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topp 로고
칼럼진
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누구나 킬킬대고 웃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사의 에피소드를 모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을 썼고, 이어 예술가들의 광기 어린 사랑 이야기를 담은《발칙한 예술가들》펴냈다.
18세기에서 온 코즈모폴리턴 헨델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나의 길은 내가 만든다
입력 : 2021.11.15

한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순간은 다양하게 찾아옵니다. 친절한 상대방의 말 한 마디에서 호감이 싹트기도 하고요. 그동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나와 이러저러한 취향이 비슷한 걸 알고 가깝게 느끼는 일도 있지요. 종종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와 나의 공통분모를 만드는 것, 예를 들면 함께 등산을 가거나 악기를 배우거나 등의 활동이 서로에게 시너지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말처럼요. 

저는 매주 클래식 음악사의 여러 음악가들을 생각합니다. 정해진 날짜에 클래식 음악을 주연으로 때로 조연으로 등장하는 원고를 씁니다. 어떤 날은 솔직히 의무감에, 어떤 날은 즐거운 마음으로 칼럼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그들의 음악적 부분에 대한 부분은 제 전문 분야가 아니니 쓰지 않지만, 인생의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한 사람으로 음악가들의 인생을 유심히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고요.

요즘 제가 매력을 느끼고, 자주 생각하는 음악가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헨델이라고 부르는 분이지요. 독일 할레 지역에서 태어난 그의 이름을 독일식으로 부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헨델은 인생 후반부 영국인으로 귀화해 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헨델을 조지 프리더릭 핸들이라 불러도 됩니다. 저는 헨델이 더 익숙합니다. 

 

18세기의 코즈모폴리턴, 헨델

헨델.jpg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고 영국으로 귀화해 활동한 음악가입니다. 17세기의 코즈모폴리탄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당차게 만든 사람입니다. © National Portrait Gallery, London

제가 헨델에게 느끼는 호기심은 그가 다양한 지역에서 살았던 시간들에서 출발했습니다. 독일에서 태어났고, 이탈리아에서 유학하고 활동했으며, 영국에서 두 번째 전성기를 성대하게 즐겼던 그의 삶! 18세기의 코즈모폴리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고 싶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여정을 걸었으니까요.

왕정이나 교회, 귀족에게 속해있던 그 시대의 음악가들이 자유롭게 여러 나라를 오고가기 어려웠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헨델에게 특별한 점이 있지 않나 싶어요. 물론 헨델도 직장에 취직해, 샐러리맨 시절을 안 거친 것은 아닙니다만. 다양한 시절을 거쳐,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 간 거죠. 그의 삶에서 전해지는 활발함이 지금도 제게 전해지는 듯합니다. 

또 제가 헨델에게 받은 좋은 인상은 그의 유언장인데요. 그는 5회의 수정 끝에 총 44가지의 유언을 기록했습니다. 독신이었던 그는 자신의 곁에서 자신을 돕던 모든 사람들을 위해 크고 작은 재산을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 항목들이 참 섬세해요. 침실을 담당한 하인에게는 모포(당시 옷감은 재화와 같았습니다)를, 그의 모든 하인들에게는 앞으로 1년 치의 연봉을, 친한 친구에게는 그가 소중히 여기던 램브란트의 작품을, 또 경제적으로 어려운 은퇴 음악가들을 위한 후원과 몸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병원비 후원 등.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제대로 잘 베풀 줄 아는, 선한 사람이었다 싶더라고요.

헨델이 영국으로 귀화했을 때, 영국 왕실은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던 음악가들을 자국으로 스카우트하는데 열심이었는데요. 헨델 귀화 후에는 '헨델 법'을 제정해, 귀화하는 예술가들에 대한 처우를 보장했을 정도로요. 그런데 헨델은 영국의 러브콜을 먼저 받은 경우가 아닙니다. 그가 먼저 영국 왕실 측에 이직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피력했거든요. 당시 영국 왕실 측도 독일의 저명한 음악가 헨델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을 테고요. 

이밖에 영국에 귀화한 음악가, 이탈리아 가곡의 거장인 파울로 토스티도 있습니다. 그는 영국 왕실의 제안으로 귀화해, 30년 간 영국 음악 교육과 왕가의 성악 선생으로 근무했습니다. 헨델 이후 토스티는 영국에서 사랑받는 귀화 음악가로 유명했고, 왕에게 작위를 수여받는 등 보장된 삶을 누릴 수 있었고요. 반면 요제프 하이든은 오스트리아에 남아, 귀화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제 영국에서 나의 길을 직접 찾겠다, 결심하고 행동했던 헨델의 자신감이 참 멋지게만 느껴집니다. 자신감과 적당한 이기심이 균형을 이룬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고요. 가령 그는 모차르트처럼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직장 대표와 기 싸움을 오래한 것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자신을 채용할지 모르는 회사 대표들을 위해 작품을 쓰지 않았으니까요. 헨델은 헨델만의 방식으로 영국 왕실에 눈도장을 찍었고, 영국에서 연주 활동을 시작했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의 당당함이 참 부럽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것이 이 세상 돌아가는 공식이지요. 영국에서의 헨델은 좋은 일 만큼의 나쁜 일도 많았습니다. 각종 사건 사고에 휘말리기도 했거든요. 그는 살해 협박을 3차례나 받았고, 경제적 파산을 맞았고, 뇌출혈과 실명 등 큰 질병을 앓았거든요. 물론 전체적인 그의 삶은 해피엔드입니다. 그러나 분명 그는 우여곡절과 희노애락을 모두 겪은 후에야 생을 마쳤습니다. 

 

헨델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동갑내기 음악가 바흐

common0C2K0RS7.jpg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반면 헨델과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동갑내기 음악가인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는 헨델과 정 반대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바흐는 평생 독일 이외의 지역에 가본 일이 없거든요. 그가 일종의 여행 두려움이 있었다기보다,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9세에 부모 잃은 바흐가 독일 최고의 음악가로 성공하기까지 대체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살았을까요.

단지 음악적 재능만으로 지금의 바흐가 되지 못했을 테니까요. 그가 남긴 작품과 여러 기록들이 그가 삶의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살았다는 걸 증명해주는 듯합니다. 바흐가 헨델처럼 코스모폴리탄의 방식을 선택했다면, 오늘날의 클래식 음악사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도 궁금해지네요. 

만약 바흐가 조금만 틈을 내서 헨델과 만날 수 있었다면, 둘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도 같고 지역은 다르지만 독일 안에서 태어나 자랐고 또 음악가로 바삐 살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공통 화제로만 몇 날 며칠을 수다 떨 수 있었을 정도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둘은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서로의 음악을 존경했고, 만나고 싶어 했지만 늘 타이밍이 좋지 않았거든요.

마지막으로 그 둘이 만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요. 헨델이 위독한 어머니를 만나러 고향집에 갔을 때, 바흐의 아들이 헨델에게 라이프치히로 초대한다는 바흐의 편지를 전하러 갔거든요. 그러나 깊은 상심에 찬 헨델은 초대를 고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헨델의 방식에 매력을 느끼지만, 바흐의 삶도 닮고픈 점이 많습니다. 헨델의 당참과 바흐의 묵묵함을 제 삶에 반반씩 가져와 퍼즐처럼 빈 공간에 채워 넣고 싶은 마음입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올 한해에 대한 반성과 다가올 새해에 대한 설렘이 교차하는 것 같아요. 인생에 답은 없다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위해 움직일 때만큼은 ‘잘 하고 있다’, 그렇게 믿어도 된다고 저를 다독여봅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 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