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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변호사의 라떼가요
노래는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역사를 담고 있다. 어느덧 라떼 세대가 된 필자가 좋아했던 노래들의 아름다운 노랫말을 곱씹고 노래와 얽힌 기억들을 회상한다. 우리 가요와 사회의 반세기의 이야기가 풍요롭게 펼쳐진다. 나이 든다는 건 기억이 풍성해 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양희은 上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입력 : 2021.07.10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 있었던 외화 시리즈 중에 미국에서 제작한 《The Paper Chase》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혹은 《학창시절》 등으로 번역해 방송했다.

 이 외화 시리즈는 1973년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바탕으로 만들었고 영화는 1970년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존 제이 오스본(John Jay Osborn Jr.)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서 1971년에 출간한 역시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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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 시리즈 《The Paper Chase》. 한국에서는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라는 이름으로 방영됐다.

 하버드 법대 1학년생 제임스 하트(James Hart)와 그 주변 인물들이 학교에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영화와 텔레비전 시리즈에서 존 하우스만이 맡았던 계약법 교수 킹스필드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유명하다.

 미국 법대의 수업 방식은 전통적으로 소크라틱 메소드(Socratic Method)라고 해서, 교수님이 강의를 하기보다는 이 사람 저 사람 불러 세워 묻고 또 묻고 또 캐물으며 그 학생이 비판적 사고를 하도록 유도한다. 끝없이, 숨 쉴 틈도 없이 쏟아지는 교수의 질문에 대답을 못 하고 면(面)이 팔리는 것은 그냥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여야지 그것이 창피스러워 견딜 수 없으면 법대를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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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킹스필드 교수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학생에게 면박 주기를 전혀 주저치 않는 사람이다. 게다가 1분이라도 강의 시간에 늦으면 그때부터 그 학생을 작고한 아무개라고 부르는 고약한 성품을 지녔다. 영어에서 ‘늦은, 지각한’이란 의미의 ‘Late’ 앞에 정관사 ‘The’를 붙이면 ‘작고한, 고(故)’란 의미가 된다. 제임스 하트가 자기 수업 시간에 늦자 그때부터 킹스필드는 하트를 “작고한 하트 군(The Late Mr. Hart)”이라고 불렀다.

 법대에 입학했을 때 나의 가장 큰 걱정이 ‘혹시 요즘도 킹스필드 같은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었다. 민사불법행위(Torts)를 가르치던 브레넨 교수님은 킹스필드와 가장 비슷한 분이었다. 사무실로 찾아가면 무척 친절하게 대해 줬지만, 수업시간에 학생을 불러세워 놓고 자신의 고개를 약간 숙인 채 표범처럼 노려보며 질문을 퍼부어댈 때는 킹스필드 저리 가라였다. 게다가 교수님보다 한 발짝이라도 늦게 도착한 사람은 그날 수업에 들어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결석으로 처리한다는 것도 킹스필드와 비슷했다.

 10월 중순쯤 되었을까 한 어느 금요일. 날도 쌀쌀해지고, 첫 학기 시작한 지 달포가 훌쩍 지났건만 망할 놈의 소크라틱 메소드는 매일 명확한 답은 없이 우리의 머리만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한 주를 마감하는 금요일의 마지막 수업시간인 브레넨 교수님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학생 하나를 지목하고 질문을 퍼붓고 있었다. 수업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오늘의 마지막 희생자는 저 학생이다’ 하며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나는 한 번 튀어보겠다고 손을 들고 자청해서 말을 했다. “교수님, 그건 이러저러하니 이러쿵저러쿵한 것이 아닐까요?” 브레넨 교수의 표범 같은 눈이 나를 노려봤다. “If so, Mr. Lee…(그렇다면 미스터 리)” 그 순간 나는 아찔했다. ‘윽, 괜히 한마디 했다.’

 브레넨 교수님의 집요한 질문 공세는 방향을 틀어 나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뭔가 계속 대답을 하긴 하면서도 속으로 ‘지금 내가 뭔 소릴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를 소리를 읊조리며 해일(海溢)처럼 밀려드는 질문을 손바닥으로 막고 있었다. 시간아 가라. 제발 빨리 좀 가라. 금요일 마지막 수업시간 5분 남기고 스스로 참화(慘火)를 불렀다.

 수업이 모두 끝나면 도서관에 들러 1〜2시간 법률작문(Legal Writing) 과제에 필요한 자료들을 찾다 집으로 가곤 했다. 그날은 기운이 다 빠져 그냥 집으로 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운전을 할 때면 공영라디오(NPR)의 뉴스를 듣는다. 뉴스를 듣는 것도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인데 그럴 기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얼마 전에 듣다 말고 계속 자동차 시디플레이어에 꽃아놓고 다니던 시디를 틀었다. 

 기타의 선율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리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였다. 퇴근시간이 가까워 오며 차가 제법 밀리는 81번 고속도로 위를 달리던 나는 푹 꺼지며 “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기계음 하나 없이 기타 소리와 사람의 목소리가 만나 브레넨 교수에게 시달리느라 잔뜩 긴장한 나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것 같았다.

 

기타와 사람 목소리만으로 위로를 건네는 양희은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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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희은의 《1991》이란 앨범은 자신의 데뷔곡인 그 유명한 <아침이슬> 2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앨범이다. 이 앨범에 실린 8곡의 노래 중 7번 트랙에 실린 곡이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이다.

 이 글을 쓰려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이 노래는 처음에 그리 히트하지 못했는데 1997년 SBS 방송의 <달팽이>라는 옴니버스 드라마에 삽입되면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나는 드라마에서 처음 들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 이전부터 시디를 갖고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조영남이 진행하던 한 토크쇼에 그녀가 나와 자신이 쓴 자서전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제목이 《이루어질 수 있는 사랑》이었다. 양희은이 어찌나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던지 책이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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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과 함께 뉴욕으로 이주하여 살던 시절 기르던 퍼그 종의 소피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자리 깔고 누워 엉엉 울다 새로 들인 미미와 보보 이야기도 있고,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하던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쓴 곡들에 가사를 붙이고 이병우의 기타 연주만 갖고 《1991》 앨범을 녹음하던 이야기도 자세히 적혀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이번에는 《1991》 앨범이 궁금해져 구입해 듣기 시작했다. 브레넨 교수님 시간에 학을 떼고 난 그 날 이후로 그 시디는 나의 애장품이 되었다. 지금도 힘든 날이면 습관적으로 꺼내 듣는다. 얼마 전 이사를 하면서 천 장이 넘는 시디들을 버리다시피 처분했지만 이 앨범은 내가 소중히 간직한 50여 장 속에 끼여 지금도 내 책꽂이에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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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내 이름은 김삼순》 중.

 기타 소리와 양희은의 목소리가 늘 나에게 편안함을 주지만 이 노래의 가사는 그리 푸근한 내용이 아니다. 이 가사 속 주인공은 누군가와 열렬히 사랑하다 힘들게 이별을 했다. 상대방이 병에 걸려 죽었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로 헤어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혼자 짝사랑하다 포기 했을 수도 있다.

 몇 날 며칠을 자리에 누워 눈이 짓무르도록 울다 지쳐 잠깐 쉬는 사이 한숨처럼 한마디 내뱉는다. ‘다시 또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그리고 또 한마디 한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오래전 선풍적인 인기 속에 방영했던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남자 주인공 현진헌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호르몬의 역학관계로 일장 설명을 하던 장면이 있었다. 사랑이란 것이 그런 화학적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붙어 있어도 호르몬들이 전부 딴전만 피운다. 그러다 갑자기 호르몬들이 기지개를 피면 세상에 둘밖에 없는 듯 열렬히 사랑한다.

 어떤 때는 한쪽의 호르몬이 깨어나 난리 부르스를 추는데 다른 한쪽의 호르몬은 나 몰라라 한다. 한술 더 떠 상대방의 호르몬은 엉뚱한 다른 사람만 바라보기도 한다. 사람이 사랑하는 것, 특히 둘이 만나 동시에 서로를 사랑하는 것, 열렬하던 사랑이 식는 것 그리고 사랑이 떠나도 잊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 알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이 주인공은 또 한마디 덧붙인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참 쓸쓸한 일인 것 같다’고. 그럴 수밖에 없다. 방금 사랑이 끝났으니. 사랑할 때는 세상이 모두 ‘날 위해 빛난다’는 착각을 한다. 아니 세상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들만 자체발광이다. 그러나 사랑이 끝나면 ‘이 세상도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백열등 나가듯 ‘틱’하고 갑자기 그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매일 보던 풍경이 흑백으로 바뀐다. 맛있던 음식도 모래알로 변한다. 즐겁고 아름답던 세상에 칠흑 같은 절망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내일은 없고 나는 절망만 가득 찬 오늘에 출구도 없이 갇혀 있다.

 이 사람은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사랑을 하게 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경우 나는 ‘할 수 있다’에 올인하겠다.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서’ 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기 시작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한 순간뿐이더라. 밥만 잘 먹더라’는 노랫말도 있듯 돈세탁처럼 호르몬 세탁이 끝나면 또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

 대학 졸업하고 10년 넘게 지나 같은 대학에 다니던 여자 선배와 연락이 닿았다. 그 선배는 막 둘째를 출산한 뒤였다. 그 선배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여자가 바보야. 첫째 낳을 때 그렇게 힘들고 고생했는데 그거 다 잊어버리고 또 낳았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잊지 못할 것 같던 출산의 고통도 이별의 고통도 잊고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사랑의 기쁨을 찾아 나선다. 

 

왕년에 사랑 안 해본 사람 없다

 ‘누구나 사는 동안에 한 번 잊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잊지 못할 이별을 하지.’ 왕년에 그런 사랑과 이별 한 번쯤 안 해 본 사람 없다. 헌데 어떤 사람들은 그 사랑 하나를 놓지 못하고 평생을 가지고 가는 것을 가끔 본다. 호르몬 세탁을 한 사람들의 사랑이 덜 절실했던 것도 아니고, 그들의 새로운 사랑이 진실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대부분 세월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옛사랑을 가슴 한구석에 간직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 새롭게 사랑한다.

 이 소수의 사람들은 무엇 때문인지 평생 그 사랑이 차지하는 공간이 줄어들지 않는다. 심장의 자리를 내어주지 않고 버티니 때로 새로운 사랑을 찾아보지만 결국 사라지지 않는 옛사랑의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안식을 찾는다.

 사랑이 끝나고 ‘날 위해 빛나던 세상’이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사랑일까, 집착일까, 환상일까? 그들에게는 아픔을 잊게 해주는 호르몬이 없는 것일까? 프로메테우스의 간처럼 그들의 고통의 호르몬은 매일 새롭게 자라나 독수리가 쪼아 먹는 아픔을 느끼는 것일까?

 다시 한 번 되뇐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그 일.’ 정말 알 수 없는 것이 사랑이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참 쓸쓸한 일’이라는 것이다. 죽음 때문이든 세상적인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인간은 혼자 남게 되니까. 그래도 사랑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노래가 히트하자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도 하고 방송에서 부르기도 했는데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이은미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이다. 영화 《흑수선》의 주제가 <내가 있을거야>는 수도 없이 들었는데 지금도 들을 때마다 혀를 내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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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부르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는 의외로 실망스럽다. 때로 그녀가 노래를 표현하기보다는 ‘나는 이런 음악인이다’라고 표현할 때가 있다. 그녀가 임희숙의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를 부를 때 그런 느낌을 받았고,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에서도 그런 냄새가 물씬 났다.

 말하는 억양을 최대한 살려 가사의 의미 전달을 최우선으로 하는 양희은의 창법과 낄 때 끼고 빠질 때 확실히 뒤로 물러나는 이병우의 기타 반주에 내 귀가 익숙해진 탓인가 보다. 나를 잊고 오로지 노래와 가사만을 위한 연주를 할 때 가장 큰 감동이 밀려온다.

 《1991》 안에는 이 노래 말고도 좋은 노래들이 많다. 내가 처음 이 시디를 구입해 들을 때부터 좋아했던 곡이 1번 트랙의 <그해 겨울>이다. 각종 실험적인 기계음이 범람하던 당시 가요계에 뜬금없이 돌아온 언플러그드(Unplugged) 사운드가 주는 잔잔한 감동은 전율 그 자체였다.

 반주 없이 시작하는 <가을 아침>도 좋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2학기 시작하는 9월 초면 아침저녁 쌀쌀한 가을이었다. 학교 가기 싫어 쌀쌀한 아침 이불속에서 뒹굴던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운 친구에게>는 기타 반주와 노래의 가사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유튜브 '옛송TV'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下로 이어집니다.


이철재 미국 변호사, 《뉴욕 오디세이》 《나도 바흐를 즐길 수 있을까》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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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건의 글이 있습니다. 작성일순 | 찬성순 | 반대순
  김제준   ( 2021-07-10 )    수정   삭제 찬성 : 62 반대 : 4
2016년11월26일날 박근혜하야 광화문 촛불집회때 연단에올라가 노래부르며 선동하였었지 그때부른 노래가 가을이슬이던가 기억이가물하네.제주도에서 비행기타고 상경하에 집회에참석하려고 택시타고 도착했다고 하였던가?그래서인지 지금 잘나가시나? 밥맛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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