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today's pick

magazine 인기기사

topp 인기기사

daily 인기기사

topp 로고
칼럼진
정은주의 클래식 디저트
클래식 음악을 글로 소개하는 일이 업(業)이다. AI 음악가에 반대하지만, 미래 인류가 클래식 음악을 박물관에 처박아두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모차르트와 쇼팽, 특히 바흐를 존경한다. 누구나 킬킬대고 웃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사의 에피소드를 모은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을 썼고, 이어 예술가들의 광기 어린 사랑 이야기를 담은《발칙한 예술가들》펴냈다.
여러분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① 음대 졸업생의 취업학개론
입력 : 2021.10.19

며칠 전 제 모교에서 취업 특강을 했습니다. 지난 새학기에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도 했었는데요. 아쉽게도 온라인 강의실을 빌려 했습니다. 만약 제가 잘 차려입고 캠퍼스를 거닐다 강의실 문을 열고 후배들을 만났다면 더 알찬 이야기를 나눴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강의실에서 저는 다소 비관적인 현실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야 말았습니다. 


1.png
얼마 전 제 모교에서 학부 3~4학년을 대상으로 취업 강의를 했습니다. 팬데믹 시대답게 온라인 강의실을 빌려 했는데요. 음대 졸업 후에도 여러분이 행복하면 좋겠다는 말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정은주

강의에 앞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스무 살 즈음의 청년들에게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참 많았는데요. 음대 학사를 마친 청년들이 취업할 수 있는 곳이 극히 한정적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 또한 그 길을 걸었으니 사실 더 답답했던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선배의 따끔한 충고를 하고 싶었지만, 제 은사님께서 다음 강의 때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더 들려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은사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두 번째 강의에서는 청춘의 가능성에 대해 말해볼까 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건 사실 내가 정말 들려주고 싶은 말은 아닌데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실과 희망 사이 

분주하게 식탁을 정리하던 어느 저녁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를 쓴 김민섭 작가의 북토크 스타그램 방송을 보게 되었어요. “제 책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하고 꾸벅 인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대체 저 작가는 왜 저렇게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하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저도 《당신이 잘 되면 좋겠습니다》를 읽었지만, 실제로 작가의 말과 표정을 보니, 그가 글로 쓴 자신의 이야기들에 고개가 끄덕여지더라고요. 마침 허삼관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터라 단번에 몰입했었고요. 

참,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는 제 인생 책 중 하나인데요. 부끄럽지만 제가 하루빨리 등단하고,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가 되려던 꿈을 키우던 시기에 읽었던 추억도 있어요. 직장 퇴근 후 흑석동 고갯길을 돌고 도는 만원 마을버스에 오르내리던 시절의 저는 지금의 제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겠지요. 

허삼관은 《허삼관 매혈기》의 주인공으로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전형적인 캐릭터에요. 그 시절 중국에서 이보다 더 실패한 남자의 인생은 없다고 여겨지는, 남의 자식을 정성들여 키운 '자라 머리'로 놀림받기도 하고요. 이 모든 끔찍한 천재지변에도 불구하고 허삼관은 오직 가족을 위해 살죠. 위화 작가의 대표작으로 소개되는 《인생》도 참으로 멋진 이야기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허삼관의 이야기를 계속 더 읽고 싶어요. 제 아버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위화 작가는 클래식 음악을 무척 사랑하는 분인데요. 그는 친구 따라 클래식 음악에 입문했지만, 어느 새 주변 그 누구보다도 더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고 해요. 운명처럼 클래식 음악과 사랑에 빠진거죠. 이런 애정을 바탕으로 그는 클래식 음악가들의 음악과 자신의 삶에 대한 수필을 오래 썼고요.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 있는데, 저도 종종 펼쳐보고 있어요. 

다시 김민섭 작가의 방송을 보던 저녁 이야기로 돌아갈게요. 선한 영향력 혹은 그저 착한 사람의 아이콘같은 그의 표정에서 전 유레카를 외쳤습니다. '그래, 다른 사람에게 어떤 도움 되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 결국 네가 잘 되면 좋겠다는 말만큼 희망적인 씨앗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톨릭 미사 중에 “당신의 평화를 빕니다”라는 축복의 포옹처럼 지방대 음대 졸업을 앞둔 후배들에게 '그저 당신들이 행복하면 좋겠어요라는 메시지를 보내는거야!' 라고요. 어쩌면 치열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하는 청춘에게 무책임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그 자체로도 가치 있는 말이 될 거라는 옅은 믿음이 생겼거든요. 

제 모교는 현재 한남더힐 부지에 자리했던 한 사립대학입니다. 제가 입학원서를 쓸 때만해도 ‘설마 서울 중심부에 자리한 본교를 지방으로 옮기겠냐’는 의견이 많았어요. 그러나 제 아래아래 학번부터는 공식적으로 본교 이전에 찬성한다는 도장을 찍은 입학 원서만 접수가 가능했어요. 이후 마치 최근 여당의 대선 후보들 간의 ‘원팀 분쟁’같은 일이 제가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일어났었는데요. 본교 이전 동의서에 도장 찍은 적 없는 학생들은 졸지에 지방대학 졸업생이 되는 셈이니, 억울할 법 하죠. 반면 이전 동의서를 찍고 들어온 후배들은 우리가 다니는 동안에는 이전 안 하면 좋겠다 그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또 본교 부지 이전에 찬성한 신입생들의 실력이 예전만 못하다라며 수군거리던 여러 분의 볼멘소리도 기억에 남아요. 그때부터 어쩌면 지방대 꼬리표를 단 차별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지요. 한남동 언덕 한 가운데 위치했던 중앙 도서관 앞바닥에 앉아 시위하던, 여러 단과대의 학우들의 모습이 아직도 선해요. 그때 제 동아리 후배가 “누나는 왜 안 나와?”라며 옷깃을 끌었던 기억도요. “이렇게 비싼 땅에서 공부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는 말로 원망의 대상을 자처했던 국문과 노교수의 말을 되받아치던 그 젊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2.png
저는 3년간 <스트라드>한국판, <더트래블러>의 '정규직' 매거진 에디터로 일했는데요. 여러 사람을 인터뷰하고 해외 곳곳에 취재를 다니는 것이 일이었어요. 참 즐거운 순간이었죠. 그러한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음대를 무사히 졸업했기 때문이라고, 음대 졸업을 앞 둔 학부생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정은주

 

'정규직 에디터'를 강조한 이유 

어쨌거나 저는 두 번째 온라인 강의에서 3~4학년 학부생들에게 밝은 미래와 무한한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강의 전 날 “요즘 온라인 강의는 대부분 ppt를 활용한다”는 담당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만에 ppt작업도 했고요. 그리고 저는 망설임 없이 강의 자료의 첫 슬라이드에 ‘음대 졸업 이후에도 여러분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어요. 그 다음 장에는 제가 음대를 졸업했고, 4대 보험 보장받는 매거진 정규직 에디터로 3년간 일했다는 문구를 넣었고요. 

사실 저는 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 중에 제가 4대 보험을 왜 언급했는지 궁금해 한 분이 있기를 바랐는데요. 음대 졸업 후 취업할 수 있는 곳 중에 4대 보험 보장받는 곳이 많지 않다는 걸 돌려서라도 말하고 싶었거든요. 대놓고 말하는 것이 어떤 장점이 있는지를 한 번 더 고민했지만, 차라리 4대 보험 혜택 받는 정규직으로 취업에 성공했다는 희망을 들려주는 것이 더 좋겠다 싶었어요. 음대를 졸업했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거든요. 그것이 참 아프죠. 그저 음악을 사랑한 청소년들이 음대생이 되어, 열심히 연습하고 공부했을 뿐인데, 사회로의 첫 여정이 어딘지 모르게 든든치 못한 기분이 들고 마니까요. 

 

다음 이야기는 <여러분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②>에서 이어집니다. 

정은주 《알아두면 쓸모 있는 클래식 잡학사전》, 《발칙한 예술가들》 저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
이름      비밀번호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더 볼만한 기사

10개더보기
상호 : ㈜조선뉴스프레스 / 등록번호 : 서울, 자00349 / 등록일자 : 2011년 7월 25일 / 제호 : 톱클래스 뉴스서비스 / 발행인 : ㈜조선뉴스프레스 이동한
편집인 : 이동한 / 발행소 : 서울시 마포구 상암산로 34, 13층(상암동, 디지털큐브빌딩) Tel : 02)724-6875(독자팀) / 발행일자 : 2017년 3월 29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민희 / 통신판매신고번호 : 2015-서울마포-0073호 / 사업자등록번호 : 104-81-59006
Copyright ⓒ topclass.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조선뉴스프레스 | 광고안내 | 기사제보 | 독자센터 | 개인정보 취급방침 | 인터넷신문윤리강령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위원회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