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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진
신지영의 언어탐험
일상을 탐험으로 만드는 언어 탐험가이자 언어를 통해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는 인문학자. 베이스캠프는 고려대학교.
언어의 세계를 탐험하며 발견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너’를 ‘너’라고 할 수 없음에 한국어에서는 왜 '2인칭 대명사' 사용이 꺼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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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30

'빠른 년생의 탄생'을 통해, 우리가 나이를 궁금해하는 대상이 사실은 모든사람이 아니라 어떤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나이가 궁금해지는 그 어떤사람은 대체로 자신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끼리 서로 나이를 묻는 것은 상호 양해되는 일이어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서로 나이를 묻는 것에 대해 특별히 불쾌해하거나 언짢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만약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자신에게 나이를 묻는데 그게 불쾌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도 다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상대의 묻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어떤 이유로든 그 사람과 별로 말을 하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 이 상황에서는 나이를 묻는 질문 그 자체가 우리를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반면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에는 나이를 묻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달라진다. 이런 상황에서는 서로 나이를 묻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사람을 처음 만나서 상대에게 나이를 묻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만약, 20대로 보이는 사람이 부모님과 비슷한 연령대로 보이는 사람을 처음 만나서 대뜸 나이를 묻는다면 그것은 무례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무례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무리 공손한 태도로 묻는다 해도 물어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나이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사람에게 나이가 몇 살이냐는 질문을 받는 것은 누구에게든 유쾌한 일이 아니다. 결국, 이 경우에는 묻는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이를 묻는 질문 그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 모든 것 뒤에는 언어의 문제가 숨어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나서 상대의 신상 정보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상대와 말을 하고자 하는 절박함 때문이다. 말을 하려면 대화 과정에서 대화 상대자를 불러야 하는데, 한국어는 공손성의 이유 때문에 2인칭 대명사로 상대를 부를 수가 없다. 2인칭 대명사로 상대를 부를 수 없으니 내 앞에 있는 그 사람을 부를 말이 필요하다. , ‘호칭어가 필요한 것이다.

호칭어란 상대를 부르는 표현이다. 그래서 호칭어를 중심으로 부르는 사람과 불리는 사람이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다. 부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부르는 사람)이 상대(불리는 사람)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담기게 된다. 반면에 불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상대(부르는 사람)가 자신(불리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부르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불리는 사람이 기대하는 것 사이에 거리가 멀다면 좋은 관계가 맺어지기 어렵다. 그래서 적절한 호칭어로 상대를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상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한국어 사용자라면 이러한 정황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서로 신상 정보를 캐는 것에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이 나와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상 정보를 서슴없이 말하고, 상대의 신상 정보를 자연스럽게 물을 수 있는 까닭이다. 오히려 이러한 정보를 주지 않으려 한다면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구나’하고 해석하게 된다.

그런데 한국어처럼 호칭어가 절실히 필요한 언어는 소수에 불과하다. 언어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어처럼 공손성의 이유로 인해 2인칭 대명사의 사용이 꺼려지는 언어는, 분석 대상이 된 207개 언어 가운데 7개 언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조사 대상 언어의 3.4%에 불과한 수치다. 7개 언어는 한국어를 비롯하여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베트남어, 태국어, 크메르어, 버마어다. 나머지 96.6%에 해당하는 200개 언어는 2인칭 대명사를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2인칭 대명사가 공손성에 따라서 몇 종류가 존재하는지의 차이에 따라서 유형이 더 분류될 뿐이다(https://wals.info/chapter/45).

결국, 대부분의 언어는 2인칭 대명사를 통해 상대를 부를 수 있기 때문에 대화를 위해 호칭어가 절실하지는 않다. 그러니 적절한 호칭어를 찾기 위해 상대방의 신상 정보를 캘 수밖에 없는 한국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특히 나이는 한국 문화에서 적절한 호칭어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기준이 된다.

언어란 학습에 의해 습득되는 만큼, 이전 시대의 문화가 담길 수밖에 없다. 이전 시대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이 되었던 관계는 가족 관계였다. 이러다 보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다양한 호칭어 메뉴는 가족 관계를 나타내는 호칭어들이다. 마땅히 부를 호칭이 없다면 가장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는 가족 관계 호칭어가 최우선적인 선택 가능한 메뉴가 된다. 그런데 가족 관계 호칭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항렬이었고, 항렬이 같다면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나이였다. 나이에 따라서 나이가 같거나 어리면 ’, ‘라고 부를 수도 있고 이름을 부를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한 살이라도 많다면 나와 상대의 성별에 따라서 언니, 오빠, 누나, 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니 비슷한 또래, 즉 같은 항렬에서는 나이가 중요한 호칭어 선택의 기준이 된다. 그러니 또래의 경우 나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인으로서 연차가 높아지면 나이보다는 직업이나 직책에 따라서 호칭이 결정된다. 이런 경우 자신의 신상 정보를 직접 말하기보다는 종이 한 장으로 그 과정을 생략하기도 한다. 서로 명함을 주고받으면서 말이다. 명함에는 처음 만난 상대가 궁금해할 신상 정보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으니, 굳이 긴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명함 한 장이 신상 정보 캐기의 과정을 일거에 끝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서로 사적인 관계가 되면 비슷한 연령에서는 나이를 중심으로 호칭어가 재정비된다. 그리고 어느 연령까지 형(누나, 언니, 오빠) 동생이 되는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일정 연령 범위를 넘으면 형, 동생을 꺼리는 경우도 생긴다.

결국, 한국 사람들이 처음 만나서 상대의 나이를 비롯한 신상 정보를 캐려는 데는 상대방과 대화를 하겠다는 절박함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어로 말을 하려면 호칭어가 필요한데, 상대방의 나이를 비롯한 신상 정보가 없이는 상대방에 대한 적절한 호칭어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외국 사람들에게 이것이 낯선 이유는 한국어와 유사한 작동 원리를 가지고 있는 언어가 극히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신지영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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