’ 생각했는데 그때의 음향이 KBS의 음향보다 오히려 좋았다.

 

음향이 아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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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KBS 송년특집 《We`re HERO 임영웅》의 한 장면. ⓒKBS2 영상 캡처

4부에서 부른 <외로운 사람들>과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는 예전에 듣던 것보다 더 좋았다. 《신청곡을 불러드립니다. 사랑의 콜센타》와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보다 한층 가라앉은 분위기였지만, 기계 반주가 아닌 생음악 반주이다 보니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맞출 필요 없이 서로의 호흡에 따라 리듬을 자유롭게 풀어내 감정의 깊이가 더 있었다. 이 경우에도 음향이 발목을 잡았다. 마지막에 한 번 터트려주는데 소리가 더 멀어지기까지 했다.

음향이 아쉬웠지만 괜찮다. 노래도 못 하면서 음향만 좋은 건 용서할 수 없으나 노래가 좋으면 다른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집중해서 상상력을 발휘해 들으면 라이브에서의 소리가 어땠는지 들린다. 오랜 세월 음질이 형편없는 마리아 칼라스의 해적판들을 들으며 체득한 기술이다.

이번 단독 콘서트는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고, 임영웅 자신에게도 영광스럽고 공부도 많이 한 기회였을 것이다. 그의 노래는 흠잡을 곳이 없었지만, 무대 매너, 제스처, 곡 사이사이 관객의 분위기를 유도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말솜씨 등은 많이는 아니고 약간 아쉬웠다. 때로 대본을 읽는 것 같고, 몸동작도 어딘지 로봇 같았다. 처음으로 탑6 동료들도 사회자도 없이 큰 무대를 혼자 이끌어 가려니 긴장도 되었을 것이다.

그가 앞으로 한 세대를 이끌어갈 엔터테이너로 성장하려면 좀 더 세련되고 자연스러운 표정, 말투, 관객과의 소통 능력 등도 노래 못지않게 공부해야 할 것이다. 춤도 조금 더 연마하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임영웅 하면 떠오르는 노래들을 쭉 나열하는 식의 콘서트도 좋지만 다음에는 주제를 가지고 노래들을 엮어 이야기를 만드는 콘서트도 재미있을 것 같다.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기술도 중요한 기술 중 하나이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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