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가족 호칭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2) 30세에 신생아가 된 사연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2.15
Ⓒ셔터스톡

  갓 결혼한 30세 여성이다. 결혼을 통해 배우자의 가족과 새 가족의 인연을 이루었다. 늘 어른들께서는 결혼은 두 남녀의 만남이 아니라 그 두 사람의 가족과 가족이 만나서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난 후에 배우자의 부모님께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한 가족이 되는 일이니 남편의 어머니는 어머님이 되는 것이 마땅하고, 남편의 아버지는 아버님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불리는 분들께서는 나를 새아가혹은 아가라고 부르신다. 어떤 때는 며늘아가라고 부르시기도 한다. 아가? 30세에 아가라고 불리니 조금 낯설고 이상한 기분이다.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기는커녕 아기가 된 것이다. 게다가 새아가라고 부르시니, 그냥 아기도 아니고 신생아라고 하신다. 결혼을 하면 신생아가 된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말 이상하다. 왜 그렇게 부르시는지 궁금하다. 그런데 여쭤보기는 좀 어렵다. 어른들을 불쾌하게 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정말 묻고 싶다. 왜 내가 신생아가 된 것인지 말이다.

  만약 남편도 우리 부모님께 신생아가 되어 ‘새아가라고 불린다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결혼을 통해 새로 태어났다는 뜻을 새기라고 그렇게 하시는구나’ 하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 부모님은 내 남편을 ‘김 서방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물론, 서방도 익숙한 호칭은 아니다. 그래도 결혼한 남자를 이르는 말이니 아가는 최소한 아니다. 게다가 남편은 나와는 달리, 우리 부모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장인어른, 장모님이라고 부른다. 마치 나는 당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선을 긋듯이 말이다. 왠지 좀 미워진다. 틀린 건 아니라서 뭐라고 할 수도 없고, 좀 민감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남편의 동생들을 불러야 할 때다. 남편에게는 남동생 한 명과 여동생 한 명이 있다. 남편이 나와 동갑이기 때문에 두 동생들은 나보다 모두 어리다. 결혼 전부터 서로 왕래가 잦았던 터라 남편의 남동생은 나를 누나, 여동생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 결혼을 해서 한 가족이 되면 친동생들처럼 더 잘 챙겨주고 사랑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니 집안 어른들이 나에게 남편의 남동생에게는 도련님’, 남편의 여동생에게는 아가씨라고 불러야 한다고 하신다. , 남동생은 이제부터 나를 형수님이라고 부르고 여동생은 나를 새언니라고 불러야 한다고도 하셨다.

  동생들과 더 가까워질 줄 알았는데 도련님’, '아가씨'라고 동생들을 불러야 하니 자연스럽게 존댓말을 써야 했다. 도련님, 내일 만나요”, 아가씨언제 와요?” 이렇게 말해야지, “도련님, 내일 만나”, 아가씨언제 와?”라고 하면 말이 아주 어색하다. 말이 어색하기는 남동생도 마찬가지다. ‘형수님이라고 하니 형수님, 오늘 뭐 하세요?”라고 존댓말을 써야 해서 영 거리감이 느껴지고 어색하다고 난리다. 그래서 을 빼고 형수라고 부르겠다고 하며 형수, 오늘 뭐 해?”라고 말한다. 어른들은 그렇게 부르는 것에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다. 새 호칭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은 여동생이었다. ‘언니새언니로 바뀌었을 뿐, 이전처럼 반말로 새언니, 오늘 뭐해?’처럼 말이 아주 자연스럽다.

  동생들을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한, 이전처럼 반말로 친근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다. 말하는 게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형수님에서 ’자를 빼서 도망간 남동생처럼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도련님'이라는 말이 원래 '도령'에 '님'이 붙어 된 말이니 '님'을 빼고 '도령'이라고 할까? '아가씨'라는 말은 '아가'에 '씨'를 붙여 된 말이니 '씨'를 빼고 '아가'라고 부를까? 그런데 '도령'은 부르는 말로 더 어색하고 '아가'는 어머님이 나를 부르는 말이니 호칭이 겹치고. 영 뾰족한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결혼 전 가족이 아닐 때는 만나서 이야기를 도란도란 잘 나누었는데, 결혼해서 가족이 되었는데 오히려 말이 불편해져서 동생들과 말을 꺼리게 된다. 문제는, 동생들은 이전처럼 나를 자연스럽게 대하는데 나만 불편해져서 동생들과의 말을 피한다는 데 있다. 동생들이 다가오는 것을 내가 피하는 것 같아서 자꾸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동생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 자체에 큰 문제의식은 없다. 서로 존댓말을 쓴다면 말이다. 하지만 존댓말을 써야 하는 동생들이 반말을 쓰는 상황에서 나만 도련님, 아가씨하면서 존댓말을 쓴다는 것이 이상했다. 왜 그래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도련님은 현실에서 듣거나 부른 적이 없는 말이라 더 어색하다. 역사극에 주로 등장하는 말로, 주로 역사극에서는 하인들이 주인집 자제들을 그렇게 불렀다. 비록,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랐다와 같은 비유적인 표현에 등장하기는 하지만, 요즘 도련님을 호칭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만약 요즘 이 호칭을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사용하라고 한다면 갑질을 한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그런 호칭을 내가 쓰게 될지는 진짜 몰랐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남편과 내가 왜 다를가 하는 것이다. ‘며느리도 자식이다라는 말에 어울리게 나는 시부모님께 아버님, 어머님하면서 저는 당신의 자식입니다를 고하는데, 왜 남편은 사위도 자식이다라는 말에 어울리지 않게  '장인어른, 장모님' 하면서 저는 당신의 자식이 아닙니다를 고하는 것일까? 그리고 시부모님은 내게 당당한 태도로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라고 하시는데, 왜 우리 부모님께서는 사위도 자식이라고 말씀은 하시면서 남편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라고 요구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시부모님께서는 나를 새아가라고 부르시며 이제 부모 자식 관계가 되었다고 말씀은 하시면서도 왜 남편의 동생들을 도련님, 아가씨라고 부르라고 하시는 것일까? 쌍둥이도 위아래가 있어서 서로 형이다, 언니다, 오빠다, 누나다를 따지는데 말이다. 혹시 남편과 내가 형제라고 착각하게 될까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걸까? 아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니, 다음은 왜 남편의 동생들이 내 동생들이 되면 안 되는지가 설명이 안 된다. 그런데 정말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그 호칭이 왜 하필이면 도련님, 아가씨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친동생으로 오해해서 남편과 내가 형제간이라고 생각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면, 하필이면 왜 하인이 주인댁 자제분들을 부르는 호칭을 써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왜 내가 남편의 동생들에게 그런 호칭을 써야 하는지 이유를 찾지 못하겠어서 답답하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의 동생들을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지 이유를 알려 달라고 어른들께 여쭤보는 것은 부담스럽다. 아마 여쭤봤자 그렇게 불러 왔으니 그렇게 부르는 게 맞다는 말밖에는 하지 못하실 것이 뻔하다. 어차피 내 궁금증을 해결해 주시지도 못할 텐데 괜히 기분만 상하게 해 드릴 것 같아서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왜 나는 30세에 결혼을 해서 시부모님께는 신생아가 되고 남편의 동생들에게는 하인이 되는 것일까? 그런데 왜 남편은 나와 똑같은 상황인데도 신생아가 되기는커녕 내 부모님에게 자식이 아니라고 선을 긋고, 내 동생들을 처남, 처제라고 부르며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일까?

  속 시원히 이 문제에 대해 애기해 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궁금증만 커져가고 그 호칭으로 불리거나 부르기가 싫어지니 시댁 가족들을 만나기가 점점 꺼려진다. 결혼이란 책임질 수 있는 두 성인이 만나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중 하나라고 어른들은 늘 말씀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결혼을 했다. 그런데 말하기가 불편해서 만나기가 꺼려지니 나는 나쁜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가족 호칭 문제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귀가 쫑긋해지고 눈이 번쩍 뜨인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남편은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 어른들을 뉴스에서 가족 호칭 문제에 대한 애기가 나오면 혀를 차며 불편해하시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도 다 그렇게 부르면서 살았는데 별 시답지도 않은 문제에 난리들이라고 하신다. 정말 나는 시답지도 않은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무식쟁이   ( 2019-02-18 ) 찬성 : 1 반대 : 7
형부는 형부님이라고 부르지 않는것에 대해선 아무말씀 안하시네요?
 시댁쪽은 한글용어가 주류고 처가쪽은 한자어가 주류인것에서
 발생하는 차이도 생각안하셨나봐요?
 시동생이 님자 떼고 형수라고 부르면 똑같이 님이랑 씨자떼고
 도령,아가 라고 부르면서 같이 반말하면 되잖아요 불편한 용어는 무슨..
 
 학교나 회사에서 '선배님 뭐하세요'하던 애들이 '선배 뭐해'라고하면
 선배라는 용어도 바꿔야겠네요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