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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미대 출신 김민기의 그림 같은 노래들 김민기 下 <아름다운 사람>
입력 : 2021.08.21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해줄까?’

아무도 듣는 이가 없는지 피리 소리만이 외롭게 반주를 하고, 김민기의 내레이션으로 노래가 시작한다. 사람들은 금메달만을 가리킨다. 은메달도 동메달도 그치고 머무르는 것일 뿐이다. 허나 이 화자에게는 자신만이 오른 또 하나의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반지의 제왕 안정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그는 늘 배고팠고, 축구부 훈련이 끝나면 우유와 빵을 주기에 그걸 먹기 위해 축구를 했다. 고된 훈련이 너무도 싫었지만, 견디고 빵과 우유를 타먹는 것이 그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뾰족한 봉우리였을 것이다. 화자는 안정환처럼 먹을 것이 절박해서가 아니라도 나름의 높고 뾰족한 봉우리를 오르려 피땀 흘려 훈련을 했다.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 텐데 뭐…’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그는 끝까지 오른다. 봉우리가 바로 눈앞이기 때문이다.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겨우 오른 봉우리에서 본 것은 갈라진 길과 더 많고, 더 높은 봉우리의 연속이었다. 욕망은 끝이 없으니까. 그가 힘들게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일 뿐이다.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그는 위로만 향하던 자신과 달리 아래로만 흘러가던 물이 바다가 되어 있음을 본다. 그는 먼저 더 멀리 오른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어쩌면 봉우리는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고. 그저 올라갔다 반대편으로 내려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고.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가면 철학자의 길(Philosophenweg)이라는 곳이 있다. 올라가는 길이 경사 45도 정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가파르다. 알프스 몽블랑 오르듯 숨을 할딱거리며 겨우 오르면 내려오는 반대편 길은 또 그렇게 완만할 수가 없다. 내려와 돌아보면 몽블랑은커녕 그냥 산책로일 뿐이다.

우리는 매일, 하루종일 여러 개의 이런 고개를 봉우리라 생각하며 오르고 내리며 한평생을 산다. 어떤 이의 봉우리는 작은 동산이고, 어떤 이의 봉우리는 올림픽 4위이고, 어떤 이의 봉우리는 금메달이다.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오르는 길만이 인생의 정답이 아니다. 뾰족한 봉우리는 한 사람밖에 설 수 없지만, 바다는 수없이 많은 물방울을 모두 포용한다. 그래야만 바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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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배우 송승환이 원로 배우들을 하나씩 모셔와 우리나라에 텔레비전 방송이 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나누는 유튜브 채널을 즐겨 본다. 배우 정혜선이 한 번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왜 연기를 해? 봐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하는 거잖아.” 그렇다. 세상은 혼자 살면서 혼자 빛나는 것이 아니다.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전웅태는 한국 근대5종 선수 최초로 올림픽 메달을 땄다. 또 한 선수인 정진화는 4위로 들어왔다. "메달을 따지 못해 아쉽겠다"는 기자의 말에 정진화는 "그래도 내 앞에 보인 것이 웅태의 등이라 마음이 편했다"고 했다. 시작은 정진화가 빨랐다. 정진화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전웅태는 자극을 받았다. 이 둘은 서로의 등을 보며 따라잡고 역전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전웅태가 따낸 동메달이다.

국가대표는 국가대표 선발에 탈락한 이들의 땀이 있어 국가대표로 뽑힌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다. 4위와 주고받은 경쟁이 있어 동메달이 빛나고 동메달이 있어 금메달은 뾰족한 봉우리가 된다. 결국 그들 모두의 땀방울이 모여 금메달이 눈부시게 되는 것이다.

금메달 하나만을 본다면 한 사람의 승자만이 발을 디딜 수 있는 뾰족한 봉우리이지만, 눈을 돌려 다른 곳을 보면 바다가 있다. 그들 모두는 함께 큰 바다를 이루는 물방울이고, 그 물방울들 모두는 위대한 영웅, 바다이다.

"메달보다 올림픽을 즐긴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올림픽 즐기러 나가는 사람은 없다. 지나치게 긴장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거는 최면 같은 것이다. 누구나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 하고, 나가서 금메달을 따려고 이를 악물고 덤빈다. 승패의 갈림길에서 하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하나는 좌절의 눈물을 흘리지만 실은 그들 모두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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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으로 입장하는 대한민국 선수들. 조선DB

나의 작은 올림픽 영웅을 소개하고 싶다. 내가 얼마 전 이사할 때까지 살던 곳에서 러닝클럽(Running Club)에 속해 매주 세 차례씩 모여 뛰는 훈련을 했다. 그 클럽의 코치 케빈은 스포츠가 지상 최고의 선이라 생각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자 마라톤을 시작했다.

한때 미국 랭킹 2위로 전 미국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 세 번이나 나갔다. 결국 한 번도 출전권을 따지는 못했지만 쉰 살이 넘은 지금도 매일 2시간 이상 뛰며 인구 10만의 중소도시에서 가장 큰 러닝클럽의 달리기 전도사로 살고 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결국 탈락했지만, 그는 자신의 봉우리를 오늘도 열심히 넘고 있다. 케빈과 정진화와 장은경과 그밖에 금메달의 뒤안길에서 소리 없이 빛나는 ’머물고‘ ’그치고‘ ’탈락한‘ 영웅들을 기억하며 이 노래 <봉우리>를 불러본다.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한편의 그림 같은 김민기의 노랫말

김민기는 극단 학전에 들어오는 신인 배우들에게 “배우는 우리말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말해 준다고 한다. 별로 아름다울 것 없는 김민기의 목소리가 시 같기도 하고, 연극 독백 같기도 한 가사를 강세 줄 단어를 적절히 찾아 모음의 장단을 맞춰 복모음 확실히 발음하며 읽고 부른다. 참으로 아름답다.

대사를 어디서 끊어 읽을지도 몰라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고 하고 “궐의 법도”를 “거레 법더”라고 혀 짧은 소리를 내는 몇몇 배우들, 대법관을 대벅간이라 발음하는 기자, 방송인들이 김민기의 독백을 한번 들어보면 좋겠다. 김민기의 노래와 내레이션이 심금을 울리지만 양희은의 버전도 무척 좋다.

양희은이 <열린 음악회> 등에서 부른 라이브 영상들이 특히 좋다. 그녀의 내레이션은 덤덤한 김민기와 달리 동화구연처럼 생동감이 있다.

양희은이 <열린 음악회>에서 부른 '봉우리'.

 내가 처음 배운 김민기의 노래 두 곡은 <아침 이슬>과 <친구>이다. 김민기가 미대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의 가사를 들으면 한편의 그림이 나온다. <아침 이슬>의 첫 부분은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히는 모습을 설명하기 위해 장장 여덟 마디를 할애한다. 이 여덟 마디를 들으면 내 맘의 설움이 마치 김창렬 화백의 물방울 그림을 보듯 알알이 클로즈업되어 눈앞에 보인다.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친구>는 김민기가 세월호 관련 영화의 음악을 거절하면서 대신 사용하도록 허락한 곡이다. <친구>라는 노래가 세월호와 비슷한 상황에서 쓴 곡이기 때문이다. 김민기가 고등학교 3학년일 때 보이스카웃 행사에 갔는데 그 행사에서 한 학생이 바다에 빠져 익사했다. 죽은 학생이 김민기의 절친한 친구라고도 하고 김민기 친구의 동생이라고도 한다. 내 생각으로 동급생이든 동급생의 동생이든 친분이 있었다면 다 친구이다.

이 노래 2절에 나오는 구절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하나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 할 사람 누가 있겠소’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었다. 나를 사로잡은 구절은 따로 있다.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이다.

특히 ‘바닷속에 고요히 잠기면’은 일말 무섭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했다. 뭉크의 유명한 그림 <절규>를 들여다보면 붉게 물든 하늘과 물과 절규하는 이 주변의 공기가 모두 일렁인다. 아마도 절규하는 이가 내지른 비명의 파장인가 보다. 그 파장은 절규하는 이를 에워싸고 그 무게로 절규하는 이는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이미 내지른 소리의 파장에 갇혀버린 듯하다.

절규의 파장 밖 행인들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는지 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다. 절규하는 이는 파장의 굉음 그 파도에 잠겨 오히려 자신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귀를 막고 서있다. 넘실거리는 바다의 파장 속에 고요히 갇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 숨으로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던 친구의 침묵의 몸부림이 떠오른다. 바다의 장엄함과 마치 내 숨이 막히는 듯한 공포가 엇갈린다.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가사를 한 번 읽고 눈을 감고 아무런 해석 없이 그 안에 침묵하며 머물러 본다. 회색빛 하늘과 비와 아이, 눈물, 바람, 눈(雪)이 무성영화처럼 돌아간다. 거기에 김민기의 낮고 탁하고 소박한 목소리로 가락을 입힌다. 시어들이 하나하나 살아나 들려온다.

짧은 3절에 모두 ‘아이’가 등장한다. 1절에서 가족이 없는지 아니면 어디를 다녀오다 비를 만났는지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다. 우산도 없는 이 아이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물이 잔뜩 고인 눈을 하고 그저 남의 집 처마 하나 의지한 채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1절에서 비라는 고난을 만나 눈물 흘리던 아이는 점점 강해져 그 고난을 싸우고 정복하여 산 위에 우뚝 선다. 그는 ‘고운 마음’ 또한 잃지 않았다. 눈보라를 헤치고 산위에 우뚝 선 아이의 고운 마음에서 노래가 울린다. 그 아이는 대체 누구인가? 그 희미한 모습. 아, 저 멀리 서 있는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우리 각자 인생의 도상에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마치 평생 큰 바위 얼굴을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이 되어가는 것처럼.

어려운 말도 아니고, 처음 듣는 표현도 없다. 일상에서 쓰는 말들이 모여 사람의 보편적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이것이 김민기의 시이다.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인간적이다.

<아름다운 사람>은 김민기의 서울대 미대 후배들이 결성한 여성 듀오 현경과 영애를 위해 써준 곡이다. 현경과 영애는 반주를 좀 촌스럽게 사용해 부르지만 발음이 정확해서 아름다운 노랫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전에 김광석이 <아름다운 사람>을 부르는 걸 텔레비전에서 봤는데 찾을 수가 없다. 대신 그가 부른 <친구>는 몇 찾아 들었다. 김민기처럼 기타 반주만 가지고 노래를 하는데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시대가 만들어낸 김민기라는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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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조선DB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넘어간다. 김민기는 어떤 사람인가? 김민기는 70년대의 산물이다. 그의 노래 속에 1970년대 고도성장과 그에 따른 부작용, 노동문제, 인권 문제 등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시어나 멜로디는 말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그것이 그만의 저항의 방식일 수도 있고, 그가 보는 세상은 이데올로기보다는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의도했든 아니든 김민기는 이 나라 민주화에 그 아름다운 시어로 많은 공헌을 했다.

그의 동료들 중에는 김민기 덕에 대한민국이 민주국가가 되었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김민기는 대한민국에게 결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의 노래가 광장에서 울릴 때 그는 군중 속에서 노래를 부를 뿐 마이크를 잡고 나서지 않는다. 그저 오늘도 어제 했던 일을 계속한다.

그를 가장 많이 아는 사람 중 하나일 법한 양희은은 “늘 그 자리에 있다”는 점에서 김민기를 말할 수 없이 존경한다고 했다. 체 게바라와 피델 카스트로는 함께 쿠바 혁명을 완수했지만, 한 사람은 호의호식하며 독재 왕국을 세웠고, 또 한 사람은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살다 처형당했다. 김민기는 게바라처럼 게릴라 전투를 벌이지도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지만 왠지 게바라의 모습이 겹친다.

손석희와의 인터뷰에서 김민기가 1980년 봄 광주의 풍경을 뉴스에서 봤던 기억을 회상했다. 시민들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부르는데 다음 장면에서 군대 또한 같은 노래를 부르며 진군하고 있었다고 한다. 역시 그는 남의 이야기하듯 그 이야기를 하며 피식 웃었다.

그가 한겨레 인터뷰에서 말했듯 그 노래들이 그의 ‘몸에서 나간 거긴 한데 나간 것의 백배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그저 퇴역하는 하사관의 인생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그에게 선물한 것일 뿐인데 말이다.

‘현자(賢者)가 달을 가리킬 때 우매한 자가 보는 것은 손가락뿐’이라고 했다. 김민기가 사람을 가리킬 때 우리는 그저 우리 입맛에 맞는 이데올로기만을 보고 그를 신성시 하거나 공격하는 것은 아닐까?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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