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p 로고
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가족 호칭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1) 너는 나를 부모로 대해라, 나는 너를 며느리로 대할게
topclass 로고
입력 : 2019.02.07
설 연휴도 끝나가고 있다. ‘명절’이라는 단어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가족’이 아닐까? 명절을 맞아 가족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최근 언론을 통해 자주 언급되고 있는 가족 호칭에 대해 탐험을 떠나 보려 한다.
Ⓒ셔터스톡

가족이 새로운 구성원을 맞이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출생을 통한 것, 결혼을 통한 것, 그리고 입양을 통한 것이다. 명절이 되면 이 가운데 결혼을 통해 맺어진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야기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결혼을 통해 맺어진 가족 구성원들 간의 호칭 문제가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이번 설을 전후하여 가장 많이 소비된 기사 중에 하나가 바로 가족 호칭과 관련된 기사였다. 설이면 흩어졌던 가족이 모이고, 가족이 모이면 서로를 불러야 하니 가족 호칭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부부와 자녀 중심의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만큼, 명절에만 만나 부르게 되는 가족 호칭이 어색하지 않을 리 없다.

가족 호칭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부를 말을 몰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다. 평소에는 필요한 말이 아니라서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쓰기가 불편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다.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지만, 그 호칭으로 부르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즉 몰라서 못 부르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적당한 호칭을 찾아서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자의 경우, 즉 알지만 부르는 것이 편치 않은 경우가 문제가 된다.

불편하면 부르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물론 맞는 말이다. 불편하면 부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대면하여 말을 하려면 상대방을 부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있다. 대면하여 말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대화의 상대를 불러야 한다. 그런데 한국어는 공손성의 이유로 대화 상대자를 2인칭 대명사를 사용해 부르지 못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몇 안 되는 언어 중 하나다아무에게나 당신을 쓰는 것은 무례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아무에게나 '너'나 '당신'을 썼다가는 싸움이 나는 언어다. 그러니 한국어로 말을 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경우에 대화 상대자를 부를 호칭어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호칭어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가 바로 한국어의 이러한 특징과 관련이 있다.

한국어로 말을 하기 위해서는 너를 너라고 부를 수 없는 만큼, 상대와 나와의 관계에 맞는 호칭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호칭어가 불편하다면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자연히 불편해지게 된다. 그 불편함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말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모든 인간관계는 말을 통해 맺어지고 유지되기 때문이다. 서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아지면 관계는 당연히 정리된다.

가족 호칭어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족 관계를 청산하고 싶지 않다면 가족 관계 호칭어 문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누가, 무엇을, 왜 불편하다고 하는지 말이다. 지금까지 모두 다 그렇게 불러 왔는데 왜 너만 그렇게 부르려 하지 않냐고 윽박지르며 혀를 찰 것이 아니라 왜 그렇게 부르는 것이 불편한지, 불편하다면 어떻게 하면 불편해하지 않을 수 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호칭이란 상대를 부르는 말이다. 상대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나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아버지라고 부른다는 것은, 나는 당신을 아버지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이 호칭을 통해 당신과 나와의 관계를 나는 부모 자식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혼을 해서 배우자의 부모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것은, 결혼을 통해 새로운 가족이 되었으니 배우자의 부모님을 새로운 부모님으로 여기라는 뜻이 숨어 있다. 새로운 부모 자식 관계가 만들어졌음을 인식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결혼해서 여성만 배우자의 부모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남성이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부모님을 보통 장인 어른, 장모님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 여성은 결혼을 통해 새로운 부모님이 생기지만 남성은 결혼을 통해 새로운 부모님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 그 호칭에 담겨 있다. 여성이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부모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부모 자식 관계를 맺는 반면에, 남성이 결혼을 하면 배우자의 부모님을 장인 어른, 장모님이라고 부르며 부모 자식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이렇게 과거의 세계관이 호칭에 그대로 담겨 있다. 결혼을 통해 여성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가족으로부터 가족 관계가 정리되고 결혼을 통해 배우자의 가족에 편입된다는 소위 출가외인의 세계관이다. 남성이 결혼을 한다고 출가외인이 되는 것은 아니니, 여성에게 결혼은 새로운 부모님을 얻게 되는 일인 반면에 남성에게 결혼은 새로운 부모님을 얻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결혼한 여성이 배우자의 부모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데도, 그 부모님은 새로 얻은 가족을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는다는 것이다. 자식을 부르는 방법으로 아들의 배우자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부모님은 아들의 배우자를 며늘아’, ‘며늘아가로 부르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한쪽은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저는, 저와 당신의 관계를 부모 자식 관계로 인식하고 있다’고 매번 부를 때마다 고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은 며늘아라고 부르며 나는, 나와 너의 관계를 부모 자식 관계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고 부를 때마가 선을 긋고 있다.

가족 관계 호칭어는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 시대가 공유하고 있던 세계관이 호칭어에 그대로 담길 수밖에 없다. 남녀차별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호칭어가 현재의 세계관으로 볼 때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언어가 담고 있는 세계관과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관 사이에 거리가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추구하는 세계관이 담길 수 있도록 언어를 바꿔야 한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에 불과하니 언어 사용자들의 합의를 통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흔히 언어는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다. 생각이 커져서 그릇이 그 생각을 담을 수 없다면, 생각을 줄일 것이 아니라 그릇을 바꾸면 된다.

가족 관계 호칭어가 불편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전통을 무시하거나 전통을 무조건 부인해서가 아니다. 가족 호칭과 관련된 논란을 두고 왜 전통을 무시하고 지키려 하지 않느냐, 우리 것을 버리고 왜 서양 문화를 무조건 따르려고 하느냐고 반응하는 것은 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탓이다. 만약 우리의 전통이 신분제와 성차별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지켜질 수 없는 것이라면 과연 그 전통은 우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전통이 우수하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 평등, 인권의 가치를 존중하는 세계관을 통해서도 충분히 지켜낼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을 테니 무시될 리가 없을 것이다.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보내기
  • 목록 
  • 프린트
나도 한마디는 로그인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