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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편의 촉후감
인터뷰는 누군가의 결정적 순간을 깊숙이 간접체험하는 신비한 시간입니다. 《topclass》 김민희 편집장이 지면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때론 인터뷰 후기를, 때론 후속 인터뷰를 담습니다.
이어령 교수, 남겨진 이야기 우리나라에 꼰대라는 말이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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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29
이어령 교수의 마지막 제자이자 기자. 이 타이틀로 최근 몇 년 간 과분한 영광을 누렸다. 《주간조선》에 ‘이어령의 창조이력서’ 연재를 계기로 인터뷰만 40회 가까이 했다. 이어령 교수와 1:1로 대화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130시간이 넘는다. 그 축적된 인터뷰의 힘은 강력했다. 거대한 도서관이나 다름없는 르네상스형 지식인의 두뇌를 탐험하는 일은 나를 다른 존재가 되게 했다. 가장 큰 변화는 ‘시선’이다. ‘낯설게 보기’. 그를 인터뷰하고 나오면 일상이 달리 보였다. 늘 보던 풀 한 포기, 늘 쓰던 단어 하나가 달리 보였다. 꿈틀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이어령 교수를 만날 때마다 든 생각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아이 같은 눈빛을 가질 수 있구나. 도대체 비결은 뭘까?’

그 아이 같은 눈빛 때문에 실수도 종종 한다. 아무 질문이나 막 던지는 실수. 이어령 교수 앞에서는 종종 철부지 초등생이 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어떤 엉뚱한 질문도 다 받아줄 것 같은 괴짜 과학선생님 앞에 선 초딩처럼 이 질문 저 질문 막 하게 된다.

아차! 이런 질문은 실례인데...’ 하고 후회하는 순간은 딱 2. 그는 어떤 질문이든 타박하지 않고 답해준다. ,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앞에서 설명한 내용을 되묻지 말 것. 둘째, 이미 한 질문을 또 하지 말 것. 셋째, 맥락을 벗어나지 말 것. 이런 질문만 아니라면 아무리 엉뚱한 질문이라도 기막힌 답변을 내놓을 때가 많다.

topclass2월호에서 한 김민희의 속 깊은 인터뷰에서도 그랬다. 마르지 않는 호기심으로 젊은이들의 관심사까지 꿰뚫고 있는 그를 보면서 '선생님 같은 분들이 많으면 세대갈등이 사라질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이야기든 편견 없이 들어줄 줄 아는 진정한 어른. 질문지를 잠시 접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요, 혹시 꼰대 같다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으세요?”라고. 이어령 교수가 흠칫 놀랐다.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질문인 듯했다. 질문을 주워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가 허허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어령의 꼰대론이 펼쳐졌다.

꼰대? 누가 내 면전에서 꼰대 같다고 하겄어. 허허. 앞에 대고 당신은 꼰대 같습니다말을 안 하니까 꼰대가 되는 거여. 꼰대는 자신이 꼰대인 줄 모르거든. 헌데 말이야, 나는 나를 꼰대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데...김 편집장이 볼 때는 어때요?"

-오해 마세요. 꼰대 같지 않으셔서 여쭤본 겁니다. 요즘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하잖아요. 꼰대 표현은 양반이고, 나이든 분들을 일컫는 틀딱충’ ‘연금충이라는 속어도 있죠. ‘어른실종시대라는 말이 공공연하고요.

우리나라에 꼰대라는 말이 있다는 건, 아직도 노인이 존재하는 세계라는 증거야. 초고령화가 된 유럽에는 노인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잖아. 노인들이 양로원, 요양원에만 있다면 누가 노인들을 욕하겄어. 우리 사회에서 꼰대, 꼰대한다는 건, 진짜 고령화 사회가 안 왔다는 얘기이고, 아직 노인의 힘이 있다는 얘기예요. 수직사회라는 증거이기도 하지.”

-하하. 꼰대의 개념조차 발상의 전환이시군요.

꼰대라는 말이 존재하는 건 강한 노인이 존재한다는 말과 같아.”

-이 시대 강한 노인의 역할이 있을 듯한데요.

노인이건 젊은이건 간에 드론의 시선으로 굽어보면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항상 인간의 삶이라는 기저에서 이야기를 해 왔지, 같은 지평에서 이야기를 해 온 게 아니거든. 위에서 내려다보면 노인이건 젊은이건 다 같은 차원의 삶이지. 차원을 달리해서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 높은 건물이 없잖아. 시선의 높이가 곧 삶의 높이에요. 자신의 시선을 얼마나 높은 곳에 두느냐가 삶의 깊이를 결정하지.”

-다른 시선으로 보기라. 말은 쉬워도 실천이 쉽지 않아요.

관점을 달리해서 보는 것이지.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 ‘어디에도 없다모든 곳에 있다와 한 끗 차이야. 자 봐요. ‘No where’‘Now here’. 띄어쓰기를 달리해서 보니까 완전히 반대말이 되잖아. 허허. 재밌지. 똑같은 것도 달리 보면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거예요. 인간의 사고의 프레임 밖으로 나가면 다른 세상이 나타나요. 이걸 잡으면 천의무봉(天衣無縫), 끝없이 새로운 사고가 나타나는 거야. 초월적 사고를 해야 새로운 세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지.”

-나이 들면서 뇌세포가 죽어간다는 건 만고의 진리인데요.

그건 그래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야. 나는 과거에는 5000단어로 글을 썼다면 지금은 500단어로 써. 그런데도 걱정하지 않는 건, 아직 파지 않은 우물물이 남아있다는 거예요. 우물을 마시는 사람에겐 끝이 있지만, 우물을 파는 사람에겐 끝이 없어요. 우물물을 마시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말고, 우물물을 파는 것을 목적으로 하라는 얘기지. 마르지 않는 호기심으로 우물물을 파는 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시치프스의 노동이지.”

 

 

김민희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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