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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 리전 매니저로, 전세계 커뮤니티 리더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2000여 명의 소프트웨어 인재와 소통하며 그들의 커뮤니티 리더십을 알리는 일을 합니다. 이 경험을 녹여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성공에 기여한 적 있는가?》를 펴냈고, 각계각층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시대의 글로벌 인재 육성을 위한 전략과 지혜를 나누고 있습니다.
일분일초가 소중한데 '워라밸'이라니 20여 년간 IT업계에 몸담으며 깨달은 것들
입력 : 2021.07.30

과유불급, 중용, 밸런스. 

내가 20여 년간 IT 업계에 몸담고 살아오며 아직도 지치지 않는 이유를 꼽자면 이를 지켜온 데 있다고 생각한다. 30대 초반 막 결혼하여 마이크로소프트에 들어왔을 때다. 워낙 밤낮 없이 일하는 한국 벤처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서인지 마이크로소프트에 입사해서도 앞뒤재지 않고 불도저처럼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본사 인사팀에서 온 다소 젊은 여성 직원이 부서원을 위해 자유로운 형식의 미팅을 주관했다. 주제는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였다. 무려 15년 전의 일이다. 대한민국은 지금에 와서야 이에 대해 사회적인 논의를 시작했는데,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는 오래 전부터 화두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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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분일초를 아껴가며 경쟁하기 바쁜 때일수록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무려 15년 전부터 이 논의를 시작해왔다. ⓒshutterstock

그 당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직원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반응을 보였다.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경쟁해도 뒤쳐지고 낙오되는 이 시점에 이게 무슨 한가한 주문인가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스스로 밸런스를 잡아나가지 않으면 어느 순간 일시에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커뮤니티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해도 밸런스를 잡아가며 해야 한다. 아주 젊은 시절부터 커뮤니티와 함께 성장했고, 현재도 성장하고 있는 한 커뮤니티 리더의 말이다. 

“요즘은 기술 발전 속도가 정말 빨라요. 게다가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가 공유되어 쉴 여력이 없는 것 같아요. 커뮤니티끼리도 서로 경쟁하고 눈치를 보느라 예전 같지 않아요. 예전에는 1년에 두 번 정도 행사하고, 멤버끼리 맛있는 것 먹으며 뒤풀이하면 즐겁고 만족스러웠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이 커뮤니티는 이렇게 한다더라, 저기는 저렇게 한다더라 하며 경쟁적으로 밋업이나 행사를 늘려가니 좀 지치더라고요.”

평생 경쟁적인 환경에서 공부를 해온 데다, 남에게 뒤쳐지는 것을 못 견뎌하는 국민성도 한몫하여 우리는 쉬는 것에 인색하다. 하지만 잘 쉬어야 더 멀리 갈 수 있고, 넉넉한 마음이 있어야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다. 

 

10년 이상 어린 상사가 내정 

사실 나 또한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고 믿은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마흔을 한참 넘긴 재작년 즈음에야 깨달았다. 

내가 한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커뮤니티 리더를 관리하다가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담당하는 매니저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앞서 했다. 그러다 호주에서 직접 관리하는 매니저가 필요하게 되어 호주에서 나고 자란 30살 초반의 여성 담당자가 채용되었다. 나에겐 동남아시아를 담당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나보다 한참 어린 호주 담당자에게 정말 성심 성의껏 멘토링을 해주었다. 또한, 그간의 경력과 경험을 한껏 살려 최고의 선배가 되어 주려 노력했다.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내 집에도 초대하고, 연애 상담까지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본사에서 승승장구하던 내 매니저가 회사를 나간다고 했다. 내 직속 매니저뿐만 아니라 기존 부서 전체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내 조직은 그 전까지 상상하지도 못했던 클라우드&인공지능(AI) 부서로 이관되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본사에서 하루에도 수십 통씩 쏟아지던 메일이 한 통도 오지 않았다. 어디에 물어볼 곳도 없어서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새 조직의 인사가 발표되었는데, 놀랍게도 내 새 매니저로 10살 넘게 어린, 내가 성심껏 멘토링 해주었던 호주의 담당자가 내정되었다. 갑자기 눈앞이 아득해졌다. 40년 넘게 한국에서 나고 자라는 동안 이런 일은 처음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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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utterstock

‘아니,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야?’ 

한동안 정신적인 방황이 시작되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동안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아무런 잘못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인사발령이 난 것인지. 그때 중년의 위기를 호되게 겪었다. 모든 문제가 일시에 터져 나왔다. 건강, 가족, 재정 등 각종 문제가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나는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에 걸렸던 것 같다. 


번아웃 증후군을 겪고 나서 

아이를 둘 낳고 키우면서 기본 3개월의 육아휴직 이외에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일분일초를 아끼며 열심히 살다가 의외의 인사발령을 받고, 중년의 위기까지 겪게 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당장 내일 그만 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훨씬 작은 집으로, 내가 좋아하는 산이 가까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도 했다. 그동안 쓰지 않았던 휴가도 한꺼번에 몰아서 썼다. 빡빡한 휴가 계획도 그만 두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 주변 산을 오르고, 걷고, 책 읽고, 놀았다. 마음을 푹 쉬게 두었다.

그렇게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니 10살이나 어린 새 매니저인 라나의 장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이 친구는 무척 순수했다. 순수 백인 혈통의 호주사람이지만, 자신의 선조가 호주 본토 원주민인 애보리진(Aborigines)에게 했던 몹쓸 짓들에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수많은 호주사람을 만났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하는 사람은 라나가 처음이었다). 지금은 결혼했지만, 당시 사귀던 남자친구는 브라질에서 호주로 입양되어 또 다른 입양인 형제자매와 자란 친구였다. 라나보다 몇 살 어렸는데, 사귈 당시에는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되어 라나의 작은 아파트에서 더부살이 하고 있었다(나중에 라나가 살뜰히 인터뷰 준비를 도와주어 취직이 되긴 했다). 그런데도 라나는 마음 넉넉한 이 친구가 좋다고 했다. 한마디로 라나는 개념 있는, 인성 좋고 그릇이 큰 친구였다.

무엇보다 라나는 다큐멘테이션(documentation), 즉 리포팅에 뛰어났다. 어떠한 복잡한 문제도 차분하게 정리할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이 소리 높여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회의에서도 진지하게 질문하고, 섬세하게 들은 후에 리포팅을 만들었다. 누가 요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했다. 그 리포팅은 많은 사람이 방향을 잃고 헤맬 때 큰 힘이 되었다. 즉, 실력도 뛰어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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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자연에서 휴가를 즐기며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때, 차분하고 섬세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shutterstock

그러면서도 너무 일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호주인 특유의 여유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10일, 20일짜리 휴가를 곧잘 냈다. 주로 대자연에서 캠핑을 하거나 높은 산, 드넓은 자연 속에서 걷고 구르고 뛰놀다 회사로 돌아오면, 다시 예의 차분하고 섬세한 리더십을 발휘했다. 

나는 점점 라나가 좋아졌다. 그녀의 군림하지 않는 리더십, 큰마음, 여유 있는 리더십에 매료되었다. 10살이나 더 어린 친구지만, 진심으로 존경하며 배워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라나는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 그리고 자신이 맡던 아시아 리전 메니저를 나에게 맡겼다. 


커뮤니티 리더십의 힘

커뮤니티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혹은 커뮤니티 원년 멤버가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아집은 신규 회원의 활기를 앗아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멤버나 젊은 친구들이 찾지 않아 커뮤니티가 정체되거나 사라진다. 목표한 공부 수준에 다다랐을 때, 혹은 다음 목표가 생겼을 때, 한 발 물러나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가끔 후배 멤버들에게 피자, 치킨을 사줄 줄 아는 멋진 선배로 말이다. 

만약 번아웃 되었다면, 모든 걸 내려놓을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사안(예를 들어 연애)에 대해서는 경중을 헤아리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속도 조절, 즉 밸런스는 일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열정을 가지되 매몰되지 않는 연습을 커뮤니티에서 해보면, 인생에서 힘든 순간이 올 때 보다 쉽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나는 어떻게 그런 젊은 나이에 마흔을 훌쩍 넘긴 나보다도 훨씬 현명한 리더십을 가질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이 궁금하지 않은가? 그녀의 현명한 리더십은 그녀의 오랜 커뮤니티 활동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글로벌 SQL 커뮤니티에서 잔뼈가 굵은 커뮤니티 리더였다.


* 커뮤니티 리더십을 다룬 책 《홀로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 내용의 일부입니다. 빠르게 격변하는 시대에 필요한 인재, 이런 인재는 어떻게 탄생되고 또 길러지는지  함께 고민해보기 위해 마련한 장입니다. 많은 의견 부탁드립니다.

이소영 마이크로소프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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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뽐블리   ( 2021-08-07 )    수정   삭제 찬성 : 0 반대 : 0
이 글을 읽고 여러 생각이 듭니다. 쉬는 것에 죄책감을 갖고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 그럼 어떻게 하면 더 잘 쉴 수 있을까 하는 생각.
 20년간 남들이 부러워하는 글로벌 기업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자, 10살이나 어린 호주인 매니저에게서 또 새로이 배우는 작가님도 정말 멋있습니다.
 그리고 커뮤니티 리더십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집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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