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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권정은의 아이 그림 토크
아이 그림을 통해 아이와는 물론 어른과도 소통하고 싶은 권정은입니다.
아이들의 그림은 단순히 보여지는 그림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명화 뒷이야기만큼이나 재미난 것이 많습니다. 아이와 나눈 이야기를 어른들과 나누어 그 순수함의 힘으로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물건을 보면 표정이 보여요. 그래서 다 사람 얼굴 같아요" 고2 수민이가 그린 '인간관계와 주식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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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물건을 보면 다 표정이 보여요. 그래서 다 사람 얼굴 같아요. 선생님은 안 그러세요?”
 화실에 온 첫날, 정물을 보며 마음대로 해석하고 그리라고 했더니, 물건마다 얼굴과 표정을 그려 넣은 수민이가 한 말이다. 그래서일까? 수민이는 낙서 삼아 그리는 그림들도 죄다 재미난 표정의 얼굴들뿐이다.
그러면 진짜 사람을 보며 그리는 그림은 어떨까? 바로 옆에서 그림 그리는 친구들을 그리면서 수민이는 계속 혼자 히죽히죽 웃는다.
 “선생님! 정말 제 맘대로 그려도 되죠~? 정말 제 맘대로 그려요! 히히히.”
 다 그려놓은 친구들의 얼굴이 너무 재미나서 나도 같이 히히히 웃었다.   
 혼자서 끄적대며 낙서를 할 때도 늘 사람 얼굴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놓길 좋아하는 수민이는 어느 날, 갑자기 주식 그래프를 그리고 거기에 사람들 얼굴을 올려놓고 싶다고 했다. 이제 고등학생인 아이가 나도 잘 모르는 주식 그래프를 그리고 싶다니, 그것도 사람 얼굴과 같이 그린다니 이유가 궁금했다.   
 “주식은 투자한다고 이윤이 반드시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돈을 왕창 잃을 수도 있고요. 인간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마음을 주고 정성을 다한다고 보답이 오는 것 같지 않아요. 그거와 상관없이 인간관계가 깨질 수도 있고, 뜻밖에 좋은 관계가 될 수도 있고요. 여하간 인간관계가 주식투자 같은 면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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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살의 시선으로는 어른들이 보는 주식 그래프가 이렇게 보이나 보다. 참으로 놀라웠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시각적으로 효과 있게 풀까 함께 고민한 끝에 나온 드로잉은 수민이 맘에도 내 맘에도 들었다. 무엇보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뭉클했다. 아이는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그리고 나는 모른 척했지만- 이것은 분명 아이가 겪은 아픈 인간관계에서 나온 생각일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의 많은 아이가 인간관계에 대한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는 것을 본다. 나 역시 그랬지만, 사춘기 시절이야말로 사람 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점점 나이가 들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생각하고 실망하고 다시 설레고 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다. 때론 사람에게 더 이상 기대를 하지 말자 라는 다짐을 하다가도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결론처럼 드는 생각은 ‘주변에 좋은 사람들, 그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인생에서 제일 소중한 재산’이란생각이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나 마음, 돈 등은 아까운 게 아니다란 생각도 함께 말이다.
 그 후 어느 날, 수민이는 비행기에서 마주친 한 노인의 굽은 등을 보고 떠오른 아이디어 스케치를 내게 보여주었다. 노인의 굽은 척추가 롤러코스터처럼 보였단다. 인생의 롤러코스터. 그 롤러코스터를 타고 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행복과 슬픔이 있었을지를 생각하며 자기 좌석에서 쓱쓱 그려낸 것은 ‘행복과 시간’의 비례로 이루어진 그래프 위에서 춤추는 노인의 굽은 척추 롤러코스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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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민이가 우연히 만난 그 노인은주어진 시간만큼 비례적으로 행복한 시간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행복의 시간이 별로 없었던 고단한 삶이어도, 지금이라도 나이가 주는 현명함으로 행복을 잡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 행복의 중심에는 분명 ‘좋은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을 것이틀림없다. 우리가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종착지를 향해 갈수록 ‘사람이 답이다’란생각이 어리석고 미숙한 내게도 정답처럼 점점 더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묻는다.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어떤 인간관계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느냐고.

 

권정은 《내 마음에 아이가 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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