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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황소 혈액 숙취국’ 한 그릇 주세요! 탐험대원 '다원'의 언어탐험
입력 : 2022.01.05

‘특이점이 온 한식 번역’이라는 제목으로 한동안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이 하나 있다. 한식 ‘매생이 전복죽’의 영문명을 ‘Every life is ruined’로 표기한 것에 관한 황당함이 담겨있는 사진이었다.

매생이 전복죽을 영어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매생이는 ‘매(每) 생’의 의미를 지닌 ‘every life’로 번역되었고, 먹는 전복(全鰒)은 뒤집어 엎어진다는 의미의 전복(顚覆)으로 바뀐 엉터리 번역이었다. 음식 이름이 ‘모든 인생은 망했다’라니, 썩 식욕을 자극하는 작명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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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경우 외에도, 외국인을 위한 영문 메뉴판 등에서 한식 이름의 표기가 부적절하게 이뤄지는 경우는 매우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한식 프랜차이즈 식당 ‘돈수백’의 메뉴판을 들 수 있겠다. 해외 가맹점의 메뉴판에는 한식의 한글 이름과 영문 표기가 병기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읽는 이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음식 이름들이 가득하다.

이 중에서 ‘OX blood hangover soup(황소 혈액 숙취국)’은 어떤 음식을 가리키는 표현일까? 바로 선지해장국이다. 완전히 틀린 표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소의 피와 숙취라는 단어를 이름으로 삼고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선뜻 이 음식을 주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서 ‘피쉬 케이크(Fish Cake)’로 불리는 어묵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어묵의 영문명 속에서 ‘케이크’는 재료를 갈아 만든 반죽을 굽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지만, 그래도 생선 살을 사용해 만드는 수산가공품인 어묵 특유의 개성을 연상시키기에는 역부족인 작명이라고 할 수 있다. 물고기 케이크라니, 꼭 정어리 파이에 어울릴법한 이름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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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식 고유의 이름을 살리지 않은 형식의 영문 작명 사례들은 한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큰 혼란을 일으키곤 한다.

한국을 찾아온 외국인들의 모습을 담는 MBC 예능 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서도 종종 이러한 문제점이 관찰된다. 한국을 방문한 독일 친구들은 어묵을 ‘피쉬 케이크’라고 소개하자 먹기를 주저하기도 했으며, 노르웨이 친구들은 식당에서 ‘코리안 팬케이크’를 주문하자 모둠전이 식탁에 차려져 몹시 당황하기도 한다.

즉, 한식의 모호한 영문 표기는 때때로 외국인들이 한식을 처음 접하는 데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외국인들을 위한 과도한 친절함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나는 한식의 이름을 발음 그대로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식을 제안해보고 싶다. 일식집에 가서 우리는 ‘사케동, 타마고소유’ 등 일식 음식명이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혀 있고 그 아래 음식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메뉴를 자주 만난다. 그 덕에 음식 고유의 정체성은 지워지지 않으면서도 일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메뉴를 고르거나 음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조금은 낯설지라도 한식도 한식 고유의 이름을 살려 표기하고, 그 대신에 한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외국인들을 위해 재료와 조리법에 관한 설명을 덧붙이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이런 방식이라면 ‘매생이 전복죽’처럼 번역이 잘못되는 경우나 한식에 대한 거부감을 줄 수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이름의 문제 등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다원(필명)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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