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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킹박과 양희은의 얄궂은 인연 양희은 下 <아침이슬>
입력 : 2021.07.12

 양희은의 앨범 《1991》 안에는 좋은 노래들이 많다. 내가 처음 이 시디를 구입해 들을 때부터 좋아했던 곡이 1번 트랙의 <그해 겨울>이다. 각종 실험적인 기계음이 범람하던 당시 가요계에 뜬금없이 돌아온 언플러그드(Unplugged) 사운드가 주는 잔잔한 감동은 전율 그 자체였다.

 반주 없이 시작하는 <가을 아침>도 좋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2학기 시작하는 9월 초면 아침저녁 쌀쌀한 가을이었다. 학교 가기 싫어 쌀쌀한 아침 이불속에서 뒹굴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친구에게>는 기타 반주와 노래의 가사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분 하나가 모교에 특강하러 갔다 교정에서 느낀 감정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모교를 찾아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휘몰아치는 시간의 통로로 빠져들어 가는 것은 우리의 심장박동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양희은이 199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부른 <그리운 친구에게>. ©MBC College Musicians Fest

 <그리운 친구에게>는 이런 흥분된 마음을 표현하듯 긴장을 늦추지 않는 기타 반주가 뒤에서 끝없이 나오고, 이 반주에 맞춰 양희은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듯 때로 차분하게 때로 감정이 복받치며 노래를 부른다.

 내가 즐겨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는데 6번 트랙의 <나무와 아이>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양희은이 썼지만,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이병우가 작곡한 곡이 아니다. 18세기 말엽에 태어나 19세기 초엽까지 활동한 스페인의 작곡가 페르난도 소르(Fernando Sor)의 곡에 가사를 붙인 것이다.

 소르는 오페라, 미사곡, 피아노곡 등을 작곡했지만 아직도 연주되는 곡들은 모두 그의 기타곡들이다. 그 자신이 뛰어난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소르는 총 6권의 기타 연습곡(Etude)을 출간했다. 이 중 작품번호 35번으로 출간한 24개의 연습곡 중 17번 모데라토(Moderato)가 <나무와 아이>이다. 청아한 양희은의 목소리와 이병우의 기타가 혼연일체가 되어 리듬을 밀고 당기며 한 편의 성장소설을 읽어주는 듯하다.

 

듀오란 바로 이런 것, 양희은과 이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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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이병우. ©뉴시스

 흔히 천재 기타리스트라 불리는 이병우는 1965년 간호조무사로 독일로 가 한국인 최초의 유럽 오페라단 주역 가수가 된 메조소프라노 김청자가 졸업한 빈 국립음대를 수석 졸업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의 3대 음악학교의 하나라는 피바디음악원에서 수학했다.

 《1991》은 양희은의 노래와 이병우의 신의 경지에 이른 기타 연주가 하나로 밀착하여 ‘듀오(Duo)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보여주는 앨범이다. 그 앨범 안에 모든 노래들을 좋아해 쭉 이병우라는 이름을 관심 깊게 지켜봤다. 그는 영화음악 분야에서 족적을 남겨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 《왕의 남자》 《마더》 《해운대》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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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은의 책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에는 그녀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전설적인 레코드 기획자인 킹레코드의 박 모씨라는 사장에 의해 가수로 데뷔하는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양희은의 아버지는 한 여인과 딴 살림을 차려 나가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양장점을 운영하다 빚보증을 잘 못 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장녀였던 양희은은 이때부터 노래를 부르며 집안 생계를 책임졌다.

 기타 코드 서너 개밖에 아는 것이 없었지만 노래 하나는 그때도 정말 잘했다. 송창식의 소개로 노래를 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방송국 프로듀서들에게 소문이 나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그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녹음으로 남겨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프로듀서들의 소개로 킹레코드의 박 사장이 그녀를 찾아와 음반 제안을 했다. 이렇게 해서 나온 음반에 수록된 노래가 그 유명한 <아침 이슬>이다. 

 

귀여운 도둑놈 '킹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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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은은 물론 가요계에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킹레코드의 박 사장을 킹박이라고 부른다. 그녀가 킹박과 첫 앨범을 내면서 내 걸었던 조건은 250만 원의 빚을 갚아달라는 것이었다. 그녀가 앨범을 내기 전 그녀의 노래를 들었던 아일랜드 출신의 신부님들이 맑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서 얼굴은 너무 어두운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게 되었다.

 신부님들은 십시일반(十匙一飯) 250만 원을 모아 그녀에게 무기한으로 대출을 해주면서 이자로는 “앞으로 웃으며 살 것”을 요구했다. 양희은은 그 돈을 갚고 싶어 킹박에게 그런 요구를 한 것이다. 킹박은 양희은의 표현을 빌면 신의 촉을 지닌 레코드 기획자로 대박 날 가수를 찾아내는 데 귀신같은 재주를 지녔지만, 또한 대박 난 가수에게 지불할 돈을 떼어먹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다급했고 250만 원을 갚을 수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 앨범을 냈다.

 <아침 이슬>이라는 노래가 양희은의 인생과 대한민국 가요사에 또 이 나라의 민주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양희은은 그 후로 내는 앨범마다 대 히트를 하는 초대형 가수가 되었지만 킹박은 그 250만 원으로 모든 앨범을 우려내며 오늘날까지 그녀에게 다시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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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던가. 양희은은 뉴욕의 한 한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그녀는 “내가 등록금 낼 돈 없어서 학교 세 번 휴학 할 때 등록금 한 번 내줬느냐?”며 악을 쓰며 덤볐다. 킹박의 대답은 “너만큼 돈 많이 받아간 가수 없어”였다. 다른 가수들에게는 250만 원도 준 적이 없나 보다. 킹박은 결국 국내 재산을 모두 처분하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킹박은 뉴욕 맨해튼 거리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미국에 아무 연고가 없었기에 킹박은 당시 뉴욕에서 살던 양희은에게 연락했다. 양희은은 킹박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 “내가 왜 킹박에게 이런 걸 해줘야 해?”라고 투덜거리면서 병구완을 했다. 양희은의 남편은 난생처음 보는 킹박 목욕까지 시켜줬다니, 참 이들 부부 속도 좋다. 그리고 《1991》도 킹레코드 레이블을 달고 나왔다.

 이 글을 쓰며 킹박에 대해 조금 찾아봤다. 얼마 전 양희은이 방송에 출연해 킹박 이야기를 한 기사가 여러 개 뜨는데 그에 관한 직접적인 기사는 2008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노숙자로 지내고 있었다. 독일에 살던 유일한 혈육인 딸이 여행 경비를 마련하지 못해 힘들어 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상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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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백구를 떠올리며 듣는 그 노래 

양희은 <백구>. FanMade Music Video ©유튜브 :3 Hellopet

 양희은 하면 늘 <아침 이슬>이 수식어처럼 따라붙지만 나는 어린 시절 실제로 그 노래를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아니 전무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이슬>이 오래도록 금지곡이었다. 

양희은의 데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슴에 품고 사는 노래가 따로 있다. <백구>이다. 양희은의 초창기 노래이니 내가 초등학교 2〜3학년 때 나온 노래이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 서울 인구가 6백만이라고 나왔다. 내가 2〜3학년이던 시절에는 인구가 더 적었을 것이다.

강남은 논밭과 과수원으로 가득 찬 전원적인 곳이었다. 휴일에 나룻배 타고 한강 건너가 반포에서 배를 사먹고 온 적도 있다. 자동차도 사람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 종종 시장 앞 큰길에 우리 차를 대충 세우고 시장에 들어간 어머니를 기다릴 수 있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아버지와 우리 형제들이 차에 타고 마냥 기다리면, 어머니가 “딱 한 가지만 사 가지고 빨리 나온다”고 하고 시장으로 들어가 세월아 네월아 한가득 장을 봐 나오셨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큰길에 차를 세우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백구>가 흘러나왔다.

‘내가 아주 어릴 때였나. 우리 집에 살던 백구. 해마다 봄가을이면 귀여운 강아지 낳았지.’

첫 구절부터 마음에 와닿았다. 그 당시 주택가 골목에는 생전 대문을 잠그지 않고 사는 집들이 많았다. 개를 길러도 밖에 풀어놓고 길러 개들이 맘대로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아침에 나가보면 우리 집 대문 앞에 똥을 싸놓고 가는 개도 있었지만, 누구네 개인지도 모르고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동네 개들은 번식기가 되면 눈 맞는 개들끼리 아무데서나 짝짓기를 해 나와 길을 걷던 어머니가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며 빨리 걷기 시작한 적도 있었다. 개 주인들은 어느 날 자기 집 개의 배가 불러오면 새끼 받을 준비를 했다. 그리고 ‘강아지 안 키우겠냐?’고 이집 저집 묻고 다녔다.

번식 본능에 충실했던 백구도 이렇게 동네를 휘젓고 다니다 생물학적 알람이 울리면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았다. ‘어느 해 가을엔가’ 백구가 새끼를 낳다 지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이 노래는 쓰러진 백구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가고, 거기서 아마도 수액인 듯한 주사를 맞다 도망쳐 뛰쳐나간 백구를 쫓아 이리저리 헤매며 찾으러 다니는 이야기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어머니 기다리며 지루해하던 나는 첫 한두 마디 듣다 백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아, 그런데! 듣다 보니 백구가 죽었다. 백구와 안타까운 숨바꼭질을 하던 백구네 식구들은 그리 헤매다닌 보람도 없이 차에 치어 길바닥에 죽어있는 백구의 시체를 찾는다. 나는 여기서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요즘은 속 시원하게 한번 울고 싶을 때도 눈물이 나지 않아 울지 못하는데 그땐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폭발하듯 울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황당했겠지만, 아무 기억도 없고 그냥 서럽게 울던 내 모습만 눈앞에 보인다. 그리고 그게 다였다. 그 뒤로 다시 그 노래를 들은 기억이 없다.

멜로디도 가사도 전혀 생각나지 않고 후렴구 ‘긴~다리에 새하얀 백구’ 하는 구절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래도 누가 양희은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하면 늘 <백구>를 아느냐고 물었다.

2000년대 초 처음 음악을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듣기 시작하면서 <백구>가 궁금해져 찾아 들었다. 30년의 세월이 지나 처음 다시 들으니 새로 듣는 노래 같았지만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노출된 ‘긴~다리에 새하얀 백구’가 그대로 살아왔다. 그때 처음 알았다. 노래 후반부 백구가 죽은 뒤 백구를 묻어주는 이야기가 한참 나온다는 것을. 우느라 정신이 없어 뒷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나 보다.

인터넷 덕에 오늘도 이 노래를 듣는다. 10여 년의 짧은 세월 동안 나에게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지혜를 가르쳐주고 떠난 나의 견공 친구들도 생각한다.

 

세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그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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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은의 히트곡 중에서 <하얀 목련>은 왠지 그리 정이 가지 않는다. 얼마 전 친구의 소개로 처음 들은 <일곱 송이 수선화>가 나의 새로운 애청곡으로 등극했다. <일곱 송이 수선화>는 1960년대 미국의 여러 유명 그룹과 가수들이 부른 를 번안한 곡이다. 비록 가진 것이 없지만 그대에게 일곱 송이 수선화를 꺾어 주고 달빛으로 목걸이를 엮어 걸어 주겠다는 로맨틱한 노래이다. 양희은의 낭랑한 목소리에 잘 맞는 노래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듣던 여러 팝송 프로그램 진행자들 중에서 양희은만큼 영어 발음이 좋은 사람이 없었다. 양희은이 중간에 영어로 잠깐 노래를 하는데 역시 발음이 정확하다.

 나는 조카들에게 “70〜80년대 노래들이 요즘 노래보다 수준이 더 높았다”는 말을 농담 삼아 잘한다. 조카들이 피식 웃으면 내가 또 말한다. “나는 너희 노래를 안 듣지만 너희는 내 시대 노래를 찾아 듣잖아.”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양희은의 노래에 싫증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세대를 초월해 들을 때마다 고향집에 돌아온 푸근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양희은의 노래에는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가 있다. 거기에 양희은의 해맑은 목소리 속에는 힘겨웠지만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삶이 배어있다. 행복과 위안은 가장 인간적인 것인가 보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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