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뉴욕 변호사의 엑스팻 생활기
엑스팻(Expat)이란 외국에 장기 체류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엑스팻으로 반평생을 살아온 필자 이철재 변호사가 뉴욕에서의 엑스팻 생활을 풀어나가며 그곳의 일상적 모습 혹은 관광객들이 모르고 지나가는 곳들을 소개한다.
업스테이트 뉴요커들의 웨그만즈 사랑 上 “지금까지 이런 수퍼마켓은 없었다.”
topclass 로고
 영화 극한직업》의 대사 한 구절을 인용하겠다.
 "지금까지 이런 슈퍼마켓은 없었다. 이것은 장보기인가 힐링인가?"

 시라큐스에서 서쪽으로 1시간 반쯤 차를 몰고 가면 한 때 이리 운하(Erie Canal)가 지나갔던 로체스터(Rochester)라는 도시가 있다. 로체스터에 살던 존과 월터 웨그만 (John and Walter Wegman) 형제가 1916년 로체스터 청과물상 (Rochester Fruits and Vegetables Company)이라는 작은 회사를 차렸다. 이것이 장보기를 힐링의 단계로 끌어올린 웨그만즈(Wegmans) 수퍼마켓 체인의 시작이었다. 

 가끔 인터넷에 출처도 확실치 않지만 기발한 기사들이 올라온다. '업스테이트 뉴요커들의 특이한 점 15가지'라는 이야기가 올라와서 읽다가 배꼽을 잡고 웃은 적이 있다. 그 15가지 중 하나가 '그들의 식료품점과 나누는 열렬한 사랑(Intense love affair with their grocery store)'이었기 때문이다. 웨그만즈에 대한 이곳 주민들의 컬트에 가까운 자부심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시라큐스 출신인 배우 알렉 볼드윈(Alec Baldwin)이 몇 년 전 데이비드 레터만 쇼(David Letterman Show)에 나와 아직도 시라큐스에 살고 있는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잠깐 했다. 어머니에게 시라큐스 날씨가 추우니 겨울에는 자기가 사는 캘리포니아에 가서 지내자고 했더니 어머니 대답이 “거긴 웨그만즈가 없잖니?”였다고 한다. 

untitled7.jpg

 웨그만즈 여러 매장 중 가장 크고 화려한 매장이 시라큐스에 있다. 뉴욕 시에 살 때는 손님이 찾아오면 데리고 다니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며, 카네기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관광명소들을 보여줬다. 시라큐스로 이사를 온 뒤로 손님이 오면 제일 먼저 데리고 나가 웨그만즈를 보여준다. 페이스북에 허구한 날 '오늘 웨그만즈에 가서'로 시작하는 글을 올렸더니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손님들이 시라큐스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대번에 웨그만즈 구경을 하고 싶다고 대답한다. 한번 보고 간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웨그만즈 전도사가 된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로스쿨 다니던 시절에 딱 한번 웨그만즈를 구경 했지만 아직도 "그 수퍼마켓 잘 있냐"고 물어보고, 가끔 친구들 앞에서 웨그만즈에 대해 설명을 하실 때도 있다.  

untitled17.jpg

 시라큐스에도 식료품점이 여럿 있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웨그만즈에서 장을 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로스쿨 시절 알던 한국 친구들이 이제 모두 시라큐스를 떠나고 딱 한 집만이 남아 있다. 문자 메시지도 보내고 전화도 하지만 각자의 바쁜 삶이 있기 때문에 만나는 것이 쉽지 않다. 늘 “한번 봅시다”하다가 결국 마주치는 곳이 웨그만즈이다.오죽 했으면 내가 웨그만즈 없었으면 우리는 같은 시라큐스 하늘 아래서 평생 다시 못 보고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로스쿨 은사님들, 동네 뉴스 앵커, 시라큐스 시장, 내 담당 의사 등 웨그만즈에 가면 별별 사람과 다 마주친다. 시라큐스 지방 방송의 한 기상 캐스터와는 묘하게 웨그만즈에 갈 때마다 마주치다 하루 신라면 진열대 앞에서 통성명 하고 페이스북 친구가 되었다. 현재 그는 호주의 한 방송국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늘 페이스북을 통해 그의 소식을 듣는다. 아직도 웨그만즈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맘앤드팜 스토어로 출발, 여전히 가족회사 

untitled.jpg

 그렇다. 이곳 시라큐스에 사는 사람들은 웨그만즈와 뜨겁게 사랑한다. 시라큐스의 추운 겨울이 싫다고 떠난 사람들도 웨그만즈는 잊지 못한다. 추운 날씨가 지긋지긋 하다면서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은 웨그만즈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고 한다.
 가족끼리 경영하는 작은 규모의 가게를 영어로 맘앤드팝 스토어(mom and pop store)라고 한다. 엄마, 아빠가 운영하는 가게라는 뜻이다. 웨그만즈는 상장회사가 아니다. 맘앤드팝 스토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커졌지만 아직도 웨그만 집안사람들이 모여 경영하는 가족경영 회사다. 존과 월터 형제가 웨그만즈를 창립한 뒤 월터의 아들인 로버트가 물려받았고, 현재는 로버트의 아들 대니와 대니의 두 딸들이 가업을 이어 받았다.
 웨그만즈는 미국 동부에 집중되어 95개 정도의 매장을 갖고 있다. 크로거(Kroger)라는 수퍼마켓 체인이 미국 전역에 4천개에 달하는 매장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하면 웨그만즈는 아주 작은 체인이다. 이 작은 체인이 미국 내 가장 공신력 있는 소비자 조사에서 매년 수퍼마켓 부문 평점 1위를 차지한다.

 

글·사진 이철재 미국 변호사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